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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자전거나라와 함께 하는 프랑스 에세이 4화 태양왕 루이 14세와 고독했던 화가 고흐의 발자취를 따라

by eknews posted Mar 2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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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자전거나라와 함께 하는 프랑스 에세이 4화


태양왕 루이 14세와 고독했던 화가 고흐의 발자취를 따라

- 명품 베르사유 투어 -




"왔던 곳 계속 다시 오면 지겹지 않으세요?"

투어를 진행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이다. 여행자들은 일정 중에 한 번 다녀가는 곳이지만, 그곳을 안내하는 가이드는 투어를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이미 방문 횟수 세기를 포기할 정도로 그 장소를 찾는다. 문장의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가는 곳을 계속 다시 가는 것은 맞지만, 지겹지는 않다. 나조차도 이상하게 여기는 점이다. 왜 질리지 않는 걸까. 왜 갈 때마다 새롭고 갈 때마다 설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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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남서쪽으로 22km, 루이 14세와 루이 15세 그리고 혁명을 맞이한 루이 16세가 머물렀던 베르사유 궁전은 프랑스가 가장 부강했던 시절의 역사와 문화를 동시에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국민왕' 루이 필립 시절에 프랑스 역사 박물관으로 재개관하여 그 찬란했던 아름다움을 되찾은, 단연 프랑스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을 자랑하는 곳. 총 공사기간 50여 년동안 왕실의 아낌 없는 투자를 통해 당대 가장 실력있는 건축가, 조경가, 실내 장식가가 만들어낸 곳. 이곳을 찾는 많은 이들은 프랑스 왕가의 부유함을 그대로 엿볼 수 있는 화려함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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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은 루이 14세 시절에 비해 10분의 1로 규모가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약 820헥타르의 드넓은 면적을 자랑한다. 왕실 소속 정원사 르 노트르 특유의 나무 벽으로 만든 미로 정원을 헤매며 그리스로마 신화 속 이야기들이 녹아 든 분수대와 조각상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왕이 주최한 파티에 초대된 귀족이 된듯한 기분에 젖어든다. 한편으로는 거대한 자연에 인간의 손길이 닿으며 뿜어져나오는 더한 생명력 또한 그의 영지 안에서는 그의 뜻대로 이루어짐을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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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유 궁전은 정원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전체적인 구성과 크기만으로도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 부르봉 왕가의 세 왕이 머물렀던 이 궁전에는 당대를 대표하는 예술 양식을 함께 만날 수 있다. 루이 14세 시절, 화려하게 표현된 바로크, 루이 15세 시절, 그의 정부였던 퐁파두르 부인을 중심으로 시작된 로코코, 그 뒤를 이어 등장한 신고전주의까지. 어디로 시선을 두어도 그 끝에 담기는 풍경들은 바야흐로 베르사유 궁전이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지를 단번에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분수. 정원 어딘가에서 로코코 스타일의 드레스를 입은 귀부인들이 높임 머리를 하고 호화로운 피크닉을 즐길 듯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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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4세는 자기 스스로를 '태양왕'이라 칭했다. 왕의 침실은 창문의 덧문을 열면 햇살이 가장 먼저 닿도록 동쪽을 향해있다. 정문을 비롯한 실내 장식 곳곳에는 태양가면을 쓴 루이 14세의 문장이 아로새겨져 그의 영광을 기리고 있는 것은 물론, 왕의 아파트 전체에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이름을 붙여 그와 연관된 신들의 모습을 천장에 그려두었다. 알현 및 접견이 이루어지던 곳은 '아폴론의 방'으로, 태양 마차를 이끌고 있는 아폴론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실내장식에 적용된 공식을 알아두면 수수께끼를 풀듯, 다른 방의 용도나 이름을 유추해볼 수 있어, 신화를 좋아하는 어린이들이 가장 신나게 궁전을 관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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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평균 천만명 이상이 찾고 있는 베르사유 궁전에는 당대 왕의 권력을 상징하는 황금박 장식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그 중 압권은 단연 거울의 방이다. 프랑스가 얼마나 막대한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는지, 루이 14세가 얼마나 대단한 왕인지를 표현하는 천장화는 물론, 당대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사치품인 '거울'을 활용해 아름다움을 극대화한 외교 사신들의 기선 제압용 갤러리. 72m에 달하는 방의 전체 복도에는 거울이, 반대쪽에는 끝없는 정원이 펼쳐지고 있어,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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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이라고 부를 수 있는 순간조차도 쉽게 허락되지 않았을 궁정 생활. SNS에 우리 스스로를 노출시키는 정도의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라 그것은 그들의 운명이었다. 시종장이 아침을 알리는 순간부터 단 한 순간도 오롯이 혼자인 시간이 없었을 왕족의 삶은 과연 행복했을까. 옷을 잘 갖춰 입기만하면 그들이 식사하는 모습까지 '구경'할 수 있었던 공식 만찬실에서 그 질문은 답을 찾는다. 문득 궁전 안을 둘러보는 많은 사람들의 표정을 훔쳐본다. 하지만 누구의 얼굴에서도 화려하면 화려할 수록, 그 이면에 드리울 그림자에 대해 생각할 여유는 없어 보인다. 영롱한 빛을 내는 샹들리에 불빛이 한 순간, 지독하게 외로워보인다.

