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현장/ 영국인의 이야기 3>. 영국인의 이야기 (3)

by 유로저널 posted Jun 2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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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쇼핑을 하러 가던 중 교회 정원 손질을 하는 마이클을 보았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3년 전이다. 엎어지면 코가 닿을 지척에 살고 있었지만 그동안 난 한번도 그 그룹의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가드닝을 하는 그의 모습은 3년 만에 더욱 쇠락해 보인다. 하늘색 상의에 군데군데 묻어있는 붉은 소스와 손질을 안 한 콧구멍 밑으로 빠져 나온 코털이 더욱 그를 초췌하게 보이게 했다. 마침 그들이 휴식을 하며 잡답을 나누고 있는 중이어서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인사를 한다. 어떻게 살고 별일은 없었느냐는 장황한 인사 끝에 헤어진 것이 열흘 전이다.


                           2.

만나면 늘 반가운 사람이다. 그러나 난 지난 3년 간을 사회적인 교제나 외부와의 만남을 모두 차단하고 학교 강의와 박물관 강의, 그리고 두 곳의 신문에 연재하는 문화사와 미술사 스토리에 대한 작업, 남는 시간에는 내 자신에 대한 성찰과 공부를 하는데 모두 쏟아 부었다. 금요일, 부재중 수신된 마이클의 음성을 듣다.

'시간이 괜찮다면  수요일 저녁 식사를 함께 하고 싶은데  우리 집으로 올 수 있겠나? 가능한지  연락을 해 주면 고맙겠네.' 그의 집의 초대를 받아 식사를 한 것이 꼭 3년 전이었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 전화기를 내려 놓는다.


                            3.

토요일 다시 사르나의 전화를 받다. 내일 영화를 보려고 하는데 같이 가겠느냐는 전화였다. 다음주부터 주말에 8주간 세미나에 참석해서 이번주 밖에 시간이 없을 것 같다고 그는 사족을 붙였다.

그의 초대에 승낙을 한 후에 다시 마이클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부재중이다. 수요일, 가겠다고 빈 전화기 메모를 남겨 놓았다. 사르나의 초대를 받아들이고 마이클의 초대를 거절하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마음이 작용한 것이다.


                           4.

   수요일 오전, 이번 학기 마지막 강의를 두 시에 끝내고 귀가하다. 학생들과 한 학기 혹은 박물관이나 미술관 강좌의 일반인과 한 회 교육이 끝날 때는 언제나 마음이 좋지 않다. 헤어지는 것에 난 늘 서툴다. 언제 볼지도 모르는 그들과의 만남을 그런 까닭에 아주 가볍게 하려고 하지만 매주 만나 얼굴을 맞대는 동안 알게 모르게 정이 들고 만다. 그래서 더욱 그들을 냉정하게 대하는지도 모른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한 후에 요기를 하고 잠깐 휴식을 취한 후에 마이클 집으로 출발한다. 윔블던의 한 중심에 있는 그의 집은 크리스틴 어머니의 집이었다. 4년 전 그들은 결혼을 해 함께 살고 있다.

   이제 그들의 집에도 두 사람의 생활의 때가 잔뜩 고여있다. 가든으로 나가 배나무와 구즈버리등 무성하게 우거진 나무 들 사이로 심어놓은 야채들을 보다. 크리스틴은 요즘 윔블던 합창단에 들어가 월요일마다 참석해 연습을 하는데 정말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녀는 외무성에서 번역을 하는 업무를 여전히 하고 있다.

마이클은 요즘 자기가 인형의 집을 만들고 있다고 자랑을 하며 보러 가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와인잔을 들고 나는 따라 나선다. 그의 작업실은 3층이다. 네오 고딕식으로 짓고 있는 인형의 집은 가정집이 아니라 교회 건축식의 갤러리였다. 최근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다녀온 그의 시각적 기억의 조각들이 반영되어 있는 듯했다.

   가든에서 식사를 한 후 날이 어두워지자 우린 자리를 리빙룸으로 옮긴다. 마이클의 옆자리 에는 낡은 테디 베어와 원숭이 인형등 세 개가 자리잡고 있다. 크리스틴은 마이클의 인형이라고 말한다. 인형의 심리에 대해서 몇 가지 주제로 토론을 하다. 인형과의 사람들이 갖는 심리적 거리에 대해선 나는 이미 정리해 놓은 것이 있었다. 4시간 먹고 마시고 끊임없이 떠들어대다가 밤 11시가 넘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5.

다음날 새벽, 나는 이렇게 앉아 담담하게 지난 몇 가지의 일들을 정리하고 있는 중이다. 몇 가지 장면들이 성긴 마음 속으로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식사를 하다, 마이클이 자기 셔츠에 떨어진 음식물을 집어 쪽쪽 빨아먹었다. 그러고 보니 그 셔츠는 가드닝을 할 때 본 때가 뭍은 작업복 같은 옷이었다.

내 시선을 의식한 마이클, 그리고 그를 보던 크리스틴 세사람의 시선이 어지럽게 교차한 후에 크리스틴은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My Daring, I know, it is your favorite shirts.'

얼마나 따듯한 시선인가!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은 남편의 그런 행동에 대해서 궂은 소리를 하거나 아니면 못 본척 시선을 돌렸을 것이다.

구스버리를 옆에서 따고 있을 때 마이클은 크리스틴의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중에는 계속 두 사람 굳이 필요하지 않는 말들을 주고 받으며 서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했다. 물론 나는 그들의 행위가 나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일상중의 것임을 안다.

   두 번째 인형의 집을 짓고 있는 마이클은 아주 프랙티컬(practical)한 사람이다. 영국에는 이렇게 인형의 집을 짓고 있는 남자들이 더러 있다. 그는 법학과 경제학을 전공하고 교사 생활을 한 후 아마추어로 그림을 그리는 중년 사내다. 지금 인형의 집을 짓고 있는 그의 옆에는 세 개의 인형들이 놓여있었다.

<전하현/ writer, hyun.h.JunⒸ 미술사가, 문화 평론가, 미술사를 강의하며 국내 매체에 미술과 문화 평론 등을 연재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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