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자전거나라와 함께 하는 이탈리아 에세이 7화
이탈리아 사람들, 게으름에 관한 단상
로마에서 살게 된지 지난 6월 14일로 정확하게 8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해와 올해는 출산과 육아로 집에서 쉬고 있기에 두해 연속 가이드가 아닌 신분으로 여름을 맞이 하고 있습니다.
작년 처음으로 느긋한 여름을 맞이하며..임신 중이었던 탓에 하루의 반 이상을 잠으로 보내다보니 정신을 차리면 테라스에 앉아 이집 저집 관찰을 하는게 하루 일과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신기하다 싶었던 풍경이 9시쯤 일어나 창 밖을 보면 어김없이 빨래가 널려있는 모습이었습니다. 12시쯤 다시 밖을 보면 빨래는 걷어 있고......새 빨래가 널어져 있고......그런데 여기서 신기하다는 건 하루가 멀다 하고 침대시트가 널어져 있었다는 겁니다. 그것도 대다수의 집들이......
사실 아침에도 잠을 깨우는 아파트 전체에서 들리는 소리가 청소기 바퀴 굴러가는 소리....세탁기 돌아가는 소리..입니다. (한국의 층간소음이 대단하다지만, 이탈리아만 할까요…휴대폰 진동소리는 물론 화장실에 앉아 있으면 옆집의 전화 대화 내용까지 모두 들리는 경지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건 아무도 아랑곳하지 않는 다는 것!! 사실 임신 내내 옆집소리가 이렇게 잘 들려오면 우리 집에서 아기가 태어나 울면 어느 정도일까 많이 걱정이 되었는데요. 물론, 아이 우는 소리는 동네가 떠나가라 울려 퍼졌습니다. 아이를 안고 외출을 할 때 만나게 되는 동네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하자, 그들이 더욱 놀라며 대답하더군요. “왜? 아기인데 우는 건 당연하잖아?” )
여튼, 이런 소리들에 잠에서 깨면 "이 나라 사람들은 잠도 없나? 부지런하다 부지런해.." 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그러고 보니 이탈리아에 시집온 친구들이 결혼하고 가장 놀란 건 이탈리아 시어머니들의 부지런함이었다고 합니다. 일어나자마자 호텔급의 침대시트 정리(이탈리아 사람들은 일어나서 다시 자러가기전엔 침대에 눕지 않습니다. 철저한 거실생활) 하루에 두세 번 세탁기 돌리기에 점심 전에 대청소, 심지어 설거지를 하고 모든 식기는 닦아서 진열하며.. 빨래한 모든 옷가지들은 다림질합니다.(침대시트는 물론이고..양말까진 이해하지만...팬티에..게다가 수건까지!!! 것도 비대 수건까지!!) 밥을 먹을 때마다 다시 장보기, 식사 때마다 식탁보 갈기......
일하는 엄마들은 거의 5시쯤 기상해 침대시트 정리하고 아침 먹고 설거지에 주방정리까지 다하고 출근한다니...... 이탈리아 여인들이 세상에서 제일 부지런한 거 같다며 다들 혀를 내두릅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고서야 보이기 시작한 이탈리아 엄마들의 지극정성, 한국엄마들도 대단하다지만 이탈리아 엄마들도 그에 못지 않습니다. 제 생각엔 좀 더 유난스러운 거 같네요. 심지어 여행을 가도 아이들 이유식 준비를 위해 점심 시간과 저녁시간엔 다시 숙소로 들어갈 정도에다가 외국에 사는 친구는 이탈리아 물까지 공수해다가 이유식을 만들 정도로 극성스럽기도 합니다. 그리고 음식에 대한 지극정성은 그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끊임이 없습니다. (이탈리아 남자들의 “집 밥이 최고”와 “마마보이” 정신이 그냥 나오는 건 아니겠지요?)
그러고 보니 한국과 이탈리아가 닮았다 싶은 건...... 위의 일들이 거의 여자들의 전유물이니 이탈리아 집에 초대를 받으면 여자들 음식준비 내내, 남자들은 소파에서 티브이 보며 빈둥빈둥하는 모습은 그닥 낯선 풍경이 아니기에...... 친구들이 집에선 잘만 도와주다가 시댁만가면 남자들이 소파에만 붙어 있다고 투덜투덜합니다.
그럼 남자들은 내내 놀기만 하는가.. 또 그런 것도 아니다 싶은 게...주말이면 아이 있는 집들은 항상 아이들과 함께 외출을 하고.. 요즘같이 무더운 날이면 거의 바다인데...해변에서 보면 물에 있는 건 언제나 아빠와 아이들, 엄마들은 언제나 썬텐입니다.
요즘은 걷기 시작한 아들을 데리고 늦은 오후에 항상 놀이터에 갑니다. 이탈리아 놀이터는 벤치가 놀이터 주위로 둘러싸고 있어 엄마들은 벤치에 앉아 다른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이들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아직 잘 걷지 못하는 아이들은 어김없이 아빠들 차지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 느꼈는데... 새집에 이사를 오니 집에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전등이 있어야 할 자리엔 전선만... 심지어 부엌엔 주방이 없었습니다. 아니 변기뚜껑은 왜 가져간 거야! (누군가가 위로랍시고 변기통은 있지 않으냐는데......) 덩그러니 침대 하나만 두고 가구도 아무것도 없는 터에 이사 오고 근 4개월 넘게 가구사고 조립을 했것만 아직도 미완성입니다. 삼 개월 만에 들어온 주방은 설치만하고 물 따로 가스 따로 사람 불러 연결하라니...... 처음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습니다. 어째 가구 가격보다 사람을 부르면 돈이 더 드니...... 그럼 결국 절약을 위해선 집안의 남자들이 나서야지요. 쉬는 날엔 가구 날라놓고 다음 쉬는 날엔 밤새 조립하고. 그래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다른 집 남자들도 주말이면 여기 수리 저기 수리 바쁩니다. 심지어 날 맞춰 이사한 친구집, 친척집에 품앗이도 가구요..
