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을 통해 만나는 베트남전

by 유로저널 posted Jun 28,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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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6.25와 북한을 다룬 영화들에 이어 이번에는 베트남전을 주제로 한 영화들을 다뤄보았다. 수많은 영화가 베트남전을 소재로 만들어졌지만, 무엇보다 미국으로서는 여러 측면에서 손실이 컸던, 실패한 전쟁과도 다름없는 베트남전이 영화 속에서는 어떤 다양한 시각으로 그려졌는지가 관건.


플래툰(Platoon, 1986)

언제나 진지한 사회적 이슈를 영화의 단골소재로 삼아온 거장 올리버 스톤 감독의 베트남전 3부작(‘플래툰’, ‘7월 4일생’, ‘하늘과 땅’) 중 첫 작품으로 1987년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감독상을 비롯 7개 부문 수상을 한 만큼 그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힌다. 배역의 리얼리티를 최대한 살려낸 배우들의 명연기와 흠잡을 데 없는 촬영, 음악에 이르기까지 여러모로 뛰어난 작품. 올리버 스톤 그 자신이 순진한 청년시절 직접 월남전에 참전하여 느꼈던 것들을 영화를 통해 그려내는 가운데, 민간인을 거리낌없이 학살하고, 같은 아군마저도 공격하는, 전쟁을 통해 한 인간이 치달을 수 있는 극한의 악을 보여줌과 동시에 이를 저지하며 전쟁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선을 대비시킴으로써 과연 전쟁이란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불행한 것인지, 특히 인간의 영혼을 얼마나 황폐화시킬 수 있는지를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올리버 스톤 감독 자신을 투영한 것 같은 주인공 크리스 테일러가 영화의 엔딩에서 읊조리는 독백, “we did not fight the enemy; we fought ourselves. The enemy was in us.” “우리는 적과 싸운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싸웠고 적은 우리 자신 안에 있었다.”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 1979)

‘대부’의 거장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조셉 콘라드의 소설 ‘어둠의 속’을 베트남 전쟁의 상황에 맞게 각색, 연출한 작품. 말론 브란도, 마틴 쉰, 로버트 듀발이라는 당대의 명배우들이 인간 내면의 극한을 실감나게 그려내며 환상적인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월남전을 통해 전쟁의 광기에 사로잡힌 나머지 스스로 전쟁의 화신이 되어 배교자 군대를 이끌며 은둔하고 있는 전쟁이 낳은 돌연변이 커츠대령, 그리고 그러한 커츠대령을 암살하기 위해 파견되지만 결국은 자신도 그러한 광기 속으로 침몰해가는 윌리아드 중위, 윌리아드와 동행하는 동안 바그너의 음악을 틀어 놓고 민간인들에게도 융단 폭격을 가하는 또 다른 전쟁광 킬고어 대령, 영화는 이들을 통해 과연 전쟁이 인간을 어디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지, 그 극한의 상태를 보여주는 가운데 관객들로 하여금 공격성을 감춘 인간 광기의 근원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을 자아낸다. 70년대 중반의 촬영여건 상 그야말로 노가다와 같은 작업을 통해 담아냈을 그 위대한 전쟁장면들은 지금 봐도 전혀 손색이 없다.


람보(First Blood, 1982)

혼자서 수많은 적을 상대하는 비현실적인 액션 캐릭터로, 80년대 미국우월주의의 상징으로 다소 비판을 받았지만 사실 람보 1편의 원작인 소설 ‘First Blood’(사실 람보 1편의 영어 제목 또한 ‘First Blood’로 ‘람보’라는 제목이 사용된 것은 2편 부터)의 메시지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천하무적 ‘람보’의 그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1편의 상업적 성공과 실베스터 스탤론이라는 대스타의 탄생으로 2편부터는 람보가 미국의 국가대표(?) 해결사로 베트남과 아프가니스탄을 찾아가 혼자 엄청난 대군을 무찌르는, 그야말로 헐리우드적인 오락 액션물로 변질되어 갔지만, 1편은 월남전 참전 후 사회에서 냉대받는 귀환병사의 갈등을 진지하게 그린 수작. 국가를 위해 충성을 다한 젊은이를 정작 국가와 사회가 포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를 학대함으로써 전쟁의 악몽이 살아나 국가와 사회를 상대로 외로운 전쟁을 벌이는 귀환병사 람보를 통해 전쟁터와 적군보다 더 무서운 것은 국가를 위해 영혼을 희생당한 젊은이들을 정작 그 국가가 외면함으로써 저지른 잘못일지도 모른다는 무거운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야곱의 사다리(Jacob's Ladder, 1990)

이 영화는 독특하게도 월남전을 소재로 호러의 장르를 택했다. 개봉 당시, 비평적으로나 흥행적으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작품이지만, 이 작품의 연출은 ‘나인 하프 위크’, ‘은밀한 유혹’과 같은 작품으로 감각적인 화면에 일가견을 보인 애드리안 라인 감독이 맡았으며, ‘쇼생크 탈출’의 팀 로빈스가 주인공 야곱을 맡아 열연하고 있다. 영화는 과거 월남전 참전 후 현시대에서도 끔직한 악몽에 시달리는 야곱이라는 인물과 그 악몽의 근원을 추적해가는 과정을 통해 전쟁이 이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그려내고 있다. 아무래도 호러영화의 장치를 통해 전쟁의 참상과 후유증을 은유적으로 그려내려 했던 시도가 흔치 않아서였는지, 애드리안 라인 감독의 작품답지 않게 다소 전개가 엉성하고 특히 결말의 애매모호함이 거슬리는 것도 사실이지만 전쟁과 드라마의 장르가 아닌, 심령공포물의 장르로 담아낸 월남전이라는 점에서 한 번쯤 볼 가치가 있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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