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하정우에서 아트테이너 하정우로 자리매김- 아트테이너 하정우 작품값 1800만원 호가. 2013년 뉴욕 전시회 작품은 모두 완판. 하정우 “값어치를 인정해주셔서 기분이 좋고 책임감이 든다”고 소감 밝혀..]
최근 한 주간 신문사의 문화 섹션에 언급된 하정우 전시 관련 기사 내용 중 일부이다. 전시의 홍수를 이루는 요즘 위의 기사 내용이 필자의 시선을 끌어당긴 이유는 바로 <아트테이너>라는 용어와 함께 등장한 1800만원의 작품 가격 때문이다.
아트(Art)와 엔터테이너(entertainer)의 합성어로, 이른바 예술 하는 연예인을 가리키는 말인 <아트테이너>.
아트테이너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 분야는 미술 시장이다. 2013년경부터 한국 미술계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아트테이너는 미술계가 불황에 빠진 가운데서도 작품이 수천만 원에 팔렸다는 소문이 돌 만큼 이들의 전성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한 미술업계 종사자는 2013년 1월 "국내 아트페어에서 연예인 그룹 전시는 이제 '약방에 감초'처럼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연예인들이 참여하지 않으면 관람객 흥행에 비상이 걸린다"라고 까지 말한다. 실제로2013년 9월 청주 국제 공예비엔날레는 조영남, 하정우, 구혜선, 최민수, 유준상 등 연예인 21명의 작품을 전시하는 '스타크라프트'전을 포함시켜 복잡한 현대미술에 흥미를 못 느끼던 일반인들도 스타의 작품에는 호기심을 갖도록 하는 등 저변확대에 박차를 가했다.
하정우를 비롯한 국내외 여러 아트테이너들은 미술이라는 익숙하지 않은, 학창시절 교과서에서만 봐왔던 분야에 대해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서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 한국에서 아트테이너의 원조는 조영남이다.
스스로를 화가 겸 가수, 화수(畵手)라고 부르는 조영남은 40여 년 전 서울 인사동에서 첫 개인전을 연 이후 40여 차례나 개인·단체전을 열었으며 작품 가격은 호당 40만 원대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대중의 호기심으로 미디어가 만들어 놓은 스타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쉽게 시장에 접근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는 이들 작품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이들의 작품을 바라보는 미술 시장의 눈은 정확한 것일까?
영국의 미술비평가인 존 워커는 저서 『유명한 스타와 예술가는 왜 서로를 탐하는가(Art and celebrity)』에서 "스타와 예술가는 공생 관계를 통해 명성을 얻는다"라고 언급하며 유명인은 예술가가 가진 문화적 자본을, 예술가는 유명인의 사회적 자본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는데, 아트테이너가 이 경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세계적 명배우 안소니 퀸(Anthony Quinn)도 그림으로 전향해 오랫동안 작품 생활을 하고 있으나 (안소니 퀸은 2001년 작고하였다) 이들의 작품에 대한 명성은 아직 그들의 전직인 배우나 가수로서의 명성에 10분지 1도 인정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결국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한번의 헤프닝으로 끝날 가능성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불과 몇 년 전 걸레스님으로 유명한 중광스님의 그림에 대해 대중과 시장은 기인의 기이한 작품이라며 엄청난 환호를 보냈었다.
그러나 지금 그 환호성은 흔적조차 사라져 그의 작품 가격을 논하기 조차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렸다. 거품이었음이 명백한 것 이다.
그렇다면 당시 중광 스님의 작품에 대한 작품을 이야기한 평론가들은 과연 어떤 기준에서 작품을 말하는 것일까? 그들의 눈은 일회성이었을까? 이번 글에서는 미술시장의 4번째 축인 <비평가>에 대하여 그들이 작품을 대하는 가치와 역할을 중심으로 글을 전개하고자 한다.
1) 작품의 ‘가치’ VS ‘가격’
1878년 11월 26일 아래의 그림에 대해 당대 최고의 비평가이자 옥스퍼드 미술대학 교수였던 존 러스킨(John Ruskin)과 화가 휘슬러(James McNeill Whistler )의 재판이 열렸다.
