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인가, 불행인가? 배역의 그림자

by 유로저널 posted Jul 0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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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에게 있어서 배역이란 곧 그 배우의 운명을 결정짓는 열쇠와도 같다. 무명이었던 배우가 잘 어울리는 배역을 통해 스타배우, 명연기자가 되기도 하고, 반면 안 어울리는 배역, 이미지에 큰 손상을 주는 배역으로 추락하기도 한다. 특히, 마치 그 배역을 위해 태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천생연분의 배역을 만나 최정상에 오른 뒤, 그 배역의 강렬한 잔상이 오래도록 지워지질 않아 다른 출연작들이 외면을 당하면서 결과적으로 성공적이지 못한 배우로 전락하기도 한다.


올리비아 핫세 – 줄리엣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로미오와 줄리엣, 1968년 프랑코 제퍼렐리 감독은 이 작품을 영화화 하면서 줄리엣 역으로 당시 실제로 17세였던, 그리고 한  번도 영화에 출연한 적이 없는 올리비아 핫세라는 신인을 줄리엣으로 캐스팅했다. 올리비아 핫세는 오랫동안 전세계인들에게 사랑 받아온 작품 속의 줄리엣이 마치 실제 인물로 환생한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줄리엣 그 자체였고, 그 열풍은 대단했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그것도 첫 영화로 출연한 줄리엣의 이미지가 너무나도 강했던 탓인지 그 후로 올리비아 핫세는 그 어떤 영화에서도, 어떠한 배역을 맡아도 영원히 그녀를 줄리엣으로만 간직하고 싶어하는 관객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면서 어느덧 50세를 넘긴 중년이 되어버렸다.


크리스토퍼 리브 – 수퍼맨

1978년 처음으로 수퍼맨이 영화로 제작된다고 하자, 수퍼맨이 지닌 지명도와 가능성만큼 수많은 유명 배우들이 본 배역을 탐냈지만, 감독과 제작자는 완전히 새로운 인물이 수퍼맨을 연기하길 바랬고, 그렇게 해서 캐스팅 된 인물이 바로 크리스토퍼 리브였다. 리브는 수퍼맨 이전에 단 한편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한 것이 전부인 신인, 그러나 그가 그려낸 인간미 넘치는 영웅 수퍼맨은 전세계인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그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러나, 관객들은 그 뒤로도 그를 통해 오직 수퍼맨만을 떠올렸고, 당연히 그가 다른 배역으로 출연한 작품들 또한 외면을 당했다. 네 편의 수퍼맨 시리즈가 끝나고 90년대 들어서는 그야말로 잊혀져 가던 리브는 1995년 낙마사고로 전신마비가 되면서 다시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으며, 2004년 52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불굴의 정신으로 다양한 활동을 펼쳐 사람들에게는 운명에 굴하지 않는 진정한 수퍼맨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 같다.


멕 라이언 – 귀여운 그녀

영화사상 멕 라이언만큼 ‘귀엽고 로맨틱한 여인’ 이미지가 강한 배우는 전무후무할 것 같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샐리를 통해 본격적으로 명성을 날린 이래로 멕 라이언은 특유의 상큼하고 귀여운 이미지로 전세계적인 사랑을 받았다. 특히, 톰 행크스와 환상의 콤비를 선보인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은 그녀의 매력이 정점에 달했던 작품. 그러나 이후 이미지 변신을 위해 다소 진지한 드라마 연기를 선보인 ‘남자가 사랑할 때’, 그녀가 강인한 군인으로 출연한 ‘커리지 언더 파이어’가 그녀를 귀여운 여인으로만 바라보는 관객들의 외면을 당하면서 그녀가 다른 배역으로 변신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시작되었다. 이후 ‘프렌치 키스’, ‘유브 갓 메일’ 같은 작품으로 다시 로맨틱 코미디로 복귀하지만 이제 중년이 되어버린 그녀가 평생 귀엽고 로맨틱한 여인으로만 남을 수는 없는 노릇, 2000년대 들어서는 파격적이기까지 한 다양한 변신을 시도하지만 결국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서서히 잊혀진 배우가 되고 있다. 거기에다 외도에 이은 이혼과 보톡스 주입으로 얼굴이 변하는 등 관객들이 사랑했던 그녀의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실제 생활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실베스터 스탤론 – 록키&람보

무명의 3류 배우에서 자신이 직접 각본을 쓰고, 자신을 주연으로 캐스팅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계약한 ‘록키’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면서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으로 떠오른 실베스터 스탤론. 흔히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비교되는 스탤론이지만, 아놀드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코난’은 1982년 작으로 스탤론이 먼저 데뷔했다고 할 수 있다. 같은 해인 1982년 스탤론은 일당백 액션의 대명사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람보’를 통해 액션배우로 큰 사랑을 받으며 그의 시대를 열어갔다. 그러나, 1985년, 아메리칸 드림이 스며있는 휴먼드라마로서의 록키 초기작과는 달리 소련과 대결을 벌이는 록키 4편과, 귀환병의 고뇌를 담았던 람보 1편과는 달리 다시 월남에 들어가 역시 소련군을 무찌르는 다소 황당한 람보 2편을 통해 레이건의 미국 우월주의시대를 대표하는 미국의 국가대표(?) 액션스타 이미지가 굳어졌고, 이후 ‘엄마는 해결사’ 같은 코미디와 ‘캅 랜드’와 같은 드라마로 연기 변신을 시도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다. 그나마, ‘록키’, ‘람보’ 외 사랑 받은 작품은 역시 액션물인 ‘클리프 행어’ 정도. 어느덧 환갑을 넘긴 스탤론은 최근작인 ‘록키 6’과 ‘람보 4’로 자신의 연기인생을 정리하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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