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법정에 선 까닭은

by 유로저널 posted Apr 2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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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이 열리는 법정, 판검사와 변호사, 피해자와 범인, 증인과 배심원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진실과 정의를 놓고 팽팽한 설전을 벌이는 법정이야말로 너무도 영화적인 그런 장소가 아닐까? 법정 특유의 긴장감과 진실게임이 주는 매력 때문인지 법정은 영화의 소재로 자주 애용되어 왔고, 특별히 잘 만들어진, 그러나 의외로 관객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법정 영화 몇 편을 골라봤다. (법정 영화 최고의 스타 캐스팅을 자랑했던 ‘어 퓨 굿맨’과 법정소설 전문 존 그리샴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들은 의도적으로 제외시켰다)


뮤직박스(Music Box, 1990)

‘제트’, ‘계엄령’과 같은 정치적 사안을 주제로 진지하고 탄탄한 연출로 유명한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작품. 어렸을 적에 우연히 이 영화를 보다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진실을 둘러싼 팽팽한 긴장과 지금은 다소 남용되고 있는 반전도 담겨있고, 무엇보다 때로는 그것이 진실일 지라도 너무나 감당하기 힘들어 갈등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도 담겨있었다. 영화는 과거 나치 행위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기소 당한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변호하는 딸, 그리고 과연 그 아버지가 실제 나치였는지에 대한 진실을 둘러싼 법정 공방을 그리고 있다. 멍청한 금발배우로 전락할 뻔했던 제시카 랭이 훌륭한 연기를 선보이며 연기파로 새롭게 각인된 작품이기도.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뮤직박스는 사건의 진실이 담겨 있는 소품으로 주인공 앤이 뮤직박스를 통해 진실을 확인하는 장면에선 정말 소름이 돋는다.



JFK(1991)

얼마 전에 미국 정부의 케네디 사망사건에 대한, 그러나 별 내용 없는 보고가 있었는데 그토록 치밀한 미국 정부가 사건 발생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사건에 대해서만은 속 시원한 해결을 보지 못하는 걸 보면 정말 무슨 음모가 있긴 있는 듯. ‘플래툰’과 같은 월남 소재 작품, 그리고 진지한 사회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거장 올리버 스톤 감독이 당시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을 수사했던 짐 게리슨 검사의 기록을 토대로 케네디 암살에 대한 진실을 나름대로 재해석한 작품. 이 영화의 매력은 무엇보다 허구가 아닌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 무엇 보다 대중에게 처음 공개되는 케네디의 저격 모습을 담은 필름은 정말 충격적이다. 토미 리 존스, 게리 올드만, 도널드 서덜랜드, 조 페시 등 연기파 배우들로 포진한 조연진도 화려하다. 이 영화를 통해 미국의 영화 사전 심의제도가 조정되었을 정도로 미국 사회에 반향을 일으켰으며, 정치권의 눈치 때문인지 다수 영화제에서 후보로는 올랐으나 수상은 거의 못한 바 있다.


내 사촌 비니(My Cousin Vinny, 1992)

법정영화의 99%가 진지하고 심각한 영화인데 반해 이 영화는 놀랍게도 법정을 배경으로 하는 코미디 영화이다. 제법 유쾌하게 잘 만들어진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개봉 당시 관객들의 외면을 받아 소리 소문 없이 사장된 안타까운 영화이기도. 다른 그 무엇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바로 조 페시, ‘나 홀로 집에’의 2인조 도둑 중 키작은 아저씨이다. 사실 그는 ‘좋은 친구들’같은 작품에서 냉혹한 갱으로도 열연했던 연기파 배우인데 언제부터인가 코미디의 달인이 되어 버렸다. 법정과 변호사에 대한 엄숙하고 냉혹한 고정관념을 통쾌하게 무너뜨리며 재판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웃음을 준다. 법정 변호에 마술사 양복을 입고 들어와 재치를 발휘하는 조 페시의 코믹 연기는 정말 최고. 재미있는 사실은 이 영화에서 조연으로 출연한, 당시 거의 무명이었던 마리사 토메이가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을 수상했다는 사실. 정말 미스터리다.



일급살인(Murder in the First, 1995)

‘더 록’과 같은 작품에서도 등장하는 샌프란시스코의 저 유명한 알카트라스 감옥을 배경으로 일급살인죄를 선고 받은 죄수와 이를 변호하는 신참 변호사, 그리고 이들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악독한 교도소장이 펼치는 휴먼 드라마. 죄라는 것이 무엇인지, 한 인간이 감옥이라는 환경을 통해 얼마나 고통 받을 수 있는지, 권력을 지닌 자가 그 권력을 남용할 때 얼마나 사악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접근과 무엇보다 케빈 베이컨과 게리 올드만이 거의 신기에 가까운 완벽한 연기를 통해 인간과 정의에 대한 심각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수작. 오늘 소개한 네 작품 중에서 아마도 가장 알려지지 않은, 소위 ‘저주 받은 걸작’일 듯하다. 개인적으로 도대체 왜 이 영화가 어떤 연기상이나 작품, 감독상도 수상하지 못했는지, 아니 후보조차 오르지 못했는지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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