거기에서 더 나아가 우리가 궁극적으로 가고자 하는 상태는 타인의 입장, 내 입장 이렇게 상반된 입장이 아니라 하늘에서 바라보는 입장입니다. 우주의 심정이 되면 ‘좋고 나쁘고’ 가 없습니다. 그러면 공정하게 양쪽을 다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저 사람은 저게 옳은 거고 나는 이게 옳은 것입니다. 저 사람이 옳기 때문에 받아들이고 그르기 때문에 배척하는 게 아닙니다. 내 방식과 다르므로 나는 그렇게 안 할 뿐입니다.
마치 바다와 같은 마음입니다. 강물은 물줄기가 있고 계보가 있습니다. 한강이라고 하면 그 부류의 사람들끼리 서로 통하고 다른 물줄기 예를 들면 낙동강이라는 부류의 사람들은 그 부류끼리 서로 통합니다. 한강하고는 어쩐지 수온도 다르고 이질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끼리끼리 모여서 삽니다.
그런데 그것이 흘러 흘러 바다까지 가면 한강에서 흘러왔는지 낙동강에서 흘러왔는지 따지지 않습니다. 너와 내가 없어집니다. 다 같이 바닷물이므로 시원을 따지지 않습니다.
바닷물은 다 받아들입니다. 너는 공장폐수니까 싫다. 너는 한강물이라서 싫다. 난 낙동강물만 받겠다. 이런 편견이 없어집니다. 맑은 물이든 흐린 물이든 바다까지 흘러 들어온 인연을 높이 사는 겁니다.
물줄기 하나가 어찌 어찌해서 참 어려운 과정을 거쳐, 땅속으로 스며들 수도 있고 아예 자취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었는데, 끊임없이 힘을 내서 물줄기를 이루고, 강을 이루고 끝내 바다까지 흘러온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해서 다 받아들입니다.
끊임없이 폭풍이라든가 해일이라든가 파도를 통해서 자체 정화작용을 하면서 바다는 누구를 탓하지 않습니다. 그런 상태가 바로 우주의 상태이고 마음이 열린 상태입니다.
네가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 이해는 하되 “싫다, 좋다” 분별이 있다면 “나의 상태가 아직 바다의 경지는 아니구나”하면 됩니다. 그렇다고 뭐 아쉬워할 것도 없고 싫은데도 좋은 척 할 필요도 없습니다. 솔직하되, 그래도 노력은 해야겠지요.
“계속하다 보면 끝내는 바다까지 가겠구나”하면서 그 단계를 인정하고, 이해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마음이 열렸다”하는 상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