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주희기자] 비네홍 앙데펑덩 ( Vigneron Indépendant de France )
프랑스인들이 와인 시음회를 즐기는 방법
와인 시음회라고 하면 뭔가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듯한 느낌이 든다. 비지니스 정장과 뾰족 구두,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우아하게 와인잔을 돌리는 사람들. 그러나 여기, 조금 다른 종류의 프랑스 와인 시음회를 소개해 볼까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젊은 친구들까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특별하고도 대중적인 와인 시음회 말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 다시 프랑스의 와인 시음회 중 하나인 비네홍 앙데펑덩을 다녀왔다. 2016년 2월 19일, 스트라스부르에서 개최된 비네홍 앙데펑덩 (Vigneron Indépendant de France)은 일 년 동안 니스, 스트라스부르, 리옹, 파리, 보르도 등 프랑스의 주요 도시를 돌며 열리는 와인 행사이다. 6유로(약 만 원)의 입장료를 낸 후 시음용 잔을 받아 원하는 와인을 무제한으로 시음한다. 물론 받았던 잔은 기념으로 집에 들고 갈 수 있다.
프랑스 전역에서 573개의 와인 생산자들(혹은 그 아들, 딸들)이 와서 포도농사를 짓던 투박한 손으로 직접 자기 와인을 손님들에게 서비스 한다. 손님들은 거리낌 없이 생산자들과 와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자리에서 맛본 와인이 마음에 들면 바로 구매를 하기도 한다.
사실 프랑스 사람들에게도 와인 구매는 골치 아픈 일이다. 겉모습만 보고는 와인 맛을 알 수가 없으니까 말이다. 슈퍼마켓 와인 코너에서 한참 서성이다가 결국 와인 라벨이나 병모양이 마음에 드는 걸 집어 들고 집에 와서 열어보고는 허걱하기 일쑤이다. 와인 전문 가게에서는 구매하는 경우는 그나마 조금 낫다. 자기 취향을 설명하면 소믈리에가 몇몇 와인을 추천해 주는데 그것도 맛을 보고 사는 게 아니다 보니 확실하진 않다.
그러나 여기 비네홍 앙데펑덩에서는 프랑스 전 지역의 와인을 직접 시음해보고 구매할 수 있다! 이런기회가 흔하지 않은 이유로 많은 와인 애호가들이 이 날을 기다린다. 프랑스 와인계의 패밀리 세일이라고나 할까…
그렇다 하더라도 573개의 와이너리의 와인을 다 시음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사전에 방문할 곳을 정해두고 가거나 혹은 평소 좋아하는 지역 혹은 품종의 와인을 위주로 시음하는 편이다.
“이게 까베르네죠? 난 이거 좀 별로더라…”
“아니, 까베르네가 아니라 까베르네 소비뇽요”
“그러니까 까베르네 그거…”
위에서 언급했듯이 프랑스인이라고해서 와인을 다 잘 아는 것은 아니다.
자기 와인에 대해 말도 안되는 얘기를 늘어놓는 프랑스인들을 앞에 두고 난감해하는 와이너리 주인장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옆에서 같이 시음하는 중 본의 아니게 대화 내용을 엿듣다가 무심결에 주인장과 눈을 마주쳤다. 나에게 찡긋 윙크를 날리고 후유 한숨을 쉰 후 그 손님 말에 영혼 없는 장단을 맞춰준다. 우리나라에서는 잘 나가는 기업체 오너들조차 와인을 앞에 두면 말을 아끼는 것과는 참 대조적이다.
작년에 처음 행사장에 가는 길에 분홍색 대형 캐리어를 끌고 가는 예쁜 프랑스 아가씨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같은 트램 정류장에 내리길래 여행을 다녀오나 보다 했는데, 막상 행사장에 도착하니 곳곳에서 그런 대형 캐리어가 심심치 않게 목격되었다. 캐리어의 목적은 와인 쇼핑이었던 것이었다. 우리나라 종로에서 많이 보이는 외국인 쇼핑객들이 떠올라서 피식 웃음이 났다.
주머니가 가벼운 젊은 친구들의 경우 두어 병 정도 사서 손에 들고 가는 게 보통이지만 프랑스 아저씨들 혹은 할아버지들의 경우 일 년 치 양식을 쌓아두는 느낌으로 박스째 대량 구매하는 터라 대형 카트 혹은 차를 가지고 온다.
사실 전문가용 와인 시음회는 무언의 규칙이 있다. 깔끔한 비지니스 복장은 필수이고 시음한 와인은 뱉는 게 상식이다. 수십 종류의 와인을 시음하다 보면 삼키지 않아도 혀에 남아있는 알콜 때문에 슬슬 취기가 오르게 마련인데 전문가들 사이에서 괜히 취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눈을 부릅뜬다. 그리고서 집에 도착하면 긴장이 풀어져서 늘 온 몸이 뻐근했었다. 그럴 수 밖에 없다. 불편한 옷에 누가 지켜보는 것도 아닌데도 끝까지 시크한 모습을 유지하느라 허리를 있는 대로 꼿꼿이 세우고 다녔던 탓이다.
하지만 이런 일반 시음회에서는 그런 것들은 잊어버려도 된다.
편안한 복장으로 와서 주는 대로 다 받아 마시고는 적당히 취해서 룰루랄라 집에 가는 사람들, 작년에 샀던 와인 주인장을 다시 만나 올해 새로 출시된 와인을 맛보고 두어 박스 재구매해가는 프랑스 할아버지들, 북새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유모차를 끌고 와서 여유롭게 시음하는 부부들…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깨진 와인 병들이 종종 보인다. 취해서 집에 돌아가던 사람들이 구매한 와인을 떨어뜨린 탓이다. 버스를 기다리다가 기분이 좋아진 친구는 미지근한 샴페인을 한 병 따서 주변 사람과 병째 나눠마시기도 한다. 딱딱할 것만 같은 와인 테이스팅은 그렇게 동네잔치가 되어간다.
CES 소믈리에르 임주희
jhee12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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