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상과 유행의 나라 프랑스 -4
유행따라가기
어떤 의상을 입고 어떤 악세사리를 걸친다는 것은 어떤 사람의 유행을 따라 가는 것이다. 배우나 톱 모델 톱 가수를 따라 걸치며 옷 입기 등 다양한 방식의 영화 속 같은 의상이 유행을 타고 다닌다.
존웨인, 말론 브란도 제이스 딘은 티셔츠를 걸친다. 그후 대중은 티셔츠나 청바지에 익숙해졌다.
15세 육감적인 소녀 부룩 쉴즈가 칼빈 크라인의 청바지를 띄우기 위하여 한 문장이면 충분하였다.
- 당신, 나의 칼빈 클라인 블루 진과 나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요? 아무것도.
1956년 영화 “그리고 신은 여인을 창조하셨다. Et Dieu… créa la femme “ 에서 브리지뜨 바르도(Brigitte Bardot)가 루이 레아르의 비키니를 걸쳤을 때 대단한 반향을 불러왔다. 프랑스의 모든 해변은 비키니의 물결로 뒤덮였다.
에르메스(Hermès) 가게의 가방은 그레이스 켈리(la princesse Grace Kelly)가 켈리백(sac Kell)y)이라는 이름의 핸드백을 들고 다닌 후 전설로 들어 갔다. 1956년 라이프 매거진이 그레이스 켈리가 자신의 임신한 배를 가리기 위하여 에르메스 핸드백으로 배를 가린 사진은 켈리백 신화의 기원이 되었다.
발렌시아가
발렌시아가는 스페인의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 의상실을 차려 명성을 얻었지만 1937년의 내란을 피하여 프랑스 빠리에서 개업하였다. 스페인 고객과 프랑스 미국에도 명성이 알려지고 한 때는 “꾸뚜리에 중의 꾸뚜리에”, “모드의 스승”이라는 호칭을 받았다. 그의 스페인과 프랑스를 섞은 색조는 모던한 매력을 풍기며 인체의 곡선을 날씬하게 보이도록 하는 세련된 라인을 창안하였다. 그는 다양한 시도로 유명하다. 검은 색, 흰색, 회색의 샤넬의 바탕색에 선명한 핑크색을 배합하여 효과를 극대화 하였다.
그는 1950년대 의상계를 이끌었다. 그의 고객으로는 스페인과 벨기에 왕비, 모나코의 그레이스 공비, 윈저의 공작부인들이 있었다. 그의 작업은 자신의 아뜰리에에서 일하던 오스카 드 라 렌타(Oscar de la Renta), 앙드레 꾸레쥬(André Courrèges)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는 엠마뉴엘 웅가로(Emanuel Ungaro)와 위베흐 드 지방쉬(Hubert de Givenchy)에게 영감을 주고 디자이너로 입문시켜 주었다.
1950년대 이후
1957-1967까지 이제 10대들이 수입을 갖게 되면서 시장이 형성되었으며, 미국과 유럽의 간격을 좁힌 비행기가 '제트족'을 탄생시켜 패션 트렌드의 전파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삐에르 꺄르댕, 웅가로, 이브 생 로랑 같은 디자이너들이 나타난다.
꾸레쥬(1923-2016)는 60년대 미니 치마를 띄우고 여성 바지 패션을 유행시켰다. 그는 기능적인 모드이고 기하학적인 형태들로 많은 스타일 전문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리고 흰색을 전방위로 자신 있게 사용하였다.
지방쉬의 의상은 스승 발렌시아가의 영향으로 고전적이다. 1953년 영화 사브리나에서 오드리 헵번의 의상을 맡아 이름을 크게 얻었다. 1993년 헵번이 죽을 때까지 긴밀한 우정을 나누었다. 지방쉬의 주 고객은 재케 케네디, 이란의 팔레비 왕비, 그레이스 켈리, 배우 그레타 가르보, 잉그리드 버그만 등이 있었다.
1954년 그는 셔츠 원피스를 런칭하여 성공하고 3년 후에는 원피스 가방으로 발전시켰다.
지방쉬는 처음으로 고급 기성복 라인을 발표한 그랑 꾸뚜리에다.
1960년대를 상징하는 의상은 허벅지 길이의 미니 스커트와 리틀 걸 룩(little-girl look), 기하학적인 헤어 컷과 좁게 골이 진 스웨터였다.
프랑스에서 1967년부터 스타킹과 청바지가 유행한다. 이 유행은 남자나 여자나 전세계 젊음의 유니폼으로 자리잡는다..
