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는 스크린을 종횡무진 하며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던,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우리의 곁을 떠나버린 은막의 스타들이 있다. 이제는 그들이 살아 생전 남겨놓은 몇 편의 영화들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그래서 더 그리워지는 스타들을 만나보았다.
제임스 딘(미국, 1931~1955)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당대 최고의 청춘 스타가 되어 전세계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제임스 딘은 단 세편의 영화를 남기고 마치 자신이 출연한 영화 ‘이유 없는 반항’의 주인공 짐처럼 그는 질주하는 자동차에 몸을 싣고 우리들의 곁을 영원히 떠나버렸다. 흔히들 제임스 딘을 한때의 유행을 이끈 스타 배우로만 알고 있지만 사실 그는 미국의 명문 연기학교인 액터즈 스튜디오 출신으로 아마도 그렇게 갑작스레 사고로 사망하지 않았다면 훌륭한 연기파 배우로도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었던 정말 아까운 배우였다. 특별히, ‘이유 없는 반항’에서 그가 입고 나온 흰 셔츠와 리바이스 청바지는 당시 젊은이들의 유행을 주도했으며 지금도 그의 멋진 모습은 이미지로 남아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그의 작품: 에덴의 동쪽(1955), 이유 없는 반항(1955), 자이언트(1956)
이소룡(홍콩, 1940~1974)
전 세계적으로 중국 쿵후의 명성을 가장 널리 알린 배우를 꼽으라면 아마도 요즘 활동하는 성룡이나 이연걸 보다 훨씬 이전에 이미 헐리우드를 노크한 이소룡일 것이다. 절권도라는 무술을 통해 자신만의 고유한 무술 액션영화를 선보이며 등장한 이소룡은 지금 보아도 그 카리스마가 전혀 현대 액션영화에 비해 뒤떨어질 것 없는 네 편의 영화를 통해 온 세상에 그의 이름을 알리고 그의 유작인 사망유희의 라스트 액션신만 촬영한 채 34세의 젊은 나이로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며 전설이 되어버렸다. 날카로운 눈빛과 기괴한 함성,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쌍절곤은 그만의 트레이드 마크였으며 관객들은 혼자서 수많은 악당들을 날렵하게 무찌르는 그의 액션에 환호를 보냈다. 그가 사망한 지 어느덧 3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는 브루스 리 라는 이름으로 전세계에 쿵후의 대명사로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그의 작품: 당산대형(1971), 정무문(1972), 맹룡과강(1972), 용쟁호투(1973),
사망유희(1978)
리버 피닉스(미국, 1970~1993)
이미 어린 시절 ‘스탠 바이 미’에서 보여준 깊이 있는 연기로 훌륭한 연기파 배우로의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보이며 당시 헐리우드의 차세대 명배우 1순위였던 리버 피닉스, 특별히
1991년 키아누 리브스와 함께 출현한 ‘아이다호’에서 끊임없이 어머니와 고향 아이다호를 희구하는 남창 마이크역을 맡아 키아누 리브스와 공동으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역시 연기파 배우로서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23세의 젊은 나이로 조니 뎁이 운영하는 술집 앞 거리에서 코카인과 헤로인을 포함한 치명적인 마약을 다량 복용하고 돌연사 함으로써 수많은 영화 팬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그의 작품: 스탠 바이 미(1986), 허공에의 질주(1988), 인디아나 존스-최후의 성전(1989), 아이다호(1991), 스니커즈(1992), 콜 잇 러브(1993)
이은주(한국, 1980~2005)
나이에 비해 개성 있는 분위기와 깊이 있는 연기로 한국 여배우의 기근 현상에 단비 같았던 이은주는 TV 드라마 ‘카이스트’를 통해 관객들에게 소개되며 이후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주의 감독인 홍상수 감독의 눈에 띄어 ‘오 수정’을 통해 영화에 데뷔하였다. 이후, 다양한 영화에서 다양한 캐릭터로 관객들의 사랑을 받으며 흥행성과 연기력을 고루 갖춘, 말 그대로 배우의 기질을 타고났다는 찬사와 함께 여배우 캐스팅 1순위로 꼽혔으나 28세의 젊은 나이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면서 우리의 곁을 떠나갔다.
그녀의 작품: 오 수정(2000), 번지점프를 하다(2000), 연애소설(2002),
하얀방(2002), 안녕UFO(2003), 태극기 휘날리며(2003), 주홍글씨(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