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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 영국사람 이야기 8>
내가 왜 올바른 남자를 못 만났는지?
사진 설명 1/ 20대의 뉴욕에서 모델을 할 때의 프란세스
아침에 일어나 침대에 잠시 걸터앉아 기도를 한다. 그리고 빨아 놓은 빨래들을 정리하려고 개다가 다시 펼쳐 널어놓는다. 내 세탁기의 건조기능이 요즘 말을 듣지 않는다. 다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후버로 청소한다. 몇 주 만에 이 계단 청소를 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쌀과 빨간 콩을 씻어 밥통에 앉히기 전에 물에 잠시 불려놓고 며칠 동안 묵혀놓았던 소고기를 썰어 마늘과 양파, 그리고 파와 간장, 참기름과 와인 약간을 부어 재어 다시 냉장고에 집어 넣는다. 설거지를 시작한다.
이것이 좀 분주하지 않은 내 아침의 통상적인 일과이다. 도마를 닦고 싱크대를 정리하며 이제 한 잔의 차를 끓인다. 다시 나는 동(動)에서 정(靜)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포트에 물을 올려 놓고 '묵힌다'라는 의미를 잠시 헤아려 본다. 이 '묵힌다'라는 의미는 기다린다는 의미와는 또 다르다. 오늘 고기를 저미며 나는 이 것을 며칠 동안 묵혀 두었다. 다시 고기를 절여 나는 며칠간을 묵혀둘 것이다.
사진 설명2 / 40대의 프란세스 잭과의 두 번째째 결혼
때로 살다 보면 이렇게 묵혀 두어야 할 것 들이 있다. 지난 며칠 전에 프란세스와 통화 중에 그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현 내가 왜 올바른 남자를 못 만났는지 생각해 보았는데, 왜 인줄 알아요?"
뜬금없이 한 말에 나는 속으로 놀랐으나, 한 발 뒤로 물러서서 그녀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아주 흥미 있는 말이네요."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녀는
"한번 알아 맞추어봐요."
그러나 나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었다. 아마도 그녀에 관해서는 내가 제일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올해 62세의 프란세스는 두 번의 결혼을 했으며 네 명의 약혼자가 있었고 그 외도 수 없이 남자를 만나 오늘에 이른, 어쩌면 한국 말로 팔자가 센 여인이다.
주위에서는 그녀는 절대로 혼자 살 여자가 아니라 또 누군가를 만나려고 할 것이라고 빈정대었다. 그러나 지난 번에 그녀를 촬영하기 위해 방문해 질문을 해 보았으나 그녀는 그럴 의사가 없다고 단호하게 내게 말했었다.
프란세스는 자기의 성공과 부, 자기의 행복을 늘 남자를 통해서 실현하려 했었다. 그녀는 부자인 남자를 만나기도 했으나, 오랜 관계를 지속할 수 없었다.
"글쎄요. 전혀 짐작이 안 가는데요."
내가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갑자기 수 백 키로나 떨어진 웨일즈의 산골짜기의 집 에서 나에게 전화를 한 거리 만큼 시간이 흐른 기분이었다.
사진 설명3/ 60대의 프란세스, 그녀의 집의 가든에서
"나는 누군가 바른 사람을 만나기 위해 시간을 두고 찾아 보아야 했으나, 전 그 순간을 기다리지 못했어요. 헤어지고 난 다음에 그 헤어지는 아픔을 피하기 위해 누군가를 바로 찾아서 마음을 옮겨 다녔어요. 그 때 그것을 견디며 왜 헤어졌는가를 생각해 보고 내게 어떤 사람이 옳은 사람인가? 나는 누구인가를 먼저 깊이 생각해봐야 했어요."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60이 넘어서야 문제를 알게 된 그녀에게 사실은 그녀 자신도 아무 해줄 것이 없다. 만약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젊었을 때 해주었다면 프란세스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 나는 '묵힌다'라는 의미를 헤아리며 이 프란세스의 말을 다시 되뇌여 본다. '묵힌다' 라는 말에는 '기다림'의 의미가 고여있다. 기다릴줄 모르면 묵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견딘다'라는 말도 숨어있다. 기다리며 견딜 수 있을 때에 우린 묵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도 이렇게 와인처럼 묵을 수 있을 때, 스스로를 발효시킬 수 있을 때 아름다운 맛과 향기를 가질 수 있다. 외로움을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그리고 그 시간을 견디어 낼 수 있을 때, 우린 새로운 변화의 맛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외로움인 것 같다. 혼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우린 사실 모두 혼자이다. 자기한테 때로는 주어진 고독의 시간을, 마치 와인을 묵혀 숙성을 시키듯이 혼자서 썩을 줄 아는, 자기를 죽일 줄도 아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불안하고 어두운 고독의 나락으로 떨어져 핏빛보다도 진하고 선연한 그 외로움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을 때 우린 거듭 날 수 있다.
이제 난 다음 번의 프란세스의 전화에서 어느 날 이런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
"현,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혼자 사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아요?"
<전하현/ writer, hyun.h.JunⒸ미술사가, 문화 평론가, 미술사를 강의하며 국내 매체에 미술과 문화 평론 등을 연재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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