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로서 미술품을 수집하는 이유는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오늘과 미래를 보기 위해서죠. 오늘날 동시대 작가들과 이야기하고 작업실을 방문하다 보면 미래가 보입니다."
재산 115억달러(12조원)로 전 세계 갑부 순위 67위인 프랑수아 피노 프랑스 PPR(피노-프랭탕-르두트) 그룹 명예회장(79)의 말이다. 구찌와 알렉산더 맥퀸, 발렌시아가를 비롯한 여러 명품 브랜드와 1등급 와인 샤토 라투르를 소유하고 있는 세계적인 거부인 그는 미술계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 컬렉터 1위다. 최대 미술품 경매업체인 크리스티를 소유한 데다 소장 미술품만 2000여 점(14억 달러 가치)에 이르니, 재산의 10분의 1이 미술품으로 채워진 셈이다. 40년간 미술품을 꾸준히 수집하면서 그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왔을까? 실물경제와 미술 시장을 움직이는 손들 5번째 이야기. 오늘은 미술 시장을 움직이게 하는 윤활유. 미술품 컬렉터에 관하여 글을 전개하고자 한다.
<프랑수와 피노와 그의 컬렉션 중 일부인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작품을 수집할수록 삶이 더 매력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물론 컬렉션의 변화도 있었죠. 예전에는 불확실했던 취향이 경험을 통해 바뀌었고 또 어떤 점에는 확신이 굳어졌습니다." 그는 작품을 고를 때 '귀'보다는 '눈'을 믿는다. "생각이나 사고에 의존하기보다 작품 앞에서 두근거리는 느낌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죠. 비평가들의 생각이나 유행을 따르기보다는 나 자신의 느낌과 시선 떨림 열정을 따른다고 할까요."
피노 회장의 인터뷰 내용을 통해 필자는 왜 사람들이 미술품을 수집하려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좋은 작품을 소유함으로서 그 작품의 가치가 자신에게 옮겨 온다고 믿는다. 즉, 좋은 미술작품을 통해 컬렉터는 자신이 매우 중요한 사람이라고 확신을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미술품 하나로 얼마나 많은 혜택을 누리게 되는 셈인가? 그러나 이러한 혜택 중에서도 미술을 사랑해 특정 장르나 스타일을 감식안을 갖고 골라 사 모으는 전형적인 아트 컬렉터와는 다르게 투자의 개념으로 미술품을 사 모으는 ‘투자형 아트 컬렉터’가 있다. 후자의 경우 미술작품을 통한 고수익을 노리는 투자형 컬렉터의 경우 뜰 만한 작가의 작품을 왕창 사들인 뒤 대중적인 관심을 끌게 하고 결국은 미술관의 컬렉션에 편입되게 해 작품의 가치를 끌어올린다. 이는 미술시장이 호황이던 1990년대에 재벌 출신의 컬렉터들이 해온 방법이기도 하다.
호세 무그라비(jose Mugrabi)라는 미국의 성공한 사업가는 컬렉터로서도 명성을 떨쳐온 인물이다. 수많은 미술 컬렉터 중 무그라비가 유독 눈에 띄는 것은 그가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의 작품을 800점 가까이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워홀을 사들였다. 1988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는 오랜 경합 끝에 워홀의 <20개의 메릴린Twenty Marilyns>을 396만 달러에 낙찰 받았다. 이는 당시 워홀 작품으로는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미 갖고 있던 워홀의 작품들을 시장에 내다 팔아도 큰돈을 벌어들 일 수 있었을 텐데 그는 왜 최고가를 경신하면서까지 워홀을 사들였던 것일까?
호세 무그라비(jose Mugrabi)
The Mugrabi family,
1988년 소더비 경매. <20개의 메릴린Twenty Marilyns>
무그라비는 좋게 말해 워홀의 가치를 올리는 작업을 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며 시장에서 워홀의 작품을 독점하려는 의도였다. 이 같이 그림 투자자들이 경매에서 특정 작가의 작품을 비싼 값에 사들여 작가의 전체 작품 값을 올려놓는 것을 ‘무그라비 요인’이라고 부른다. 만약 워홀 그림을 손에 넣지 못해도 경매시장에서 워홀은 왕성하게 거래가 될 것이고, 당연히 사람들은 워홀를 사고 싶어 안달이 나게 된다.
<무려 800점의 워홀 작품을 소장한 무그라비에 관한 기사내용이 유투브 화면에 올라왔다>
무그라비의 예에서 보듯 오늘날 컬렉터는 투자자 혹은 투기꾼의 모습으로 비치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이들은 소수일 뿐, 미술을 사랑하고 미술의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작품을 소장하고 작가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컬렉터가 더 많다. 뉴욕의 작가들을 세계적으로 키운 페기 구겐하임(Peggy Guggenheim, 1898-1979), 일본으로 넘어갈 뻔했던 한국의 국보급 작품들을 사재를 털어 사 모은 간송 전형필 선생이 그 대표적인 예다.
<뉴욕에 위치한 페기구겐하임 미술관 외부모습>
전통적인 컬렉터는 일종의 예술 후원자였다. 세계적인 금용가였던 데이비드 록펠러(DavidRockefeller)는 미술 컬렉터로도 명성이 자자했다. 그는 1960년대 체이스 은행의 부행장으로 취임하면서 회사의 미술품 컬렉션을 주도했다. 그는 수십 년에 걸쳐 뉴욕 현대미술관에 세잔, 고갱, 마티스, 피카소 등 주요 작가의 작품들을 기증해 왔다. 그가 미술관에 유명 작품과 엄청난 돈을 기부한 이유는 자명하다. 대중이 더 많은 더 좋은 작품을 볼 수 있게 해 미술에 대한 애정을 더욱 키우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컬렉터의 성향이 달라졌다. 이들은 든든한 자본과 미술계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유명 그림을 최고가에 사들이고 있다. 프랑수아 피노, 찰스 사치, 스티븐 코언, 로만 아브라모비치, 울리 지그 등이 그들이다. 일부는 컬렉터이자 딜러이기도 한 찰스 사치처럼 시장을 조작해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이끌어가며 일부는 미술계의 어두운 면을 종종 내보이기도 한다.
예나 지금이나 돈만 많다고 뭇 세상의 존경을 받을 수는 없다. 좋은 일에 열심히 기부를 해야 하고 또 철학, 인문학이나 예술에도 조예가 깊어야 한다. 미술품은 이런 욕망을 가진 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준다. 전설적인 헤지펀드 투자자인 스티븐 코언이나 러시아의 신흥 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엄청난 재력으로 세계의 유명 미술작품들을 싹쓸이해가며 미술계의 중요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소더비나 크리스티 경매의 주요 경매 결과는 항상 전 세계 언론에 기사화되는데, 프란시스 베이컨, 앤디워홀, 루시안 프로인드, 데미안 허스트 등 스타 작가의 작품들을 낙찰 받은 사람들의 이름으로 이들이 항상 거론되곤 한다. 오늘날, 미술시장에 새로이 등장한 이 젊고 투자 지향적인 부자들에 의해 미술시장이 좌지우지 되고 있다. 이른바 새로운 컬렉터의 등장이다. 그렇다면 처음 미술품을 구매하고 미술시장에 접근하려는 사람들은 어떤 움직임을 취하는 것일까? 다음 글에서는 실물경제와 미술시장을 움직이는 손들 마지막 회- 아트컨설턴트-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자 한다.
<허유림, 유로저널 컬럼니스트, 인디펜던트 큐레이터, 예술기획및 교육, Rp’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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