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안 개구리
우물 안의 개구리에게 끝이 보이지 않는 드넓은 바다와 하늘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개구리가 느끼는 우물은 자기만의 철학이 담긴 천동설을 주장한다. 과거에 인류는 지구가 중심이라는 천동설을 정설로 믿었다. 태양을 비롯한 우주의 모든 천체들은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믿은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과학적 한계가 아니라 그들의 신앙이 되었다. 16세기에 와서야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 폴란드, 천문학자, 신부)도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고 오히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지동설을 주장하였지만 그것은 개인의 주장이라 결론내린다. 1616년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 -1642, 이탈리아, 천문학자)가 지구가 둥글다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주장했을 때 결국 그는 과학의 힘이 아닌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지동설 주장에 대해 포기를 명령받게 된다. 기원전 4세기 경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별자리를 연구하다 지구가 중심이고 모든 천체는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 주장한 것을 약 1400년 동안 신앙 같이 믿어 온 것이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믿었던 천동설은 우물이 세상의 중심이고, 세상이 우물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지극히 비좁은 자기중심적 철학을 비유하는 속담일 것이다. 인류는 그렇게 발전해 온 것이다. 우물 안에 있는 개구리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자신을 지구의 중심뿐 아니라 우주의 중심으로 이해하고 가르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주관적인 사고에 의한 교육보다는 객관적인 사고에 입각하여 가르쳐야 하고 배워야 한다는 사실이다. 학창시절 객관적인 세계관을 배우기보다는 지극히 주관적인 우물 안 개구리의 천동설을 배워왔다. 세계의 중심은 대한민국임을 당당하게 배워왔다. 그 증거가 세계지도였다. 세계전도를 펼치면 가장 중심부에 한반도 지도가 자리하고 있다. 그것을 가르치는 선생도 배우는 학생도 우물 안 천동설을 주장하는 개구리가 되어 한국이 세계의 중심임을 소리 높여 외치며 애국심을 불태웠다.
영국에 와서 처음으로 구입한 것이 세계전도이다. 거실 한편에 걸어 두었는데 마음이 석연치가 않았다. 영국에서 구입한 지도에는 중심부에 있던 대한민국은 오른쪽 한 모퉁이에 손톱만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애국심으로는 대한민국을 좀 더 크게 그려 넣고 싶지만 역사적 사실인 객관적인 관점에 지도를 봐야 하기에 영국에서 판매되는 지도를 마음에 받아들이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한국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사실이 무너질 때 조국을 생각하는 마음 한 쪽에는 주관적 교육이 가져오는 결과로 인해 몸살을 앓아야 했다. 조국의 것이 최고의 것이라 느껴지는 것은 조상대대로부터 살아온 편리한 풍습 때문이며, 우리의 것이 세계적인 것이란 애국심에 호소할 때만이 설명이 가능한 일이다.
조선역사상 왕의 자리에 오르지 않고 아들 고종의 왕위에 오르자 왕을 대신한 섭정으로 대원군으로 봉해진 '이하응'은 (1820~1898) 외세의 침입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쇄국정치를 펼쳤다. 흥선 대원군은 병인양요(1866년), 신미양요(1871년)의 승리 후에 전국의 주요 장소에 척화비를 세워 쇄국정치의 당위성을 백성들에게 알렸다. 그가 세운 척화비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서양의 오랑캐가 침략해 오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해 할 수밖에 없고, 화해를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 (洋夷侵犯 非戰卽和 主和賣國 戒我萬年子孫) 나라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모든 문들을 막음으로 스스로가 우물 안 개구리가 되었다. 전세계는 첨단 과학이 발전하여 도로를 포장하고 새로운 건축 공학으로 빌딩들이 세워지는 동안 조선은 비가 오면 질퍽한 땅을 걷기 위해 자신만을 위한 나막신을 만들고 비가 새는 초가삼간에서 살아야 했다.
