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비지 뷰티(Savage Beauty)라는 용어의 원천이 된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유명 미디어의 패션 에디터이자 스타일리스트였던 이자벨라 블로우(Isabella Blow)는 그의 졸업 작품에 반했다. 그녀는 어려운 형편에 구입할 경제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100파운드씩 지불하는 조건으로 5000파운드(한화 약 1억원)나 되는 맥퀸의 옷들을 모두 구입한 일화는 유명하다. 또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교 미술대학 (Goldsmith College) 졸업전시에 작품을 출품한 데미안 허스트(Demian Hirst, 1965-)를 알아보고 그의 작품을 구입한 찰스 사치(Charles Saatchi, 1943-)의 일화도 우리에게 익숙하다. 영국의 광고 재벌이자 세계적 컬렉터인 찰스사치를 통해 미술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데미안 허스트의 이야기는 이제 막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예술가들 알아보는 컬렉터들의 눈과 힘, 그리고 그들이 작가들을 향해 보내는 열렬한 정신적, 경제적 후원이 잠재력 있는 새내기 작가들이 세계 미술을 움직이는 작가로 성장하는데 있어 얼마나 중요한 대목인지 알 수 있는 사례들이다.
반면 한국의 졸업전시회는 어떠한가? 지난 2월1일 국민일보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서울옥션의 주관으로 미대 졸업작품이 경매에 나온다는 보도가 있었다. 미대 졸업전시회가 예비 작가들의 ‘예술가적 싹수’를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부모와 가까운 친구에게나 초대장을 보내는 가족잔치가 되어버린 요즘, 개인전 경력이 한 번도 없는 햇병아리 작가들에게 국내 메이저 경매사가 시장 데뷔 기회를 주는 획기적인 시도를 한다는 것이다.
서울대 홍익대 경북대 계명대 강원대 청주대 등 전국 26개 미대가 참여하여 100명의 작가 작품을 시작가 100만원에서 경매하는 ‘컷팅엣지 100’을 선보인 이번 경매에서 서울옥션은 낙찰금 전액을 작가 지원금으로 주고, 낙찰수수료(수익금)를 각 대학에 장학금으로 기부한다. 전시기획자 A씨는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화랑들이 검증된 작가들만 찾고 신진 발굴은 외면하는 측면이 있었다”며 “이번 경매에서 눈에 띄는 예비 작가들에게 화랑들이 전시 기회를 주는 등 미술시장 판이 커지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과 그의 후원자였던 이자벨라 블로우(Isabella Blow)
<알렉산더 맥퀸의 세인트마틴 졸업작품들. 이자벨라 블로우는 맥퀸의 작품들은 약 1억원에 구입하였다>
그러나 위의 기사를 접하며 필자의 관심을 이끈 부분은 바로 <미술시장 판이 커지는 기회>라는 문구였다. 작가와 작가의 작품에 관하여 논하는 비평가, 작품을 판매하기 위하여 자신을 판매하는 또 다른 예술행위를 선보이는 아트딜러, 그리고 소리 없는 총성 문화 전쟁에 참여한 미술관 외에 어떻게 경매는 보이지 않는 손을 작동시켜 미술시장의 판을 키울 수 있는 것일까? 결국은 가족이 경매 참여자가 되어 작품을 사줄 텐데 경매회사가 학생들을 이용하는 것을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판촉행위로 수수료를 받는 행위가 있는 상황에서 과연 경매를 믿을 수 있는 것인지, 자신들끼리 사고파는 행위 혹은 작가의 주변 지인을 불러들이는 우려가 있을 수 도 있다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에는 갤러리보다 경매에서 이루어진 작품거래를 대서특필하며 미술시장의 분위기를 전한다. 과연 무엇이 미술 애호가들을 미술품 경매로 몰리게 하는 것일까? 이번 글에서는 실물경제와 미술시장을 움직이는 손들 4번째 이야기- 경매 그 빛과 그림자에 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연일 최고가 경신을 쏟아내다: 경매 그 빛과 그림자
2000년대 들어 미술 경매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면서 미술작품 판매의 헤게모니는 갤러리에서 경매회사로 넘어갔다. 미술시장 전문가들은 그 가장 큰 이유로 ‘가격의 투명성’을 꼽는다. 작가가 원하는 가격과 갤러리에서 판단한 가격의 접점에서 결정된 가격이 형성되어, 이미 시장에서 몇 번 거래된 중견작가의 작품이나 갑자기 인기를 끄는 작품의 경우 갤러리에서 ‘부르는 게 값’이 되어버리는 일반 시장에서 마음에 드는 그림을 사고도 제대로 샀는지 명확한 판단이 힘들다 보니 미술 소비자들은 갤러리 대신 경매 회사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미술 경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경매에는 이름이 알려진 작가의 좋은 작품이 나온다. 팔릴 만한 작품이 나온다는 이야기이다. 때문에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도 경매에 참여해 좋은 그림을 낙찰 받을 수 있다. 한번 경매에 나온 작품은 다시 경매를 통해 되팔기도 좋다. 경매회사에서 정해놓은 작품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면 안 사면 그만이고, 값이 얼마든 꼭 구입하겠다면 구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격결정도 소비자의 몫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빠르게 진행되는 경매의 속성상 경매 현장의 분위기에 따라 가격이 크게 차이 날 수 있다.
