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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화폐의 새 얼굴, 터너 (J.M.W Turner)

by eknews posted Apr 2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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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혜의 런던 아트 나우(London Art Now #18)

영국 화폐의 새 얼굴, 터너 (J.M.W Tur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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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행이 발표한 터너와 그의 대표작이 들어간 새로운 20파운드 지폐 도안

지난 22일, 영국의 대표적인 화가인 터너(J. M. W Turner)가 20파운드 지폐의 새 얼굴로 선정됐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세계적인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를 대신하게 될 터너의 새로운 20파운드 지폐는 그의 초상화와 대표작 <해체를 위해 예인된 전함 테메레르(The Fighting Temeraire Tugged to Her Last Berth to Be Broken Up)>가 함께 실릴 예정이며 이 지폐는 2020년부터 유통될 예정이다. 1838년에 그린 이 작품은 1805년 트라팔가 전투에서 활약하며 영국 해군의 자랑이었던 유명한 전함이, 찬란한 석양빛을 역광으로 받으며 최후의 닻을 내릴 곳으로 끌려가는 것을 그린 작품이다. 

“장대한 낡은 군함이 수치스럽게도 해체를 위해 끌려가는 그림. 피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이죠. 안그래요?” 

007 스카이폴에 본 작품이 등장하는데 이 작품을 마주한 제임스 본드의 뒷모습과 함께 이 대사가 흘러나왔었다. 해가 지는 풍경 속에서 영국 해군의 위엄이었던 테메레르는 찬란했던 시대를 회상하듯 푸른 하늘을 등지고 화려하게 빛난다. 반면 연기를 토하는 작은 증기선은 어둡다. 수평선을 곧 넘어갈 듯한 태양은 이러한 풍경을 더욱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2005년 BBC의 여론조사 결과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그림으로 꼽힌 바 있으며 영국 최대의 미술관인 내셔널 갤러리의 소장품으로 내셔널 갤러리 34번 전시실에 영구 전시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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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너의 <해체를 위해 예인된 전함 테메레르>
내셔널 갤러리 소장
 
화폐의 문화적 가치
화폐는 인류 역사와 함께 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그 역사가 오래되었다. 물물교환시기를 지나 재화의 가치를 가진 화폐가 사용되기 시작했고, 이는 자본주의사회로의 발전과 근대국민국가의 형성과 함께 발전했다. 화폐는 국가의 형성을 제도적으로 정비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통일된 관리를 요하는 필수적인 매체가 되었다. 즉 화폐의 디자인은 곧 그 시대의 국가적 통치 이념이나 민족적 정체성을 담보하고, 그것을 표현한 디자인과 기술 수준은 국가 발달 수준을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지폐는 그 자체로 국민의식 형성에 중요한 매체로 작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화폐의 도안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매우 신중하고 민감하게 다루어지는 이슈 중에 하나 있다. 

얼마 전 미국에서도 지폐의 새로운 인물에 관한 논란이 있었다. 미국 재무부가 20달러 지폐 앞면 인물을 앤드루 잭슨 전 대통령에서 흑인 여성 인권운동가 해리엇 터브먼으로 바꾸기로 한 데 대해 미국 보수 진영인 공화당이 거세게 반발했다. 표면적으로는 잭슨 전 대통령을 20달러 지폐에 남겨놓아야 한다는 의견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흑인 여성이 달러화 지폐에 등장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배어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현대사회에서는 화폐가 단순히 재화의 수단으로써가 아니라, 국가의 상징성과 문화정체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수단 매체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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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초상이 들어가 있는 영국 화폐
 
영국의 경우, 모든 지폐의 앞면에는 현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의 초상화가 있다. 이는 1953년 엘리자베스 2세가 왕위를 승계받으면서부터 이어져오고 있는 것인데, 영국의 화폐에 그려진 여왕의 초상은 은행권과 주화에 각각 4차례나 그 모습이 바뀌었는데 현재의 도안은 1990년에 개정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엘리자베스 2세의 초상을 화폐에 사용하고 있는 나라가 20여 개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화폐를 사용하고 있는 나라가 200개 국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전체의 10%에 해당하는 비율이다. 영국연방은 옛날 영국제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한 50여 개의 나라로 구성되어 있다. 자국을 식민지로 삼았던 나라지만 떳떳하게 독립을 해 ‘영국연방’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독립국에서는 볼 수 없는 특수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영국연방 국가 중 20여 개에 이르는 국가에서는 아직도 영국 여왕을 국가 원수로 생각한다고 하니, 화폐 디자인을 국가정체성의 상징으로 보는 측면에서 보자면 매우 특수한 경우라고 하겠다. 

윌리엄 터너 ( J. M. W Turner, 1775 - 1851 )

터너는 19세기 영국의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로 알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서양 회화의 거장 중 한 사람이다. 영국을 대표하는 미술비평가인 하버트 리드는 터너를 “영국회화의 장대한 거인”, “영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화가”로 평가하기도 했다. 
터너는 이발사인 아버지와 정신병을 앓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미술을 공부하기에 적합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터너의 재능을 일찍부터 발견한 아버지는 장차 아들이 화가가 되기를 희망했으며 실제로도 가장 큰 후원자이기도 했다. 터너는 삼촌이 사는 시외에 머물며 목가적인 풍경에 매료되어 많은 스케치를 했는데 이때 생긴 풍경스케치는 그가 평생토록 즐겨했던 드로잉 습관이 되었다. 

아버지는 터너가 11~12세 때 그린 드로잉을 가발가게에 걸어 놓고 팔기도 하였다. 이 무렵 터너는 건축 제도사였던 토마스 말턴의 조수로 들어가 그림을 그렸으며 이때 정확한 원근법 묘사 등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진다. 1789년 14세 때 로열 아카데미(왕립미술원)에 입학하여 수채화를 배우고, 이듬해 아카데미 연차전(年次展)에 수채화를 출품하였다. 그는 주로 수채화와 판화를 많이 그렸는데, 20세 무렵에는 유화를 시작하여 풍경유채화를 전람회에 출품하기도 하며 어려서부터 미술가로서 꾸준한 길을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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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너의 초상화, 테이트 브리튼 소장

터너의 명성과 미술사적 위상을 뒷받침하는 업적은 주로 그가 일생을 통해 매진했던 풍경화에서 비롯되었다.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사가의 한 사람인 곰브리치는 그의 역작인 <미술이야기>에서 풍경화는 원래 서양미술에서 전통적으로 ‘이류의 부문’으로 여겨졌었으나, 이러한 태도는 18세기 말의 낭만적 정신에 의해 바뀌게 되었고, 이에 따라 터너는 풍경화에 새로운 위엄과 품위를 부여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터너의 분위기와 빛에 의한 극적인 효과로 가득차 있던 풍경화는 단지 새로운 것이었을 뿐 아니라, 그의 시대 이후에 전개되는 19세기 말의 근대회화와 20세기 현대회화의 선구를 이루는 것이기도 했다. 

터너는 생전에 1만 9000점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양의 스케치를 남겼는데, 그는 주로 스케치와 수채화 습작 작업들을 통해 얻은 빛과 색채에 대한 연구를 유화에 적응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유화를 통해 밝은 색체에 심취한 그의 풍경화들은 말년에 이를수록 풍경과 색체의 단순한 조화가 아니라 눈부신 장관을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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