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든 브라운 총리와 '특별한 관계‘

by 유로저널 posted Mar 0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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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든 브라운 총리와 '특별한 관계‘
오바마가 취임 후 처음으로 만난 유럽지도자  
다음달 G20 앞두고 규제강화 등 의제 논의  

     2차대전 당시 영국을 나치 독일로부터 구한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은 지난 2005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국인으로 뽑혔다. BBC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영국인들은 조국과 자유세계를 나치 독재로부터 구한 그를 최고의 위인으로 선정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런데 처칠은 2차대전 당시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 대통령과도 절친한 관계를 유지했고 두 사람사이에는 전설처럼 내려오는 ‘목욕탕 일화’가 있다. 1941년 12월말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처칠은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했다. 그는 백악관에 머물며 2차대전에 참전한 미국과 합동전략과 전후 유럽질서 등을 논의했다. 언젠가 루스벨트가 휠체어를 밀고 처칠 방에 들어갔더니 영국 노신사가 욕탕에서 벌거벗고 침실로 나오는 중이었다. 노신사의 나체를 본 루스벨트는 황급히 방을 나가려고 했으나 처칠은 “영국의 총리는 미국 대통령에게 숨길 것이 없소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처칠은 대영제국의 급격한 쇠퇴를 저지하고(‘소프트랜딩’)하게 하고 국제정치무대에서 초강대국으로 등장하는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영국의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임을 깨달았다. 처칠은 이런 이유로 루스벨트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나아가 미국과의 ‘특별한 관계’를 구축했다.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도 처칠이었고 이를 구축한 사람도 그였다. 이후 영국의 총리는 보수당이나 노동당을 막론하고 거의 다 미국과의 특별한 관계 유지에 매달렸다.
     유일한 예외는 1970~74년까지 총리는 지낸 보수당의 에드워드 히스(Edward Heath)이다. 그는 영국 지도자가운데 유일하게 유럽통합에 적극적인 인물이었다. 1997~2007년까지 노동당 총리는 지낸 토니 블레어(Tony Blair)도 유럽통합에 적극적인 인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그는 2003년 3월 미국 주도의 이라크 침략에 가담했고 단일화폐 유로화 가입을 위한 국민투표에 주저하면서 친유럽통합주의자라는 이미지가 퇴색했다. 무엇보다도 이라크 전쟁 때 미국을 지지하고 파병함으로써 미국과 유럽이 갈등을 벌이고 결정적인 순간에 미국을 지지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그런데 지난주에도 이런 관계가 구체적으로 작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바로 고든 브라운 총리가 3일부터 이틀간 미국을 순방했기 때문이다.

     첫 영접자 되기 위한 경쟁서 브라운 승리...구체적 성과는 불투명
     지난해 11월 버럭 오바마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 후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유럽연합(EU) 주요 회원국들은 누가 처음으로 그를 만나는 지도자가 될 것인가를 두고 보이지 않는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고든 브라운 총리가 3일부터 미국을 방문해 이 경쟁에서 승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4일 미 상하양원에서 연설하는 영예를 누렸다. 다른 나라의 정치인가운데 이런 기회를 얻는 사람은 드물다.
     외견상 브라운은 많은 것을 얻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속은 그리 많지 않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공황I’I 라고 불리는 경제위기에 직면해 모든 신경이 경제-경제-경제에 집중되어 있다. 거의 매주 나오는 경제지표는 암울하다. 몇십년만에 최고의 실업자수와 최악의 경제성장률 등. 거대 보험회사의 하나였던 AIG 생명은 파생상품을 다루었던 사업부의 엄청난 손실 때문에 수천억달러의 공적자금을 수혈받았으며 국유화되었다. 또 우량회사 GE의 자금난 소식까지 들린다. 경제위기를 해결할 뽀족한 수는 없고 전세계 경제위기 상황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원하는 나라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은 주요 20개국(G20)의 의장국으로 다음달 2일 런던서 G20 회의를 개최한다. 경제위기 극복방안이 가장 중요한 의제이다. 선진국들이 앞장서 경기부양책을 실시하고 개도국들과도 입장을 조율해야 한다. 의장국 영국은 참가국들의 다양한 입장을 조율하고 균형을 맞추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과의 공조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파이낸셜타임스(FT)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금융감독 강화와 규제강화에 대해 미국과 영국, 독일 등의 입장은 아직도 다르다. 영국은 독일, 프랑스와 함께 규제강화에 찬성하고 있다. 이번 금융위기 주범의 하나가 헤지펀드와 파생상품 등이다. 이런 부문에 대해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경제위기의 진원지 미국은 이런 원칙에는 공감하고 있지만 국제적인 규제제정에는 반대하고 있다. 규제제정과 집행은 국가고유의 권한인데 이를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국제기구에 넘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앞으로 G20회의까지는 3주 정도 남았다. 과연 G20 회의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을까? 아니면 많은 국제회의가 그렇듯이 말의 성찬으로 끝날 것인가?
     위기일수록 시민들은 정치적 리더십을 원한다. 한국에서는 정책은 많은데 정치는 없다는 말을 한다. 괜찮은 정책이 제안돼도 상이한 입장을 조율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려면 정치 혹은 정치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너무나 자명한 이런 예를 요즘 서울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안병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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