모든 것을 다 가진듯 보이지만 행동 하나 하나, 말 한 마디 한 마디의 무게를 져야했을 왕의 거처를 떠나, 오후 햇살이 더욱 강렬한 낮 두 시쯤. 두평 남짓한 작은 다락방에서 자신의 작품으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만을 기다리던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생의 마지막 70여 일을 보낸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떠난다. 차창으로 멀어지는 궁전과 그 앞 광장을 가득 메우고 줄을 선 사람들의 모습이 까마득히 멀어진다. 시야에 반짝임이 멀어지고,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 속에서 자주 보던 들판과 교외의 작은 전원주택이 들어차기 시작한다. 한 사람을 보내고 또 다른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 아마도 두 사람 모두는 '고독'과 싸우는 순간을 자주 마주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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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르는 너무도 아름다운 곳이야."

자신의 새로운 주치의로 동생 테오에게 가셰박사를 소개받아, 그를 만나기 위해 1890년 5월, 고흐는 파리에서 북쪽으로 35km떨어진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도착했다. 우아즈 강 위의 오베르라는 뜻을 지닌 이 마을은 전형적인 프랑스 시골 마을로, 여전히 소박한 멋을 품고 있다. 시청 앞, 마을에서 가장 저렴한 라부 여인숙의 다락방에 자리 잡은 고흐는 이 마을에 두 달이 조금 넘는 날을 머물며 80여 점의 작품을 남기고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마을에 도착한 첫날은 고흐도 이 마을의 아름다움에 취해 테오에게 편지를 남겼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오베르의 라부 여인숙은 고흐의 발자취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방에 들어가 그의 농도 짙은 열정을 함께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고흐가 파리에 머물렀던 때에 살았던 몽마르뜨르 언덕의 작은 아파트는 개인 소유이기 때문에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고, 남프랑스 아를의 '노란 집'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을 맞아 집터만 남겨져 있다. 때문에 프랑스에서 유일하게,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여기, 라부 여인숙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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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방은 가격이 너무 저렴했고 가구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작은 쪽방이었다. 여인숙 청소를 담당했던 아주머니는 물감을 사용하는 그림을 방에서 그리지 말라고 이야기했고, 고흐는 그곳에서 스케치를 하거나 테오에게 편지를 쓰는 일, 그리고 고단한 몸을 잠시 뉘이고 잠을 자는 것이 전부였다. 날이 밝으면 화구통에 물감과 붓, 나이프를 담고 등에는 캔버스와 이젤을 메고 마을 산책을 나섰다. 그러다가 마음이 닿는 장소가 있으면 그곳에서 작업을 했다. '오베르의 성당'은 마치 내가 그림 속에 들어와 있는듯, 지금도 그 자리에서 마을을 지키고 있다. 데자뷰. 마치 전에 본 적이 있는 듯, 아주 익숙한 기분이 드는 것은 이미 내가 고흐의 눈을 통해 이 장소를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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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가 그림을 그린 곳곳마다 풍경과 그림을 함께 담을 수 있도록 안내판이 마련되어 있다. 고흐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마을 뒤편의 밀밭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지평선이 닿는 풍경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탁 트인 시야에 저절로 감탄이 새어 나온다.

프랑스에서 맞이했던 나의 첫 1월 1일. 새해의 목표와 다짐을 계획하기 위해서 기차를 타고 오베르에 갔다. 왜 오베르여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때는 꼭 이 마을에서 나 자신과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베르는 아직도 파리에서 기차를 두 번 갈아타고 가야하는 곳이다. 한 시간에 한 대 간격인 기차를 놓치고 망연자실했을 때, 설상가상 비까지 내리기 시작해서 한참을 멍하게 서 있었다. 어쩐지 이 모든 일들이 앞으로 내가 이 나라에서 맞닥뜨리게 될 지도 모를 어떤 사건들을 상징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 시작하자 그냥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졌다. 고민하던 나는 역무원에게 다가가 질문을 했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가려고 하는데 다음 기차는 정말, 정말 한 시간 뒤에 오나요?"

