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교과서 국정화로 내년 총선위한 보수결집 시도는 '자충수'
박근혜 정부가 치밀하게 준비해 폭풍처럼 밀어붙였던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확정고시되면서 여야는 물론 나라 전체가 둘로 쪼개져 자극적인 막말과 일방적인 주장으로 갈등을 벌이기 시작하고 있다.
특히, 지난 한 달 동안 우리 사회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라는 거대한 블랙홀에 빠지면서, 찬성과 반대를 요구하는 극렬한 이념 대치가 지속되어, ‘북한의 지령’, ‘적화통일’과 ‘유신회귀’, ‘역사 쿠데타’, '역사학자 90%는 좌편향' 등의 자극적인 막말과 일방적 주장들로 갈등과 대립만을 일삼아 왔다.
정치권에선 국정화 강행이 내년 총선을 겨냥한 이념지형을 여권에 유리하게 재편하고, 진영 대결로 가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이 놓은 덫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았지만 국론의 강제통합 시도로 인한 국론분열, 중도층 이탈, 보수진영의 극우화 경향, 박 대통령의 신뢰도 훼손 등으로 ‘박근혜의 덫’이 자충수가 되었다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국정화 문제는 박 대통령이 전면에 나섰음에도 반대 여론이 결집했고, 강경보수들만 국정화를 지지하고 중도층이 떠나는 모습을 드러내면서, 박 대통령의 정치적 자산으로 평가되는 신뢰 이미지가 훼손되고, 불통과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 부족 이미지만 고착시켰기때문이다. 결국, 박 대통령은 자신이 직접 나서 ‘역사 전쟁’을 선포했지만 오히려 국론을 완전 분열시키며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권과 시민단체의 반발만 갈수록 커지고 있다.
박 대통령은 10일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되는 것이고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무서운 일"이라고 밝혔다.
이날 박 대통령은 현 교과서에 대해 "(현 교과서는) 대한민국은 정부수립으로, 북한은 국가수립으로 서술되고, 대한민국에 분단의 책임이 있는 것처럼 돼있다"고 운을 띄우면서 문제점을 직접 조목조목 지목했다.
그러면서 "6.25전쟁의 책임도 남북 모두에게 있는 것처럼 기술되며 전후 북한의 각종 도발은 축소하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은 반노동자적으로 묘사한다"며 "기업의 부정적 면만 묘사해서 반기업 정서를 유발하면서 학생들에게 그릇된 가치관을 심어주게 돼있다"라고 지적했다.
새정연, 저주같이 내뱉는 무서운 말로 너무 비상식적
새정치민주연합은 10일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박 대통령이 오늘 국무회의에서 역사를 바르게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면서 "참으로 무서운 대통령이다. 너무도 비상식적인 말이어서 충격적"이라고 했다.
김성수 새정치연합 대변인은 서면브리핑을 향해 "대통령의 주장대로라면 바르지 못한 현행 교과서로 배운 우리 국민들의 정신이 이상해졌다는 의미일 테니 대통령 말마따나 생각만 해도 참으로 무서운 일"이라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향해 한 말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아무리 교과서가 마음에 안 든다고 이토록 저주에 가까운 말을 내뱉는 박근혜 대통령은 참으로 무서운 대통령"이라고 재차 비난했다.
문재인 대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발표 맹비난
한편, 새정연 문재인 대표는 4일 '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 대국민담화'를 통해 "박근혜 정권의 이념전쟁이 도를 넘어섰고, 이념전쟁은 독재 권력의 전조"라고 맹비난했다.
문 대표는 이어 "5·16쿠데타 정권, 유신 정권, 12·12 신군부 정권은 모두 권력의 이념전쟁 뒤에 등장한 거악(巨惡)이었다. 역사왜곡도 이념전쟁도 반드시 막아야 한다"며 "역사교과서 국정화 고시 강행은 획일적이며 전체주의적 발상이며,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여론을 수렴하겠다는 정부의 말은 모두다 거짓말이었고, 압도적인 국민여론을 무시하고 불법행정을 강행하는 것이 독재"라며 "정부가 국정교과서의 표본으로 삼으려는 교학사 교과서는 일제 식민지 지배 덕분에 근대화했다고 미화하고, 친일파의 친일행적을 의도적으로 왜곡, 누락한 교과서여서 당연히 채택한 학교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특히 문 대표는 "99.9%를 부정하고 0.1%만이 정상이라는 박근혜 정부의 극단적인 편향 앞에 국민은 어이가 없다"며 "역사학자 90%가 좌파라는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말로도 드러나듯이 정부의 역사 국정교과서는 극도로 ‘편향된 교과서’이고, 국민을 이념적으로 편가르는 '나쁜 교과서', '반통일 교과서'”라고 말했다.
학계, 국정교과서 대응하는 ‘대안 교과서’ 개발 착수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확정 고시하자 현재 가장 많은 국내 역사 관련 회원들이 가입한 한국역사연구회가 국정교과서에 대응할 ‘대안 교과서’집필의사를 밝혔다.
이 연구회는 지난 달 16일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성명을 내놓으면서 “국정화가 올 것을 예상하며 연구자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대안 한국사 도서의 개발을 준비했다” 며 “국정화가 강행된다면 대안 한국사 도서의 편찬에 더욱 속도를 내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대안 교과서의 집필진은 연구회 소속 교수나 역사 관련 학자들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연구회 편집위원 및 임원 출신 학자들은 지난 2013년 검정으로 발행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연구회들의 대안교과서 집필의 움직임이 보이자 앞서 교육부는 법적 조치를 검토하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학회는 민간차원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제재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시 교육청, 친일인명사전을 서울 중고교에 비치
서울시교육청이 12월부터 서울 시내 모든 중·고등학교 도서관에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을 비치할 계획이라고 밝히자, 정부 여당이 반발하고 나섰다.
김문수 서울시의회 교육위원장은 10일 역사, 한국사 검정교과서도 정부의 검열을 받고 있기 때문에 친일·독재에 대한 서술이 충분하지 않다면서 "학생들에게 애국을 가르치려면 거꾸로 일제시대 때 친일·반민족행위를 구체적으로 기술해놓은 친일인명사전 같은 교육보충자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친일이든 종북이든 민족과 국가에 반역행위를 한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새누리당 의원들은 자기 당 소속 의원들의 선조가 많이 (기록)돼 있기 때문에 부담스러워하는 것이 있다"며 "전직 대통령이나 우리 사회 지도층의 선조들이 많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서울시 교육청이나 공무원 관계자들도 이를 부담스러워하고 있다"고 했다.
유로저널 김세호 기자
eurojournal01@eknews.net
김한성 민주주의국민행동 공동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05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 '어떤 정권에 의해 역사교과서가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 역사는 역사학자들의 몫이어야 한다'고 말했다"면서 "박 대통령은 자신이 했던 말을 자신이 부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