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법칙을 지배하는 자, 데미안 허스트

오지혜의 런던 아트 나우(London Art Now #4)
게임의 법칙을 지배하는 자, 데미안 허스트

데미안 허스트라는 작가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있어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형용어는 ‘문제아’ ‘이단아’ ‘파격’ ‘충격’ ‘공포’와 같은 단어들이다. 그는 1991년 그는 자신의 첫 개인전에서 죽은 상어를 포름알데히드가 가득 찬 유리 진열장 속에 매달고 모터를 연결해 움직이게 한 작품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라는 충격적인 작품을 선보이며 그야말로 파격적으로 미술계에 공식 입문했다. 뿐만 아니라 죽은 나비의 화려한 색채로 가득 찬 캔버스, 썩어가는 소머리와 파리 그리고 살충기, 값비싼 다이아몬드가 빼곡히 박혀 있는 사람의 해골, 거대하게 확대된 의학용 인체 해부 모형 등 그의 작품은 예술이라고 하기에 너무 버거운 시각적 충격을 선사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현대미술에 있어서 가장 주목할 만한 작가일까.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1991, Newport street gallery 제공]

예술사의 대표적인 교과서 하버트 리드가 쓴 '예술의 의미"에는 재미있는 예술론이 몇 개가 수록되어 있다. 먼저 톨스토이는 예술의 과정을 이렇게 정의했다. "자신이 경험했던 감정을 스스로에게 일깨우는 것, 그렇게 자신 안에서 감정을 불러낸 후에는 움직임, 선, 색채, 소리 또는 언어로 표현되는 형식을 통해 그 감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여 그들이 자신과 동일한 감정을 체험하게 하는 것, 그것이 예술 활동이다."

톨스토이의 예술론으로 보자면, 데미안 허스트는 분명 불쾌한 예술가이다. 자신이 느낀 어떤 부조리에 관객을 노출시키고 그 감정을 감염시키려 하니 말이다. 그러나 허버트 리드가 정리한 예술론은 데미안 허스트같은 예술가들을 이해하는 데 있어 좀 더 쉬운 해석을 준다. "나는 예술의 역할이 다른 사람도 같은 감정을 체험하도록 감정을 전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아직 숙성되지 못한 형식의 예술(‘표제음악’, 멜로드라마, 감상적 소설 따위)의 기능에 불과하다. 예술의 진정한 역할은 감정을 표현하고 이해를 전달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데미안 허스트는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아주 심플하게 예술을 정의했다. "예술이란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모든 예술을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야기를 하는 방법은 아주 많다. 하지만 어려운 것은 자신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아는 것이다. 일단 이야기 하고 싶은게 생기면 그것을 들려주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톨스토이나 하버트 리드가 예술이 가진 기능적인 측변에 포커스를 두고 예술을 정의하려는 노력한 반면, 데미안 허스트는 그의 정의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데미안 허스트'라는 예술가는 예술에 포함되는 소재나 기능보다는 방법적인 측면에 많은 관심을 가진 듯 하다.
그래서 이 젊은 예술가는 지금껏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들을 충격적인 방법으로 건내왔었다. 그게 그에게는 새로운 게임의 법칙을 만드는 셈이었던 것이다. 새로운 게임의 법칙은 그 게임에 참여자를 압도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필자는 허스트를 ‘게임의 법칙을 지배하는 자’로 정의하고자 한다.

뛰어난 작가는 미술사뿐 아니라 미술시장의 흐름마저 바꾸어놓았다. 1988년 자신이 기획하고 참여한 전시 <프리즈>로 영국 현대미술에 르네상스를 일으켜 yBa를 탄생시킨 장본인 데미안 허스트. <프리즈>전시 이후 20여년이 흐른 시점이었던 2008년, 허스트는 미술시장을 또 한번 충격으로 몰고 갔다. 그것은 바로 그의 초년 작가 커리어를 함께 해온 자신의 전속 화랑인 런던 화이트 큐브와 그의 이름을 국제적인 반열에 올려놓은 뉴욕 가고시안 갤러리를 제치고 자신이 직접 자기 작품을 소더비 경매에 내 놓은 사건이었다.

