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술가가 사랑한 예술가 1 > 검은 피카소, 바스키아 ( 4 )
영화 < 바스키아 >
줄리앙 슈나벨 감독의 영화 <바스키아(1996)>는 '검은 피카소'라 칭해졌던 천재 화가의 생애를 보여준 작품이지만, 그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바스키아의 인생에 가족보다 더 큰 영향을 끼쳤던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과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즉, 이 영화는 앤디 워홀을 만나기 전과 후로 나누어 바스키아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영화 <바스키아> 포스터
거리에서 작업을 하며 지내던 바스키아에게 작품의 가치가 가져다주는 부와 권력의 달콤함이 무엇인지 가르쳐준 것이 바로 앤디 워홀이었다. 그러나, 바스키아는 기존의 식상함을 완벽하게 벗어버렸다는 찬사를 받고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낙서가에서 천재화가로 상승된 그의 지위로 위험한 줄타기를 멈추지 않았다.
가슴 아픈 결별
이런 바스키아를 다독이며 워홀은 그에게 공동 전시를 제안했다. 그래서 앤디 워홀이 죽기 2년 전 1985년, 바스키아는 그와 함께 뉴욕에서 거대한 공동 전시를 기획하고 실행했었다.
많은 기자들은 두 익살꾼의 만남을 기대하며 취재열기를 불태웠다. 그러나, 이 포스터처럼 개성 넘치는 두 작가의 매력적인 모습과는 달리 전시는 혹평을 받고 말았다.
앤디 워홀과 장 미셸 바스키아
다수의 열광과는 달리 화려하게 열린 바스키아와 워홀의 전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고배를 마시게 되었다. 이 때문에 바스키아는 워홀과 멀어지게 되었고, 결국 전시 실패를 계기로 워홀과 바스키아는 각자의 영역에서 방황을 했다.
꺼져버린 불꽃의 잔해
그러나 일 때문에 사랑했던 여인을 떠나 보내듯 워홀과는 멀어졌지만, 바스키아는 많은 갤러리를 돌아다니며 각종 오픈 파티에 참여하는 등 그의 상류층 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바스키아의 작품을 주문하지도 주목하지도 않게 되었다. 이것이 바스키아를 점점 더 마약에 의지하게 했다.
무엇보다 바스키아의 인생을 순식간에 바꿔 버린 일은 따로 있었다. 그림을 그리면 그리는 대로 고가에 팔려버리는, 소위 말해 잘 나가는 작가의 생활을 종식시켜 버린 그 결정적인 일은 바로 1987년 앤디 워홀의 사망이었다.
워홀과의 마지막 관계가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있었다고 해도 바스키아의 작가적 삶을 주로 이끌어 주었던 앤디 워홀의 사망 소식은 그에게 가눌 수 없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워홀이 사망했던 1987년 2월 이후로 바스키아는 거의 모든 전시 계획을 중단했다.
그 이후 그림 한 점 제대로 그려내지 못하게 되어버린 그는 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사치와 쾌락에 빠져 하루하루를 허비하며 지냈다. 팝아트 거장의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지만, 바스키아에게는 충격 그 이상이었던 것이다.
삶의 불꽃이 마약으로 꺼져가고 있던 바스키아는 워홀의 죽음 이후 더 희미해져 갔다. 결국 워홀의 사망 1년 후인 1988년 여름, 바스키아는 뉴욕의 자택에서 코카인 중독으로 인해 생을 마감하게 된다.
5. 남은 불씨는 아직도 뜨겁다
서른 살도 채 안 된 젊은 예술가, 검은 피카소로 불리며 뉴욕 화단에 일대 바람을 일으켰던 바스키아는 이렇게 생을 마감하였다. 그가 공식적으로 화단에 머리를 내민 지 8년 만이었고 그의 나이는 27살에 불과했다.
바스키아가 떠나고 또 다른 거리 미술가였던 키스 해링(Keith Haring)도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사실상 1980년대의 주축을 이루던, 그리고 그래피티 아트의 물꼬를 틔웠던 화가들은 앤디 워홀과 바스키아의 죽음을 중심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바스키아는 그가 죽은 지 약 30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살았던 당시에 받았던 천재라는 호칭을 그대로 누리고 있다.
바스키아
그는 단지 미국만이 아니라, 서구 사회에 강한 일격을 가했던 자유구상 화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낙서'라는 시대상의 비예술적 행위를 통해 인간에 대한 탐구나 비판을 엮어 내는 것에 소질이 있었고 그것을 폭로함으로 인해 자신을 가장 바람직한 방법으로 세상에 내던졌다.
