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내 불균형 해소 가능할까?
흑자국 독일과 네덜란드, 적자국 스페인
자국화폐를 폐기하고 단일화폐 유로(euro)를 채택한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을 총칭해 유로존(eurozone) 혹은 유로지역(Euro area)이라고 부른다. 27개 EU회원국 가운데 16개 나라들이 유로존에 속한다. 이들의 통화정책(금리인상과 인하)은 각 국의 중앙은행이 아니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유럽중앙은행(European Central Bank: ECB)이 결정한다. 경기가 좋을 때면 보통 물가가 오르기 때문에 중앙은행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고 경기침체 시기에는 경기를 활성화하기위해 금리를 내린다. 금리를 내리면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서민들이나 돈을 빌려온 기업들이나 금리부담이 줄어든다. 이처럼 핵심적인 국가주권인 통화정책을 자국 중앙은행이 아니라 ECB가 행사한다는 것은 그만큼 유럽통합이 경제분야에서 진전되었음을 의미한다.
필자가 이 칼럼을 통해 몇차례 소개했듯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 FT)의 마틴 울프(Martin Wolf)는 수석 경제칼럼니스트이자 편집부국장이다. 매주 수요일 FT 칼럼을 통해 그는 경제위기와 미국, 영국, 중국 관련 경제정책을 분석하는 칼럼을 게재하고 있다. 울프는 대표적인 글로벌 불균형(global imbalances) 수정론자이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주요 원인이 중국의 대규모 무역흑자, 그리고 중국이 미 달러나 유로에 대한 위안화 환율을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해 수출업자들을 도왔다고 주장한다. 즉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라는 쌍둥이 적자(twin deficit)를 유지해온 미국이 저금리 정책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주택붐, 이에 따른 서브프라임모기지(subprime mortgage)팽창과 붕괴를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중국의 저축과잉(savings glut)이라고 주장한다. 중국이 막대한 무역흑자를 보유해 이를 무기로 미국의 국채를 구매해줬고 이 때문에 중국의 돈이 미국의 막대한 쌍둥이 적자를 메꿔주어 미국이 저금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순환론적인 논법이다. 그런데 울프는 지난 6일자 칼럼에서 유로존 내의 불균형을 지적하며 문제를 제기했다. 글로벌 불균형이 비단 세계적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유로지역에도 존재하며 심각하다는 문제제기이다.
독일과 네덜란드 대(對) 스페인
EU 회원국 그리고 유로지역에도 엄연히 핵심국가군(core member countries)과 주변부 국가군(periphery member countries)이 존재한다. 핵심국가군은 경제력이 크고 경제구조가 고도화된 나라들을 말하는데 독일이 현재 EU 27개 회원국 경제의 1/5을 차지한다. 독일의 지난해 경상수지흑자는 1천900억달러로 국내총생산(GDP)의 6.5% 정도이다. 또 강소국 네덜란드의 경상수지흑자는 640억달러로 GDP의 9.4%나 된다. 영국의 경제규모는 EU 27개 회원국 가운데 독일, 프랑스에 이어 3위를 차지하지만 만성적인 무역적자국이다. 반면에 스페인은 GDP의 9%에 이르는 경상수지적자(1천100억달러)를 기록중인 대표적인 주변부 국가에 속한다. EU 회원국 가운데 중동부 유럽을 제외한 주변부 국가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아일랜드 등 이었었는데 이들 주변부 국가들은 이번 경제위기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스페인과 아일랜드의 경제붐을 받쳐주던 것은 건설업이었으나 경제위기로 주택가격이 폭락하면서 실업자로 넘쳐나고 있다. 스페인의 경우 현재 실업률은 19%, 특히 20대 사회진출을 하는 사람들의 실업률은 이보다 훨씬 높아 문제이다. 우리나라에서 '88만원 세대'라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온지가 오랬되었지만 스페인도 유사한 분위기이다. 현재 사회당 당수 자파테로(Zapatero) 총리는 노동시장 유연화 압력을 받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구성된 스페인 노동시장에 해고를 쉽게 하는 식으로 노동법을 개정해 기업들의 경기침체 대응책을 도와줘야 한다는 압력을 받아왔으나 아직까지 이를 거부해오고 있다. 수십년만의 정책 이행과 논란 후에 이룩한 스페인의 사회복지시스템을 사회당 총리가 개혁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일이다.
불균형 해소책은 "독일이 최후의 소비자가 돼야"
울프는 유로존 내 불균형 해소책으로 독일이 최후의 소비자(spender of last resort)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페인과 아일랜드 등 주변부 국가들이 주로 수요가 공급보다 많아 핵심부 국가들이 수출하는 많은 물품을 사들이는 주요 소비자들이었다. 그런데 경기침체로 주변부 국가들의 민간수요가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독일과 네덜란드 등 핵심부 국가들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독일과 네덜란드는 GDP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무역의존도가 70%가 넘는다. 이들 두 나라는 EU 회원국 내 교역비율이(EU 내 무역비율) 50%가 넘는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이나 네덜란드가 경제위기 전이나 혹은 지금까지 해온 대로 최후의 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 역할만 할 것이 아니라 최후의 소비자 역할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EU가 중국에 위안화 환율을 평가절상하고 내수진작 경제정책을 요구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나 독일이 이런 요구나 주장을 들어주기는 쉽지 않을뿐더러 그럴 의향도 없다. 경상수지나 무역흑자는 각 국이 수십년 이행해온 경제정책의 결과이다. 독일 서민이나 기업인들은 국민정서상 대출을 꺼려한다고 한다. FT는 독일 내 경제위기를 다루는 특집에서 창업 기업인들을 인터뷰했다. 이들은 창업할 때 은행에서 돈을 빌린 후 일정 궤도에 오른 후 바로 대출을 상환했다고 대답했다. 은행의 싼 돈을 대출받아 사업을 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인데도 이 기업인들은 주변 사람들이나 사회정서상 대출을 받아 기업을 꾸린다는 것이 약간 죄스럽다거나 비도덕적이라는 인상을 준다고 대답했다. 중국이나 독일 등 경상수지 흑자국들이 미국이나 영국이 요구해온 글로벌 불균형 해소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도 위에 예를 든 역사적.심리적 이유가 있다. 물론 경제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시각이 매우 상이하다는 점이 더 큰 원인이다. 즉 중국이나 독일, 프랑스는 미국의 느슨한 금융규제와 감독이 월가(Wall Street)의 탐욕을 부추겨 금융위기를 초래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유로지역 내 그리스의 재정적자가 눈덩어리처럼 불어나 심각한 지경이다. 과연 주변부 국가들의 경제회복에 핵심부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까? 아니면 논쟁만 하다 허송세월을 할까?
안 병 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