인간적으로 소켓 정도는 남겨줘야하는거 아닌가요…
전등 달기전, 임시 방편 상황입니다.
인간의 살고자 하는 의지는 위대하다!! 주방이 들어오기 전 열악했던 상황입니다.
문득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이탈리아 여자들도 남자들도 참 부지런하구만.... 되뇌이다,
어?
이탈리아 여행오면 대부분 이들이 하는 말이 “이탈리아 사람들은 조상 잘 만나서 게으르다.” 라는 건데... 처음 이탈리아에 살기 시작했을 땐 인터넷 연결에만 1년 가까이 걸리다 보니 정말 이해를 할 수가 없었는데.. 8년 넘게 살다보니... 빨래도 매일 새로하고 게다가 다려야지... 주말엔 항상 애들이랑 놀러가야지.. 집에서 할 일이 너무 많은데 어떻게 밖의 일까지 빨리 처리할 수 있으랴…라고 받아들이게 되어버렸습니다.
한국 티브이 프로를 보면 요즘 많이 나오는 내용들이 “집에서 아빠자리가 없다.” 라는 걸 보면, 밖의 일에 더 집중을 하다보니... 집 안의 역할에 소홀해지는 경우겠지만.. 이탈리아는 집 안의 일에 더 집중하다보니 밖의 일에 소홀해진다기 보다 덜 급한 건 아닌지요.
8년만에 이탈리아는 드디어 인터넷이 일년에서 보름만에 연결이 되는 엄청난 나라로 도약(....;;)했습니다. 하지만 4개월째 고장난 보일러는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고.. 드디어 다음주 월요일이면 새보일러가 들어온답니다. 12시부터 2시사이에 사람이 온다니 또 월요일 하루 종~~~일 기다리고 있어야하겠지만.. 일이 처리만 되면 이젠 만사 오케이입니다. 4개월쯤 되니까 머리를 감으면 머리가 터질만큼 차가운 물에 샤워하는 것도 거뜬합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니까요.
여전히 욕나오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이탈리아지만... 작년 이탈리아 의료보험이 만기가 되어 갱신을 하러가는데... 이 나라가 서류처리에만 몇 달이 걸리는 터에 출산은 임박해오고 잔뜩 걱정을 안고 관공서에 갔더니.. 앉은 자리에서 5분도 안되어서 의료보험카드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늦게 처리될까 걱정했다는 저에게 이탈리아 아저씨는 만삭의 제 배를 보고는 윙크 한번 해주시며 걱정을 왜 하냐 축하한다. 그리고 악수 한번에 모든 것이 완료되었습니다. (심지어 외국인은 의료보험카드 만들 때 100유로 이상의 돈을 내야하는데 임산부는 무료!)
이들에게 인터넷은 당장 필요한게 아니고... 보일러는 찬물에 샤워좀 하면 되는 거지만... 임산부가 걱정하며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건 큰일 인거겠죠.
그렇게 생각하니 이 나라 사람들이 게으른 것이 아니라.. 빨리 처리해야하는 일의 우선 순위가 우리와 다른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처리 이따위로 해도 휴가 계획은 빨리 잡고 숙소예약은 엄청 신속하게 해놓는 사람들이니까요..-_-;;
영화평론가 이동진씨의 [밤은 책이다]를 읽다 보니 이런 구절이 마음을 끕니다.
“업적이란 새로운 것을 집요하게 시도할 때 가능성이 더 커지는데, 일상은 새로운게 아니라 늘 해오던 익숙한 일들을 반복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하루하루의 삶에서 행복을 발견할 줄 아는 능력과 특별한 성과를 향해 전력질주할 수 있는 능력은 서로 이율배반적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미국의 사상가 랠프 에머슨은 “명성과 휴식은 한 지붕 밑에서 살 수 없다”고 했던 것이겠지요. 그러니 다시 한번, 업적 대신 일상이 있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요.
문득 이탈리아 사람들을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하는 이유가 삶의 명성보다는 일상의 행복에 더 집중하고 가치를 두기에 어쩌면 욕심없는 사람들이라서가 아닌지.. 참 변화하지 않는 나라다 싶다가도 새로워지는 것보다 소소해보지이지만 일상에서의 가치에 더 집중하고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몇 년의 삶을 이곳에서 지내다 보니 포기는 익숙해지고 기다림은 당연한 것이 되어 버리니 불편함은 웃으며 감수할 만한 사소함이 되어버리는 경지도 오는 듯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바뀌고 점차 이탈리아 사람들도 세상의 변화에 맞춰나가야겠지만... 그들의 융통성 없는 게으름이 오래도록 지속되었으면 하는 것은 저의 욕심이겠죠. 뭐... 그닥 세상의 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 이들이라 변한다해도 아~~~주 천천히 이루어지겠지만요.
글,사진: 유로자전거나라 김민주 가이드
출처: 유로자전거나라 www.eurobik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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