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음료', 쌩떼밀리옹 그랑크뤼 시음회
보르도. 와인 애호가라면 누구나 아는 이름이다. 하지만 와인 좀 안다는 사람에게 보르도의 유명 와이너리를 몇 개 말 해보라고 하면 대부분 메도크 지역 샤토를 나열할 것이다. 이른바 보르도 5대 샤토라 부르는 라피트 로췰드, 라투르, 마고, 무똥 로췰드 등, 그리고 5대 샤토는 아니지만 뭔가 한국인과 친근한 샤토 딸보까지. 하지만 보르도에 메도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강자 쌩떼밀리옹이 있다.
쌩떼밀리옹은 8세기경 에밀리옹 성인이 은둔했던 곳 주변에 마을이 생기면서 성자 에밀리옹이라는 의미로 탄생했으며, 1999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아름다운 마을이다. 하지만 쌩떼밀리옹 와인의 명성이 높은 이유는 역시나 그 맛과 품질 덕분이다. 그 강인하면서도 섬세한 맛이 얼마나 훌륭하면 루이 14세가 ‘신들의 음료(Nectar des Dieux)’라고 이야기했겠는가?
아름다운 중세 도시, 쌩떼밀리옹
보르도 5대 샤토에 필적할만한 쌩떼밀리옹의 슈퍼스타를 한 번 나열해 보자. 샤토 슈발 블랑과 샤토 오존느. 쌩떼밀리옹의 유서 깊은 이 두 샤토는 앞서 이야기한 메도크의 5대 샤토보다 대중적인 유명세는 덜하다. 하지만 품질이 덜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높으면 높았지. 일반적으로 슈발 블랑과 오존느의 가격은 샤토 라투르 등 메도크 1등급 와인보다 꽤나 더 비싸다. 물론 와인의 가격과 품질이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은 지표는 되기에 쌩떼밀리옹 와인의 품질을 짐작하게 한다. 보르도를 대표하는 와인을 찾을 때 쌩떼밀리옹을 생략해서는 안 된다.
쌩떼밀리옹의 슈퍼스타, 샤토 슈발 블랑의 유명한 콘크리트 탱크
쌩떼밀리옹이라는 이름이 붙은 와인은 3유로에서부터 몇천 유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데, 고급 쌩떼밀리옹 와인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쌩떼밀리옹 그랑 크뤼 끌라쎄’. ‘끌라쎄(Classé)’는 등급으로 지정됐다는 뜻으로 그 맛과 품질이 보증된다는 의미다. 여타 등급체계는 한 번 정해지면 변경이 되지 않아 과거의 명성과 현재의 품질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하지만 쌩떼밀리옹은 다른 지역의 등급체계와 다르게 10년에 한 번씩 개정되는데, 더 높은 등급으로 올라가기 위해, 아래로 내려가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기 때문에 그 품질이 계속 향상되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등급 심사에 불만을 느끼고 소송도 많이 일어나는 단점도 있다.
쌩떼밀리옹 그랑 크뤼 끌라쎄 시음회 - 사진제공 : 소펙사
얼마 전, 앞에서 언급한 쌩떼밀리옹의 고급 와인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2016년 5월 20일, 쌩떼밀리옹 그랑 크뤼 끌라쎄 협회(L’Association de Grands Crus Classés de Saint-Emilion)가 주최하고 소펙사 코리아(Sopexa Korea)가 주관하는 ‘2016 쌩떼밀리옹 그랑 크뤼 끌라쎄 시음회’가 임피리얼팰리스 서울, 셀레나홀에서 열렸다. 25개의 그랑 크뤼 끌라쎄가 참석한 행사로 2년에 한 번, 홍콩에서 빈엑스포가 열릴 때에만 만나볼 수 있다. 매년 가을에 열리는 보르도 그랑 크뤼 끌라쎄 시음회가 메도크, 그라브 등의 좌안과 쌩떼밀리옹, 포므롤 등의 좌안을 비교할 수 있는 자리라면, 이번 행사는 쌩떼밀리옹에만 포커스를 맞췄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는 2011년, 2012년, 그리고 2013년 빈티지를 선보였는데 필자는 2013년 빈티지에 초점을 맞췄다. 2013년은 최근 보르도 20여 년 중 가장 힘든 해였다. 흔히 이야기하는 ‘나쁜 빈티지(필자는 이 표현에 동의할 수 없지만)’다. 맛있는 와인을 맛보려면 11년이나 12년을 테이스팅 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와이너리의 수준과 실력을 보려면 13년 빈티지를 맛봐야 한다. 날씨가 좋을 때는 누구나 괜찮은 와인을 만들 수 있다. 그냥 가만히 팔짱 끼고 있어도 포도가 잘 자라니 말이다. 하지만 날씨가 안 좋으면 사람이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 포도 수확, 발효, 숙성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서 생산자의 실력과 노력이 드러난다. 이번 행사에서 시간은 적은데 시음할 와이너리는 많을 경우 2013년 빈티지를 맛보면 전체적인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주변 관계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아쉬움이 많았다. 슈퍼 스타 샤토가 많이 참석하지 않았다는 점과 감동할만한 와인이 적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바꾸어 생각하면 그것이 와인의 재미가 아닌가 생각한다.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와이너리, 그것도 상당히 어려웠던 빈티지의 와인 속에서 본질을 느껴 보는 것. 단순히 와인을 마시는 사람을 넘어서 와인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프랑스 유로저널 박우리나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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