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선우 감독, 한국 영화사에 있어서 그 만큼이나 문제작을 많이 만들고 논란의 중심에 섰던 연출자가 또 있을까? 이번 시리즈를 연재하면서 그나마 다른 감독들은 차기작 계획이 있거나, 비록 연출가로서는 아니지만 적어도 영화계의 울타리 안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이들이다. 그런데, 오늘 소개하는 장선우 감독은 워낙 개성이 강한 분이셨던 탓에 아예 제주도에 칩거하면서 카페를 운영하고, 속세에서 떠난 듯한 삶을 살고 계신다.
장선우 감독의 본명은 장만철로, 서울대 고고인류학과를 졸업했다. 80년대 초반 이장호 감독의 연출부에서 영화를 배웠다. 이러한 이장호 감독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그의 감독 연출작, 더 정확히는 선우완 감독과의 공동 연출작이지만, 86년 작 ‘서울황제’는 이장호 감독의 걸작 ‘바보선언’과 비슷한 코드의 영화였다.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자칭 예수를 통해 80년대 한국 사회를 조망하고 있는 작품. 본격적인 단독 연출작인 88년 작 ‘성공시대’는 김판촉이라는 인물을 통해 대기업과 자본주의의 병폐에 본격적으로 물들기 시작한 한국 사회를 담아내며 호평을 받았다.
사회비판적인 작품들을 선보인 80년대를 뒤로하고 90년대 첫 작품으로 연출한 ‘우묵배미의 사랑’은 소시민들의 삶을 기록영화적인 시각으로 그려내면서 장선우 감독의 또 다른 역량을 과시한다. 여기까지였다, 장선우 감독의 작품이 논란이 되지 않았던 작품은.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에서 키워드로 떠오르던 시기적인 상황과 맞물려 그의 다음 작품 ‘경마장 가는 길’은 비록 흥행에서 성공하지도 못했고, 주연 배우들에게는 남녀 주연상이 주어지면서도 이장선우 감독에게 어떠한 상도 주어지지 않았지만, 장선우 감독이 제시하는 성(性)에 대한 논란이 처음으로 제기되면서 비평가들의 뜨거운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1993년 작인 ‘화엄경’은 불교경전 가운데 가장 난해하다는 '화엄경'을 장선우의 해석과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역시 화제를 일으키며 비록 흥행에서는 참패했지만 32회 대종상 감독상과 44회 베를린 영화제 알프레드 바우어상을 수상하면서 비평가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지난 시간 소개한 정지영 감독이 소설가 안정효의 작품들을 영화화하여 연출세계를 펼쳤다면, 장선우 감독은 소설가 장정일의 작품을 통해 그의 연출세계를 펼쳤다고 할 수 있다. 당시만 해도 음란물에 대한 규정과 사회적 시선이 뜨거웠던 시절, 94년 작 ‘너에게 나를 보낸다’는 정말 많은 화제와 논란을 일으켰던, 우리 영화사에 가장 파격적인 작품이었다. 장선우 감독의 해학과 실험정신이 최고로 발휘된 작품으로, 이 작품으로 일약 스타가 된 신인 정선경은 물론, 주연 문성근, 조연 여균동의 연기도 일품이다.
96년 작 ‘꽃잎’은 우리 영화사 최초로 광주 민주화항쟁을 다룬 작품으로, 지금은 가수로 더 잘 알려진 이정현이 주인공으로 출연하여 신들린 연기를 선보이며, 최근에 개봉되었던 ‘화려한 휴가’의 사실 기록적인 시선보다는, 관념적인 장치들, 그리고 놀랍게도 성을 은유적으로 접목시키는 등, 역시 장선우 감독다운 파격적인 연출을 선보이며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작품상을 수상했다.
장선우 감독의 파격은 과연 어디까지인가? 97년 작 ‘나쁜 영화’는 실제 비행 청소년들과 노숙자들의 삶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아낸 작품으로, 당시 심의에 걸려 많은 부분을 강제로 삭제 당하고서야 겨우 개봉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주목해야 할 그의 작품은 21세기를 바로 앞에 두고 만들었던 99년 작 ‘거짓말’. 역시 장정일의 원작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역시 당시 사회 분위기에서는 용납될 수 없었던 음란한 표현으로 논란이 되었던 작품. 그러나, 몇 년 뒤 우리 사회에서는 인터넷을 통해 음란물이 범람하면서 ‘거짓말’에서 선보인 표현 정도는 더 이상 음란 축에도 속하지 못할 만큼 급변해 갔다.
2002년 작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장선우 감독의 가장 큰 파격이자 실수였는지도 모른다. 그 동안 그가 직접 발굴한 배우를 기용했던 것과는 달리 이미 TTL 소녀로 뜬(?) 임은경을 캐스팅, 그리고 거대 자본을 투자 받아 이해하기 어려운 판타지 액션을 시도한 것이다. 결국 비평, 흥행에서 모두 실패한 이 작품을 끝으로 장선우 감독은 거의 영화계를 떠난 것처럼 지내고 있다. 과연 그의 다음 연출작을 볼 날이 찾아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