[휘슬러, 1872–77년 추정.
《 검은색과 금색의 야상곡 : 떨어지는 축포 (Nocturne in Black and Gold – The Falling Rocket) 》
캔버스에 유채, 60.3 × 46.6 cm. <출처 : WikipediA> ]
때는 1870년대의 영국 빅토리아 시대, 런던에는 구태의연함을 버린 진보적인 화가들을 위한 그로스케너 미술관이 막 문을 열었다.
휘슬러는 그 전시관에 8점의 작품을 내 걸었는데 그 중 한 작품이 위의 <검정과 금빛 야상곡: 떨어지는 불꽃>이라는 작품이다.
그는 작품 가격으로 200기니의 값을 책정하였다. 문제는 이 그림을 본 러스킨의 인신모욕에 가까운 비평이었다.
러스킨은 이 작품을 두고 “교양없고 자만심에 가득 찬 작가가 고의로 사기행각을 벌이려고 하는 것이기에 미술관에 이 자의 작품을 전시해서는 안된다. 대중의 면전에 물감을 들이 붓고서는 200기니라니, 이런 광대가 있나!”라고 일침을 가했다.
휘슬러의 이 작품은 평평한 화면에 정성을 다해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그림을 새겨 넣는 전통적인 의미의 치열한 장인정신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붓으로 화면 위에 물감을 뭉개거나 뿌려 놓았을 뿐이다. 숭고하거나 가치 있는 이야기 거리가 있어 사회에 어떤 식으로라도 이바지하는 그림을 선호했던 러스킨 입장에서 이건 그야말로 장난, 호작질에 불과한 작품이었다.
값만 비싸게 달아놓으면 분명 대단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는 무지한 사람들에게 작품 선택에 대한 기준을 제공해야 하는 것이었다.
법정에서 판사가 휘슬러에게 작품을 완성하는데 얼마나 걸렸냐고 물었다. “이틀입니다” 라는 휘슬러의 대답에 판사는 다시 말했다 “겨우 이틀 일하고 200기니를 요구하는 거로군요” 이에 휘슬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닙니다. 저는 제 평생의 지식에 대한 가격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쯤 되면 휘슬러의 생각이 어떠한 것인지 확실해진다. 예술은 결코 몇 시간 노동에 재료비 얼마라는 수준으로 그 가치를 정해질 수 없다는 것, 정작 값을 매겨야 하는 것은 그 작품을 완성시키기 위해 바친 한 예술가의 평생지식과 경험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밝힌 것이다. 결과는 휘슬러의 승리였다.
그러나 러스킨은 좌절하며 옥스퍼드 교수직을 사임해버렸다. 그로서는 법관의 판결이 곧 ‘자유로운 비평에 대한 압제’인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의 눈으로 봐도 둘의 소송은 충분히 다시 생각할 만한 가치가 있다.
예술 작품은 고도의 정신활동으로 재료비나 인건비 개념과는 다르게 책정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지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무지함과 실력 없음에 호황되고 과장된 가격을 매기고, 위선 가득한 이론으로 슬쩍 가리려는 거짓 예술가들이 난무하는 세상에 그런 사기꾼들을 가려내고 맞설 수 있는 자는 객관적이며 유능한 비평가 한다는 것이다.
당대 최고의 평론가이자 옥스퍼드 미술대학 교수 존 러스킨
그렇다면 비평가는 이렇게 신념을 가지고 행한 움직임이 미술사에 올바르게 펼쳐진 것일까? 그들이 말하는 시대의 작품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친숙한 작품들을 다 예견해었던 것일까?
다음 글에서는 이들이 동시대에 펼쳐진 움직임을 보지 못한 채 저지를 실수들,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을 키워낸 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의 허상과 우상 만들기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자.
<허유림, 유로저널 컬럼니스트, 인디펜던트 큐레이터, 예술기획및 교육, Rp’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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