시장에는 기본적으로 룰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제품, 판매자(공급), 구매자(수요)라는 시장 구성요소들이 그 룰에 따라 거래된다. 미술시장도 마찬가지이다. 작품이 있고, 그 작품을 공급하는 화상(갤러리)이 있고, 구매자(컬렉터)가 같은 시장 논리에 의해 작동된다. 그러나 대게 미술시장은 1차 시장과 2차 시장을 구분하게 되는데, 1차 시장은 화상(갤러리)이 작가로부터 공급받은 작품을 구매자에게 바로 판매하는 경로이고, 2차 시장은 1차 시장으로부터 작품을 취득한 구매자가 또 다른 구매자에게 작품을 양도할 때 거래되는 경매(옥션)로 세분화한다. 이러한 전통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허스트와 소더비의 합작인 경매 <Beautiful inside my head forever>는 센세이션 일 수 밖에 없었다. 일반적인 관행을 깬 허스트의 결정에 미술시장은 매우 술렁였다. 물론 이에 대해 ‘미술품을 판매하는 매우 민주적인 방식’이라는 것이 허스트의 입장이었으나, 작가와 오랜 관계를 유지해 온 화상들에게는 절대 민주적일 수 없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의 미술시장의 판례에 대한 데미안 허스트다운 발상이고 도전이긴 했지만 그의 결정이 가지고 올 효과나 파장에는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쏠려 있었다.

결과를 먼저 이야기하자면 경매는 대성공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2년 동안 180여명의 어시스턴트를 동원하여 완성된 작품 220여 점 중 218점이 낙찰돼 2천280억 원이 넘는 수익을 올렸는데, 이 금액은 1993년 약 1천300억 원의 수익을 올린 피카소 작품의 경매 이후 단일 작가로는 가장 큰 액수였다.
 

[뉴포트 스트리트 갤러리 외관]

[뉴포트 스트리트 갤러리에 위치한 허스트의 아트샵인 아더크리테라(othercriteria).

그의 전시도록은 물론 에디션 작품도 구매할 수 있다]

그런 허스트가 이번에는 또 다른 게임을 구상하고 있는 모양이다. 허스트가 420억원을 들여 완성한 뉴포트 스트리트 갤러리가 바로 그것이다. 허스트는 YBA전을 기획하면서부터 기획자에 대한 포부를 드러냈었고,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꾸준히 구입하면서 컬렉터로써의 야망도 들어내왔다. 그러한 포부와 야망의 집결체로 보이는 갤러리는 그가 2002년 매입해 스튜디오로 사용한던 건물을 테이트 브리튼의 리노베이션 공사를 담당한 건축가인 카루소 세인트 존이 3년 동안 공을 들여 완성시켰다. 런던 남부 벅스홀에 위치한 갤러리는 총 6개의 전시공간과 아트샵, 오픈 예정인 레스토랑까지 포함하는 37,000 sqf의 거대한 공간으로 최근 재개발 붐이 일고 있는 박스홀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갤러리 개관전인 John Hoyland 전시 전경]

허스트는 갤러리를 오픈하는 목적에 대해 3000여점이 넘는 자신의 컬렉션을 대중에게 무료로 공개할 것이라 밝히고 있는데, 여기에도 많은 추측이 따르고 있다. 최근 인기가 식어가고 있는 그의 작품시장의 재활성화를 위한 것일지 혹은 그의 컬렉션 가치에 힘을 싣기 위한 것인지에 대한 갑론을박이다. 그의 작품 가운데 1000억원에 팔려 가장 비싼 작품으로 꼽히는 [신의 사랑을 위하여, 2007]을 떠올려 보면 이러한 추측이 납득이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총 제작비 200억원을 들여 만든 작품은 사람의 실제 해골에 52.5 캐럿의 다이아몬드를 포함해 8601개의 다이아몬드로 뒤덮여 있는데, 작품 거래 하나로 500%의 수익률을 내는 것만 봐도 그가 보통 수완의 사업가가 아닌 것은 이미 너무나 유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추측은 추측일 뿐이다. 정말 그의 공식적인 입장처럼 미술계에 기여하고픈 순수한 의도인 지는 더 지켜보아야 할 문제지만 관람객으로서는 그의 수준높은 갤러리 오픈이 당장은 그저 반가운 일이다.

둘러볼 만한 전시
Champagne Life : 사치 갤러리 30주년 기념전 – Saatchi Gallery
2016. 1. 13 – 3. 6
Park Seo-Bo : Ecriture 1967-1981 – Whitecube Gallery
2016. 1. 15 – 3. 12

다음 호에서는 데미안 허스트를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만드는데 큰 일조를 한 화이트큐브에서 열리는 한국 작가 박서보의 전시와 함께 한국형 모노크롬 운동인 단색화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오지혜  유로저널칼럼니스트

- 이화여대 미술학부 졸업
- 이화여대대학원 조형예술학 전공
- 큐레이터, 아트 컨설턴트, 미술기자, 칼럼리스트로 활동 중
- 이메일 iamjeehy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