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음악가 열전을 연재하면서

by 유로저널 posted Jul 1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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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과연 얼마나 될까? 대학시절, 우리나라 최고의 영화음악가인 조성우 교수님의 수업을 직접 들은 적이 있었다. ‘조성우’라는 이름이 낯설다면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를 비롯한 허진호 감독의 작품이나 세계적인 뮤지션 시크릿 가든이 연주한 영화 ‘선물’의 주제곡 ‘The last gift’를 떠올리면 될 것 같다. 이 모든 음악을 만든, 어쩌면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인 영화음악감독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조성우 교수님, 그리고 그는 연세대학교 철학과 출신으로 당시 ‘영화, 음학, 철학’이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강의를 맡으셨었다. 수업 첫날 자신이 음악을 담당한 영화 ‘선물’의 라스트신, 즉 이정재의 무대를 지켜보며 이영애가 죽어가는 장면의 필름을 보여주셨는데 음악이 입혀지지 않은 오리지날 촬영본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같은 부분을 보여주면서 이번에는 실제 영화에서 삽입된 ‘The last gift’를 틀어주셨다. 음악이 영화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그토록 단순하고 명료하게 깨달은 적은 처음이었다.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영원한 동심의 꿈으로 남아있을 영화 ‘ET’에서 주인공 엘리엇이 ET를 자전거에 태우고 밤하늘을 날아가던 장면에서 만약 음악이 빠졌더라면 그와 같은 감동을 자아낼 수 있었을까? 망토를 걸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모습만 봐도 어디선가 휘파람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지 않은가? 꿈을 향해 열심히 뛰는 록키의 모습에서 벌써 ‘빠바밤~’하는 음악소리가 가슴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지 않던가? 어디선가 ‘Snow Floric’이 흘러나오면 눈 쌓인 센트럴 파크에서 뛰노는 연인들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리지 않던가? ‘오멘’의 음산한 합창음악이 들려오면 소름이 돋지 않던가?

영화가 눈으로만 즐기는 단순한 활동사진에서 1927년 최초의 유성영화인 ‘재즈싱어’를 필두로 토키(Talkie)시대, 즉 유성영화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관객들은 영화 속에서 들리는 일반적인 소리뿐만 아니라 영화음악이라는 또 다른 영화적 장치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초기의 영화음악들은 그저 삽입곡이나 배경음악에 가까운 정도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영화만을 위해 작곡된 음악이 영화의 느낌을 증폭시키는 역할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영화가 관객에게 전하려는 느낌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생긴 것이다.

영화음악은 크게 두 부류로 볼 수 있다. 하나는 본 영화만을 위해 작곡되고 연주된, 그래서 영화의 장면장면에 흐르는 Original Soundtrack,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OST이고, 또 다른 하나는 영화를 위해 작곡되지는 않았지만 영화에 삽입된 음악, 주로 노래가 많다. 즉, ‘ET’에서 하늘을 날 때 흐르던 존 윌리암스의 음악 ‘Flying’은 OST라고 볼 수 있고, ‘접속’에 삽입된 ‘A lover’s concerto’같은 노래는 삽입곡이라 볼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영화음악의 개념이 다소 애매하게 사용되기도 했었던 것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영화음악이 뭐냐고 물으면 ‘약속’에 삽입된 제시카의 노래 ‘Good-bye’라는 대답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조성우 교수님을 비롯 기타리스트 이병우 등 영화를 위해 직접 작곡을 훌륭한 영화음악가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한동안은 올드팝 삽입이 유행이 되어 ‘영화음악’ 하면 영화에 삽입된 팝송들로 여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사랑과 영혼’이 ‘Unchained Melody’를 삽입해서 좋은 반응을 얻은 이후, ‘웨인스 월드’에 삽입되어 몇 십 년 만에 다시 빌보드 1위를 기록하는 이변을 낳았던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 우리영화도 ‘접속’이후 ‘쉬리’에 삽입된 캐롤 키드의 ‘When I dream’, ‘약속’에 삽입된 제시카의 노래 ‘Good-bye’가 많은 사랑을 받았다. 박신양과 전도연이 주연해 대히트를 기록한 영화 ‘약속’의 음악은 조성우 교수님이 담당했었는데, 영화에 흐르는 대다수의 배경음악을 심혈을 기울여 작곡하고, 양념으로 제시카의 ‘Good-bye’를 삽입했는데 정작 영화 개봉 후 시상식 을 비롯 중요한 자리에는 영화음악을 작곡한 자신은 뒷전이고 제시카를 외국에서 초청하여 오히려 더 융숭한 대접을 했다는 웃지 못할 사연을 들려주시기도 했다.

한편, 어떤 영화는 영화 자체의 뒷심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수준보다 한 층 뛰어난 영화음악으로 인해 영화의 흥행에 덕을 보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영화음악이나 삽입곡은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정작 영화는 참패한 그런 영화도 있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영화 ‘Rush’, 어지간한 영화광이 아니고서는 이름조차 생소할 이 영화는 바로 저 유명한 에릭 클랩튼의 ‘Tears in heaven’이 삽입된 영화, 필자도 중학생 시절 이 노래를 듣기 위해 영화의 OST 음반을 구입했던 기억이 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제법 괜찮은 작품임에도 영화는 완전 참패한, 지독하게 운 나쁜 케이스.

이제는 당당히 음악의 한 장르로, 음반점에서도 한 코너를 차지하고 있을 만큼 보편화된 영화음악이지만 사실 요즘 나오는 영화음악들은 예전의 그것에 비하면 다소 깊이와 여운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최근 영화 중 음악이 떠오르는 영화도 없고, 음악 만으로 영화가 떠오르는 영화도 없으니… 그래서, 다음 시간부터 영화음악가 열전을 시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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