전통적인 부르쥬와 의상은 거부되고 개인성과 편안함이 요구된다. 바지는 이제 여성복이 되었다.
1970년대의 히피 모드가 그리고 펑크 모드가 세상을 휩쓸며 미국의 스포츠웨어가 거리의 의상으로 나타난다.
1980년대
1980년대를 풍미하던 신세대 고급 기성복 디자이너는 장 뽈 고띠에(Gaultier), 입 셍 로랑(YSL), 알라이아(Alaïa), 몬타나(Montana), 뮤글러(Mugler)가 있다. 고급의상은 제한된 고객들을 상대로 옷을 만들고 프로모션으로 의상 액세서리와 향수 시장으로 진출하게 된다.
프랑스 여성들은 의상을 구매할 때 신중을 기해 이미 소유하고 있는 의상과의 코디네이션을 고려하는 합리적인 의식구조를 갖고 있다. 최근의 패션은 개성 있고 다양한 스타일을 추구한다. 그러나 한 가지 스타일이 유행하면 곧 정반대의 스타일이 나오기도 하 여 다양한 스타일을 보여준다.
월드뮤직에 영감을 얻은 절충주의적인 경향이 룩의 경쟁에 들어간다. 겉옷과 티셔츠, 운동모자, 운동화 등이 1980년대 유행으로 들어온다.
21세기 유행의 경향
21세기의 소비자의 의상의 선호에 대한 경향은 유명 브랜드가 지배하는 동시에 브랜드를 급진적으로 무시하는 경향이 함께한다.
노 로고 노 브랜드 노 포장
국제적인 노로고 철학은 2001년 프랑스에 나온 나오미 클라인(Naomi Klein)의 작품을 참조하면 된다. 소비적인 문화와 소비 독재에 저항을 겨냥하며 로고나 브랜드에서 해방되고자 한다.
검소하고 모든 로고에서 배제된 제품의 제조와 상업화로 특정된다.
모양자체의 중요성이 줄어 들고 브랜드와 소비자의 구매력과 삶의 철학이 있는 자신만의 신분을 만들어간다. 구매행태가 더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채산성과 투자 회수에 대한 필요성이 매년 컬렉션의 숫자를 늘린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소비가 예측되는 의상이나 유행을 미리 조사하여 제품을 내 놓고 자본과 공장이 돌아가도록 신제품의 유행의 기간을 줄여가며 새로운 생산을 늘려간다.
프랑스 오뜨 꾸뚜르
2013/2014년의 가을 겨울 컬렉션에 초대 받은 고급의상(Haute Couture)은 14개 브랜드가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이 끝날 당시에는 106 개의 업체가 경쟁하였다. 샤넬, 디오르, 루이 뷰똥, 크리스띠앙 라크르와, 빠리는 일년에 수 차례 일주일짜리 의상 주간을 운영하고 있다. .
2001년 컬렉션에서는 한 브랜드가 50개의 실루엣을 선보여야 하였다면 이번 2013-14컬렉션에서는 25개의 모델을 선보였다.
고급 맞춤의상 한 벌의 평균 가격은 15,000 유로정도 한다. 샤넬Chanel의 손으로 지은 맞춤복은 수 장식이 없을 경우 평균 30,000 유로에 달한다. 100,000 유로가 넘는 가격에 달하는 고급 맞춤의상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샤넬을 위하여 프랑스와 르싸쥬(François Lesage)가 수 놓은 옷 한 벌을 230,000 유로에 구매한 고객이 있었다. 이 옷을 만드는데 작업시간은 1,000시간 이상이 소요된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이와 같은 하이패션의 초대 고객은 200명 정도 된다고 한다. 전 세계를 통틀어 오트 꾸뛰르의 옷을 입을 수 있는 여성은 2천 명이 채 안 된다고 한다. 주된 고객은 아랍 왕족이나 헐리우드의 여배우들이다.
오뜨 꾸뛰르의 수 놓는 작업에 소요되는 시간의 평균은 600 시간정도로 계산된다.
고급 맞춤의상의 전체 매상은 모든 브랜드를 다 합하여 1%를 넘기지 못한다. 실질적으로 브랜드들의 수입은 기성복에서 가져온다. 맞춤복이나 컬렉션은 회사의 이미지 광고를 위하여 하는 광고 이벤트일 뿐이다.
(다음주에 이어서 계속)
사계절 옥탑방에서 테오 bonjourbible@gmail.com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