"네. 한 시간요. 철로에 별 문제가 없다면 말이죠. 그런데 곧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옆동네, 메리 쉬르 우아즈로 가는 기차가 와요. 걸어서 20분 정도 걸릴텐데, 그걸 타는 건 어때요?"

한 겨울, 강풍에 비를 뚫고 20분... 머리는 여전히 갈등 중이었지만 내 입에서는 'merci(고마워요)'가 이미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어찌됐든, 거기에 가려고 나왔으니 일단 가자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이미 전에 방문한 적이 있었고 여름에 밀 농사를 짓기 때문에 겨울에는 무채색이겠지만 그대로 나의 새해 첫 외출을 실패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오후 4시쯤에야 기어이 오베르에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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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이 드문 작은 골목을 따라 거닐고 오솔길을 지나 밀밭에 도착했을 때 들이마신 한겨울의 차가운 공기 냄새를 아직도 기억한다. 그리고 매년 봄, 여름을 지나 선선한 바람이 부는 초가을까지 많은 이들과 함께 찾는 오베르는 이제 나에게 아주 특별한 마을이다. 

오베르의 밀밭을 걸을때면 나도 모르게 손님 사진을 찍게 된다. 나란히 손을 잡고 걷는 연인, 팔짱을 끼고 웃음기 어린 얼굴로 대화를 나누는 모녀, 아기의 손을 잡은 아빠. 이미 하루라는 시간동안 정이 들어서 더 그런 것도 있겠지만, 이 길을 함께 걷는 인연에 마음 속 깊이 감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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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이름을 딴 마을 한가운데의 공원에는 자드킨의 손길로 다시 태어난 그의 조각상이 놓여 있다. 투박한듯 섬세하게 이루어진 선을 따라 그의 얼굴과 거친 손을 표현한 선을 훑다보면, 강렬한 인상을 주는 그의 작품이 절로 연상된다. 깊은 열정과, 그만큼이나 짙은 내면의 세계를 간직했던 그를, 나는 이제 사랑한다고 표현한다. 미술이나 예술에 전혀 무지했던 때에도 막연히 고흐의 작품을 모아둔 도록을 보며 나에게 '느끼고 싶다'는 욕망을 처음으로 안겨준 화가이기에, 더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는 인물의 삶과 작업과 번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은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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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과 밤

'하루'라는 이름으로 같은 날짜를 공유하지만 전혀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베르사유와 오베르 쉬르 우아즈도 그러하다. 찬란한 태양이기를 꿈꾸며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권력을 지녔던 루이 14세, 삶의 영광을 재현하고 있는 궁전. 그림 그리기에의 열정으로 가득차, 자기 안에서 타오르는 불꽃의 뜨거움을 강렬한 색채와 붓터치에 담아 생의 마지막 작업을 꽃피웠던 빈센트 반 고흐의 마지막 생을 함께한 마을.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인물의 이야기를 함께하며 그들의 흔적을 찾는 시간이다.
 
일흔이 넘어 증손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300여년이 지난 후에도 '태양왕'으로 불리우는 남자. 서른 일곱의 짧은 생애 중 10년이라는 시간동안은 진정한 '화가'이기를 꿈꾸며 온 열정을 쏟아부은, 태양을 닮은 꽃 해바라기를 사랑한 남자. 닮은 듯 다른 두 사람을 주제로 파리 근교의 두 마을을 둘러보는 일정은 다채로운 영감을 안겨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노을로 붉게 물들어가는 우아즈 강을 벗어나며, 저 햇살을 기억하고 싶어진다. 매일 매일의 빛이 이토록 다르기에, 나의 하루도 매일 비슷한 장소를 찾을지언정 늘 새롭게 느껴진다는 답을 찾는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하루를 각기 다른 사연으로 프랑스에 온 이들과 함께 걷고, 같은 곳을 바라본다는 것. 그 자체가 나에게는 특별하다. 나 혼자 찾았던 곳은 어설프게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과 비슷하고, 많은 손님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새로운 날의 추억을 그 위에 색을 입혀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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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와 테오의 묘

인생의 양극에서 결코 마주치지 않을 것 같은 이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되밟았던 하루가 유독 짧게 느껴진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물어 본다. 루이 14세처럼 어떠한 제약을 감수하고도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루어낼 수 있는 '힘'을 가진 자, 고흐처럼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여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심리적 압박과 부담을 견디며 원하는 일에 몰두하는 자, 고흐의 동생 테오처럼 누군가의 꿈을 위해 그에게 지치지 않는 믿음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 자. 나는 지금 누구를 닮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느냐고.



글,사진 : 유로자전거나라 박송이 가이드
제공 : 유로자전거나라  (www.eurobik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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