경매회사는 이렇듯 가격 투명성과 사람들이 사고 싶어하는 작품 선정으로 시장을 이끌어 왔지만 그 배후에는 어두운 비즈니스도 많다. 첫 번째는 가격 담합이다. 2000년 세계적인 경매회사 소더비와 크리스티가 작품 가격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도록 담합해왔다는 것이 미 연방정부의 대대적인 조사로 밝혀지면서 양 사는 도덕성에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이 스캔들로 소더비의 대주주인 앨프리드 타우브먼과 다이애나 브룩스 회장 등이 실형을 선고 받는 등 후 폭풍이 거셌다.
둘째는 계획적인 작품 띄우기다. 2007년 2월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피터 도이그(Peter Doig, 1959-)의 <하얀 배White Canoe (1991)>가 570만 파운드에 낙찰되자 모든 언론들이 이 놀라운 경매 결과를 보도했다. 추정가 120만 파운드를 훌쩍 뛰어넘는 결과였던 것이다. 그때까지 스코틀랜드 출신의 피터 도이그는 경매에 종종 나오기는 했지만 스타 작가는 아니었다. 이전의 경매 최고 기록은 그 전해 6월 소더비 경매에 나온 <철의 언덕 Iron Hill>으로 낙찰가는 110만 파운드였다. 당시 그림 시장이 활황이었다 하더라도 불과 8개원만에 작품 값이 다섯 배로 뛴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었다. 이날 경매로 피터 도이그는 단숨에 경매시장의 슈퍼스타로 떠올랐고 그의 작품을 구하기 위한 쟁탈전이 여기저기서 벌어졌다.
피터 도이그(Peter Doig, 1959-)의 <하얀 배White Canoe (1991)> 사치갤러리 소장.
피터 도이그(Peter Doig, 1959-)의 <철의 언덕 Iron Hill>
그러나 이 놀라운 피터 도이그 사건의 배후에는 소더비와 유명 컬렉터 찰스 사치가 있었다. 자고 나면 그림 값이 오르는 활황의 미술시장에서 소더비는 새로운 스타가 필요했다. 소더비는 찰스 삿치를 찾아갔고, 찰스 삿치는 자신의 켤렉션 중 피터 도이그의 작품 일곱 점을 내놓았다. 소더비는 이 그림들을 1100만 달러에 사들였다. 그리고 다음 해 경매에 내놓아 소위 말하는 ‘대박’을 친 것이다. 소더비는 이날 경매 후 사치에게 그림 값을 지불했다. 이날 경매에서 그림을 낙찰 받은 이가 삿치 본인이라는 이야기도 나돌았지만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소더비가 새로운 스타 상품을 만들어 큰 돈을 벌었다는 사실이다. 피터 도이그의 최상급 작품을 컬렉션에 남겨둔 삿치는 이날 경매의 성공으로 자신이 보유한 작품들의 가치가 일약 다섯 배 넘게 급상승하는 쾌락을 맛봤다.
<세계적인 컬렉터 찰스 삿치(Charles Saatchi, 1943-)>
경매회사의 화려한 모습 이면에는 어두운 이야기도 많다. 경매에서 인기 있는 작품만 거래하다 보니 기존 작가들의 시장 진입이 어려워졌고, 경매에서 몇 번 유찰된 작품은 ‘인기 없는 작품’으로 낙인 찍혀 다시 시장에 들어오기 어렵다. 또 한 번 유찰된 작품이 다음 경매에 다시 나올 경우 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해지기 때문에 5년 이상 시장에 내놓지 못하는 기회손실의 위험도 감내해야 한다. 이렇듯 명암이 존재하는 미술시장 경매는 기회와 눈속임의 순간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다음 글에서는 실물경제와 미술시장을 움직이는 마지막 축을 이루는 아트컨설턴트와 컬렉터에 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다.
<허유림, 유로저널 컬럼니스트, 인디펜던트 큐레이터, 예술기획및 교육, Rp’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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