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고인> Au delà des montagnes
지아 장커Jia zhangke, 프랑스 개봉 2015월 12월 23일
중국 현대사를 위한 우화, 변하고 남는 것
<산하고인>은 21세기를 맞이하는 새해의 폭죽을 시작으로 2014년을 거쳐 2025년이라는 미래의 어느 날까지, 타오라는 한 여인의 삶을 통해 중국 역사의 단면을 그려낸다.
타오의 시선은 중국 현대사의 한 증언으로 접목되고 그녀의 여정은 우의화 된 중국의 단편이다.
펜양(감독의 고향이기도 하다)에서 시작한 한 여인(타오)과 두 남자(자본가 리앙즈와 노동자 진셍)의 이야기는 미래의 오스트렐리아를 거쳐 다시 펜양으로 돌아와 시간, 공간의 확장으로 세계화와 맞물려 가는 개인들의 모습을 담백하고 깔끔하게 투영한다.
1999년이라는 시간은 중국 현대사의 변곡점이 되는 곳이다. 덩 샤오핑에 의해 주도 된 90년대의 경제개방 정책은 중국 사회를 급격히 변모시킨다. 밀려오는 서구문명은 중국인들에게 자본에 대한 욕망을 고조시키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갈망은 가속도(스쿠터, 자동차, 기차, 비행기, 헬리콥터 등 속도를 가진 이동수단이 영화를 관통한다)를 내기 시작한다. 조건 없었던 세 사람의 우정은 세상과 함께 변화를 겪고 팽창하는 신자본주의 아래 그들만의 은신처는 찾을 수 없다.
1970년 생인 지아 장커 감독은 수려한 연출력으로 발군의 경제성장을 이룬 중국의 현재 안에서 개인들과 그들의 관계를 통해 거대 역사의 이면을 탐구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유럽, 특히 프랑스가 애호하는 아시아 작가 중 하나인 이유일 것이다).
<산하고인>은 멜로드라마의 전형을 띄고 유형화 된 인물들의 이야기는 통속적이기까지 하지만 여전히 그의 미쟝센은 다듬어져 있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지아 장커의 연출은 격정적 사건의 연속과 액션을 배제하고 주인공 타오와 주요 인물들의 절제된 이야기와 생략 속에 25여 년의 시간을 엮어간다.
이 시간은 세 개의 시기로 나눠져 있다. 다른 세 시기에 따르는 세 가지 이야기가 타오의 삶을 구성한다.
1999년, 2014년 그리고2025년. 과거(에필로그), 현재, 그리고 미래(프롤로그)의 중국인. 영화의 삼분의 일이 지난 후 2014년에 에피소드 앞에 문득 나타나는 영화타이틀은 현재의 중국에 방점을 찍는 장치일 것이다. 감독은 세 시기(세 개의 에피소드)를 화면 비율의 변화로 다시 한번 영상효과를 강조한다.
첫 번째 시간.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던 타오는 부호인 진셍을 선택하고 가난한 광부 리앙즈는 새로운 땅을 찾아 펜양을 떠난다.
그리고 두 번째 시간. 폐병에 걸린 리앙즈는 펜양으로 돌아오고 타오는 진셍과 이혼을 하고 어린 아들(‘달러doller’라는 아들의 이름은 작위적이면서 상징적이기도 하다)은 진셍과 상하이(또 하나의 다른 땅)에 살고 있다.
그리고 세 번째 시간2025년. 오스트렐리아(다시 한번 신세계)로 이민 온 진셍은 늙었고 청년이 된 달러와 대화는 단절되어 있다. 어릴적 친구와의 우정과 헤어짐, 결혼과 이혼, 같이 살지 못하는 아들과 타오의 거리감... 하지만 이들의 관계를 그래도 이어주는 기억과 소품들... 롱 쇼트와 근접 쇼트를 오가는 카메라는 상황(시대) 속에 놓인 인물의 감정을 반영한다.
인물들의 관계는 장애물(문, 창문, 소품...)에 의해 막힘과 갈라짐을 반복하고 다시 기억의 언저리에서 만난다. 이야기와 연출의 적절한 조화다.
<산하고인>은 경제성장과 함께 급속히 변화하는 시간 속에 인간 관계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오래된 친구는 마치 (변하지 않는) 산과 강 같다’라는 뜻의 제목처럼 인간(감정)관계 속 가치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다시 그 관계들은 우리의 현재에 어떤 가치로 남아 있는지에 대한 물음으로 돌아온다. 충분히 동의 가능한 영화 만들기이지만 전형적 양식임을 부정할 수 없다.
붉은 색, 축제, 장례식, 만두, 그리고 유유히 흐르는 황하... 중국적 클리셰는 끊임없이 반복한다. 상징적 요소들의 순환은 중국의 정체성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지만 그 의도가 너무나 뚜렷해 상상의 자리를 역습하는 과도함으로 귀착된다.
과거 젊은 날의 타오와 친구들이 90년대를 대표하는 팝 중의 하나인 팻 숍 보이스의 <고 웨스트 Go west>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흥겹고 화려한 실내 장면으로 시작한 영화는 혼자 남은 타오가 눈 오는 펜양의 공터에서 같은 음악에 춤을 추는 아름답지만 공허한 장면으로 끝이 난다.
세월은 흘러 모든 것이 변했지만 순환적 시간(기억)의 단면을 되새김하는 타오로의 도식적 마무리가 못내 아쉽다.
프랑스 유로저널 전은정 기자 eurojournal09@ek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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