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저널 54
삶의 기쁨에서의 절정과 아름다움의 서비스를
모두 함께 전달해 주는 것은 바로 예술이다2
2. 창부는 예술가의 쌍둥이 짝이다
클림트 그림속 여인들은 팜프 파탈이다. 옷을 벗은 채 아주 당당히 고개를 들고 보는 이를 유혹하는 치명적인 모습이다. 어째서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역사 속의 정숙한 여인들이, 심지어 유대 민족을 구원한 유디트조차 금방 섹스를 끝낸 환락가 요부의 몽롱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일까?
다나에, 구스타프 클림트, 1907-1908
예상처럼, 당시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들은 퇴폐적인 에로티시즘이라는 따가운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사실 그가 살았던 시대와 도시 빈은 그의 작품보다 더욱 퇴폐적이었다. 부르주아 사회는 문란해져 청교도적인 도덕률은 사라지고 매독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클림트를 포르노 작가라고 비난했던 사람들은 그보다 더 퇴폐와 환락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요부상이나 창부상 등을 통해 현실을 드러내는 현대예술을 예술사회학자 아놀드 하우저(Arnold Hauser)는 "창부는 격정의 와중에서도 냉정하고, 언제나 자기가 도발한 쾌락의 초연한 관객이며, 남들이 황홀에 도취에 빠질 때에도 고독과 냉담을 느낀다. 요컨대 창부는 예술가의 쌍둥이 짝이다”라고 했다.
당시 예술가들은 부르주아 혁명의 가치를 담아 작품을 제작했으나, 권력을 장악한 부르주아는 그런 예술을 멀리하고 오히려 고전적 작품을 선호했다. 버림받은 예술가들은 스스로를 창부와 동일시함으로써 또는 창부를 동경함으로써 스스로 창부가 되고, 그럼으로써 세상을 향해 특히, 부르주아 사회를 향해 "네가 오히려 진짜 창부다"하고 절규했다.
클림트도 자신의 쌍둥이 짝으로 여성을 택했고 자신의 목소리를 맘껏 발산했다. 당시 오스트리아의 많은 여인들은 클림트가 그들의 초상화를 그려주기를 간절히 원했고, 클림트는 그것을 기꺼이 응했다. 그의 수많은 초상화들에는 비엔나의 상류층 부녀자들을 즐겁게 해주었던 현란한 장식성과 색채가 그대로 남아 있다.
3. 황금 시대
키스, 구스타프 클림트,1907-1908
무언가에 홀린 듯하면서도 무표정한 여인의 모습에서 묘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이 작품은 현재19~20세기 미술사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벨베데레 궁전에 영구히 전시되고 있는 클림트의 ‘키스’다. 1908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처음 소개되었을 당시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세상에서 가장 많이 복제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껴안은 남녀를 종 모습으로 묘사한 것이 황홀경에 빠진 사랑의 종소리가 우주로 퍼져 나가는 듯하다는 등 이 작품속 연인의 주위를 감싸는 배경을 두고 다양한 해석들이 있다.
한 미술 평론가는 “두 연인이 꽃의 바다에 서 있다. 이것은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중 헤라가 이다산에서 제우스를 포옹했을 때, 대지에서 꽃들이 솟아오르던 장면을 연상시킨다.두 연인이 사랑의 축제를 위한 예복을 입고 있고, 세상도 축제를 준비하는 듯 하다”고 자신의 황홀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작품이 풍기는 고급스러움과 아름다움, 그리고 황금빛의 화려함과 정교한 장식성은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것에는 또 하나의 놓쳐서는 안되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당시 보편적인 사랑의 관념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 시대에는 저돌적이고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는남성과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입장에서 사랑을 받는 여성의 이미지가 대중적이었다. 연인에게 매달린 채 무릎을 꿇고 눈을 감고 있는 여성의 모습은 남자의 남성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동시에 온전히 사랑 받고 있음을 나타내며 작품을 바라보는 대중으로 하여금 그런 대리만족감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이 그림이 그려지고 소개된 1907-1908년은 클림트의 그림 일대기 중 ‘황금시기(Golden period)’라 불리는 때다. 1907년 이탈리아 여행에서 클림트는 비잔틴 예술의 영향을 받아 금빛 물감과 금박이가 등장하는 이른바 ‘황금 시대’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보다 먼저 1903년 그는 이탈리아 라벤나를 두 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 이곳은 베네치아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유스티아누스 황제 시절의 비잔틴 스타일 사원과 무덤에 장식한 모자이크 벽화가 유명한 곳으로 한때 서로마제국의 수도였고, 단테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그는 이 곳의 황금 모자이크에 푹 빠지게 되었고, 이것이 클림트 황금시대의 시발점이 되었다.
즉, 클림트의 황금시기는 1903년 ‘유디트 1’을 그린 다음 ‘유디트 2’를 그린 1909년까지를 말한다. 황금기의 그림들은 판화기법과 모자이크 처리, 색상의 통일에서 보여주듯이 빛의 변화에 따라 주관적으로 그려진 인상주의 작품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유디트2, 구스타프 클림트, 1909
클림트의 황금기는 말그대로 작품의 황금기이기도 했다. ‘아데레 브로흐 바우어의 초상’, ‘생명의 나무’, ‘성취’ 등 대중에게 익숙한 클림트의 금빛 작품들이 모두 이 시기의 작품들이다.
생명의 나무, 구스타프 클림트, 1905-1909
성취, 구스타프 클림트, 1905-1909
그러나, 대표작인 ‘키스’가 발표된 1908년을 기점으로 클림트는 자신의 황금시대를 종료하려 했다. 그는 "장식은 이제 우리 문화와 아무런 유기적 관련을 맺지 못한다. 장식은 더 이상 진보할 수 없고, 그러므로 지진아적, 비정상적 현상에 속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최후의 순간까지 관능성과 장식성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않았다.
클림트는 색만 화려하게 한 것이 아니라 황금을 이용해서 비잔틴 모자이크를 현실적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평가들은 클림트를 이미 110년 전에 과거와 당대의 미술을 합쳤고 동서양의 요소뿐 아니라 모자이크, 판화, 문학, 음악적인 요소를 동원해서 미래에 열광하게 될 새로운 지평을 창조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래서 누가 보더라도 공감이 가는 면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4. 나는 진정한 사랑에 두려움과 존경심마저 느낀다
에밀리와 클림트
(다음에 계속…)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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