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와 헝가리의 보이지 않는 전쟁

by 유로저널 posted Jun 05,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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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공과대학(European Institute of Technology: EIT)두고 치열한 접전중

      지난 2004년 5월 유럽연합(EU)에 가입한 폴란드와 헝가리가 지난 몇달간 보이지 않는 치열한 전쟁을 벌여왔다. 유럽연합이 미국의 매세추세츠공과대학(MIT)과 유사한 유럽차원의 유럽공과대학(EIT)를 설립하려고 하는데 그 유치를 두고 막판 접전을 전개해왔기 때문이다. 올 봄부터 이 문제가 논의돼왔으며 원래
지난달 말에 EIT 소재지가 결정될 예정이었지만 또 미루어졌다. 유치 문제를 두고 두 나라가 얼마나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폴란드 브로츠와프 선물공세 vs. 헝가리 부다페스트
     원래 EIT 유치에 도전장을 내민 나라는 동부유럽의 두 나라 이외에 스페인의 바로셀로나시, 그리고 오스트리아와-슬로바키아의 공동신청이 있었다. 그러나 바르셀로나와 오스트리아는 처음부터 별로 승산이 없었는데 무리하게 유치전에 참여했다. 중동부 유럽은 2004년 EU 회원국이 되면서 "새로운 EU기구가 들어설 경우 신규 회원국에 우선권을 준다"는 양보를 얻어냈다. 특정 회원국이 EU기구를 유치하게 되면 여러가지 이득을 얻을 수 있다. 고용창출로 그 지역의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 또 EIT와 같은 연구소를 유치하면 그 지역이 첨단산업의 중심지라는 이미지를 널리 전파할 수 있다. 폴란드와 헝가리는 따라서 유치전에 사력을 다했다. 브뤼셀주재 EU 회원국 특파원들에게 각 종 안내책자와 함께 선물을 보내 자국 도시가 EIT를 유치해야 할 당위성과 준비상황을 홍보했다. 브뤼셀에 주재한 상주대표부 외교관들도 수시로 특파원들을 접촉해 자국이 EIT 운영에 적임자임을 적극적으로 선전했다. 특히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시는 특파원들에게 애플의 '아이팟'(iPod)도 선물로 줬다.

         계속 미루어진 결정
     그러나 이런 선물공세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EIT의 소재지는 결정되지 않았다. 원래 지난달 30일 브뤼셀에서 개최된 각료이사회(회원국 장관들의 모임으로 EU의 주요 의사결정기관)에서 최종 결정이 내려질 예정이었으나 27개 회원국 장관들은 합의에 실패했다. 따라서 오는 18일 다시 만나 최종 담판을 지을 예정이나 이 번 모임에서 합의를 이룰지는 아직도 불확실하다.
     폴란드와 헝가리는 유치를 두고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경제적 이득과 이미지 제고는 물론 정치인들의 경우 EU기구 유치를 자신의 공으로 돌릴 수 있어 선거에서 표를 얻는데 큰 도움이 된다. 이 때문에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며 버티고 있다.
     이런 유치전은 과거에도 흔했다. 지난 2003년 후반기 당시 유럽이사회와 각료이사회의 순회의장국이던 이탈리아는 '유럽식품안전기구'(European Food Safety Agency)의 유치를 두고 핀란드와 혈전을 벌였다. 당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는 북부의 소도시 파르마(Parma) 햄이 최고라며 식품안전기구가 이 곳에 와야 한다고 버틴 바 있다. 마찬가지로 핀란드도 이 기구의 유치를 결코 포기할 수 없다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두 나라가 워낙 강경하게 공개적으로 싸우는 바람에 일부 회원국들은 이런 이전투구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용두사미꼴의 EIT
    원래 EIT는 미국의 MIT에 대항하기 위해 유럽연합집행위원회가 야심차게 내놓은 계획이다. 지난 2006년초부터 논의되기 시작했으나 결국은 초라한 기구가 돼버렸다. 영국이나 독일 등 일부 회원국들은 EIT가 MIT와 같이 학생을 모집하고 가르치며 연구할 경우 자국의 과학기술 경쟁력이 손상될 것을 우려해 미온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에따라 EIT는 학생을 가르치거나 연구하는 것이 아닌 27개 회원국의 연구성과를 전파하고 상호간의 네트워크를 연결해주는 기구로 성격이 변모됐다. 이에 따라 운영인력도 원래 예상보다 대폭 줄어든 60명에 불과하다. 학생수만 해도 1만명이 넘으며 해마다 우수한 연구성과를 올리고 있는 MIT와 매우 대조가 된다.
     27개 회원국들은 우선 기후변화 관련 연구를 1차 연구주제로 삼아 이와 연관된 연구의 공유에 집중할 예정이다. 2013년까지 EU예산에서 3억8백70만유로, 민간부문으로부터 24억유로를 지원받게 된다.
     폴란드의 브로츠와프와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어떤 도시가 EIT를 유치해도 과연 EIT가 얼마나 연구성과를 낼지는 불확실하다.


      기구 유치전은 EU 정치에서 다반사
    회원국간의 이 같은 기구 유치전은 EU 정치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유럽의회(European Parliament: EP)이다. 현재 EP의 총회는 프랑스 국경도시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에서 열리며 의사당과 의회 사무국 사람들이 근무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뿐만 아니라 브뤼셀에 사무국이 있어 직원들과 조직이 산재돼 있다. 처음 유럽의회를 설립할 때 프랑스와 벨기에가 기구 유치에 신경전을 벌여 이같이 합의가 됐다. 실용성과 예산절감을 중시한 영국은 지난 1973년 당시 유럽공동체에 가입한 후 이같이 산재된 유럽의회 건물을 경비절감 차원에서 한 곳에 모아야 한다는 의견을 수시로 제시했으나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관련 당사국들이 고용도 창출하고 선거의 표도 모을 수 있는 매우 유리한 카드를 쉽사리 버릴리가 없기 때문에 이 같은 기구 유치전을 앞으로도 계속될 수 밖에 없다.
안병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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