즉, 미술사에서 바스키아의 탄생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의 장벽을 허무는 돌파구의 역할을 했던 셈이다.
꺼지지 않고 남은 불씨처럼 바스키아를 대변하는 말들이 여전히 무성하다. 사람들의 말처럼 그는 정말 천재였을까? 이런 이야기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어쩌면 그는 평범한 흑인 화가였을지도 모른다. 1980년대 초반 미국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던 흑인 화가 장 미셀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는 브루클린의 전형적인 흑인 가정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그림을 그리기를 좋아했고, 그림과 함께 청소년기를 보냈다. 1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독립을 시작한 바스키아는 그때부터 자신의 작품과 비지니스라는 가치를 결합시키기 시작했었다.
아니면, 그는 사회가 만들어낸 인위적인 허상일 수도 있다. 이것도 아니라면, 그는 진정한 시대의 메시아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바스키아의 그림을 앞에 두고 그가 하늘이 내린 천재 미술가였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논하는 것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그는 '검은 피카소'로 알려지기 전부터 그림을 그리는 화가였고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무명의 언더그라운드에서 올라와 어색한 양복을 입고 카메라를 보며 웃음을 짓는 행동은 분명 바스키아에게 어색하게 보이지만, 그 위화감은 열정으로 불타오르는 한 젊은 작가의 불꽃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스물 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꺼져버린 불씨 장 미셀 바스키아, 그는 미국에서 흑인으로서 최초로 성공한 천재 그래피티 작가이자, 80년대의 제임스 딘 또는 검은 피카소라고 불렸다. 그는 죽고 없지만, 우리는 그의 그림을 통해 그의 숨결을 여전히 느낄 수 있다.
바스키아
자전적 이야기, 흑인 영웅, 만화책, 해부학, 낙서, 낙서와 관련된 기호 및 상징뿐 아니라 금전적 가치, 인종주의, 죽음과 관련한 그만의 시적 문구 등으로 비교적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광기 어리고 열정적인 작품 활동을 통해 동시대의 중요한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주제들은 때때로 경계가 불분명하며 복합적이지만 작품에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기호, 문자, 인물 등의 암시를 통해 그의 의도를 충분히 유추해 볼 수 있다. 그의 그림은 마음의 정화, 실패한 종교, 엉터리 정치, 민족주의 등 사회에게 보내는 거침없는 메시지들을 담고 있다.
그는 미국 뒷골목의 대변자로서 이러한 자전적인 이야기에서부터 만화책, 해부학적 낙서 및 상징적 기호나 형상, 인종주의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다양한 주제들을 즉흥적이고 역동적이며 유희적으로 그려냈다. 그는 어느 미술 사조나 예술가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고, 흑인으로서 그리고 예술가로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들을 거침없이 그려나갔다.
그가 거칠게 뿌려댔던 것은 물감이 아니라 자유라 불리는 영혼이었고, 그의 콜라주는 강박 관념과 회화로 덧댄 자아의 분출이었다. 이러한 바스키아의 태도와 표현은 자유를 갈망하는 이들의 애정을 받을 만했다.
「바스키아는 불꽃처럼 살았다. 그는 진정으로 밝게 타올랐다. 그리고 불은 꺼졌다. 하지만 남은 불씨는 아직도 뜨겁다.」
이 시는 바스키아의 애인이었던 수잔이 바스키아를 위해 장례식장에서 낭독한 시다.
이렇듯 그는 자신이 죽은지 약 30년이 지난 지금도 마돈나 뿐만 아니라, 할리우드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미국의 알앤비 가수이자 배우, 디자이너인 비욘세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바스키아가 꿈꿔오던 스타가 되는 길은 그 자신이 현실에서 추구한 자유로운 영혼과 공존하기에 너무나도 큰 갭이 있는 듯 하다. 그의 이름이 유명해질수록 미디어와 주위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일은 견디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스타가 되고자 했던 그의 판타지는 질주하는 젊음을 남기고 한 줌의 재가 되었다. 하루하루를 지루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느끼는 현대인에게 뉴욕의 밤거리처럼 화려한 삶을 살아가다 한 순간 사라져 버린 바스키아의 뜨거운 젊음과 삶은 우리 안에 꿈틀거리고 있는 거침없는 자유를 만나게 하는 것 같다.
Warrior, 바스키아, 1982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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