정중와부지대해(井中蛙不知大海), 우물 안 개구리는 큰 바다를 알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이를 줄여서 '정중지와'라 한다. 하루살이 곤충에게 말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교육의 효과 이며 기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기적의 주인공에게 내일에 대한 미래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여름 철새에게 눈 덮인 설경의 아름다운 겨울을 설명하는 것과 겨울 철새에게 낭만적인 여름을 설명하는 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다. 우물 안을 왕좌 삼고 우주가 우물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개인적인 천동설을 주장하며 살아가는 개구리에게 저 드넓은 바다를 설명하는 것 보다 오히려 개구리에게 글을 가리키는 것이 수월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물 안 개구리는 개구리 이야기가 아니라 견문이 좁아서 세상 형편을 모르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다.
우물에 사는 개구리는 개구리일 뿐이다. 그에게는 드넓은 바다가 필요치 않을 것이다. 우물만이 최고의 삶의 터전이며 그곳이 미래이며 낙원이 된다. 개구리는 비좁은 우물 안에서 불편을 느끼지 않고 자유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공간의 한계를 느낀다. 그래서 끊임없이 현실의 삶에 만족하지 않고 대양을 건너 미지의 땅을 정복하려 했다. 바다 끝에 가면 끝없이 떨어지는 지옥의 절벽이 있음에 대한 교육을 받았지만 바다 끝에 무엇이 있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했다. 역사는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확트인 길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설혹 지구 끝에 다다라 낭떠러지에 떨어질지라도 그 길을 가보고 싶은 것이 인간이 가지는 도전 정신이었다. 자신이 속한 우물의 안전한 틀을 벗어나 미지의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이 인간이 가지는 미래 지향적이며 미답지 개척의 속성이다. 그래서 지구촌을 모두 정복을 하고 이제는 끝을 헤아릴 수 없는 우주를 향해 길을 내고 있는 것이다.
▲ 런던 그리니치 천문대 기념관 조형물
도전은 아름다운 것이다. 문제는 정복 이후에 그곳을 자신만의 우물로 만든다는 것에 있다. 인간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다 유익한 것은 아니며, 또 그것이 모든 인류에게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다. 강대국들은 미개척지를 찾아낸 후 그들의 문화와 삶을 존중한 것이 아니라 파괴시키며 그곳을 자신들의 전용 우물로 만들기에 급급했다. 영국의 자랑인 그리니치 천문대(Greenwich Observatory, 1675년 설립) 기념관 앞에는 커다란 병에 세계를 탐사했던 모형 배를 집어 넣었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던 시절에 목숨을 걸고 지구 끝까지 여행한 결과 새로운 세계를 알았으며 지구가 중심이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교만에서 벗어나 태양계에서 작은 모퉁이에 불과하다는 객관적인 겸손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정복한 것을 자기 손안에 가두고 자기 우물을 만들고 싶은 것이 힘 있는 자들이나 강대국의 정책이었다.
한 때 지식을 개인이나 국가가 소유하려 했다. 아는 것이 힘이 되고 정보가 되는 시절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아는 것이 힘이 되기는 하지만 과거처럼 지식을 개인이 독점하는 시대는 끝이 났다. 과거의 지식은 지금의 상식이 되었다. 무엇인가를 아는 지식은 힘이 되기보다 이제는 아는 것을 편집할 수 있는 것이 능력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우물 안에서는 최고의 학자요 왕좌의 자리에 앉았을지라도 그 우물이 해체될 때 세상에서 가장 넓은 우물로 생각했던 것이 세상에서 가장 비좁은 공간이며 인간의 미래를 옥죄는 덧이 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한 시대의 성장과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것이 시대가 바뀔 때 오히려 국가의 미래를 가로 막는 장애가 되기도 한다. 인간이 무엇인가 정복한 이후에는 그것이 세계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비좁은 우물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정복하면 할수록 겸손해야 하는 것이며 정상에 오르면 오를수록 고개를 숙여야 하는 것이다. 빈 수레가 소리를 내며, 얕은 냇물이 요란하게 소리를 낼 뿐이다. 대하무성(大河無聲)이란 말이 있다. 큰 강물은 소리를 내지 않고 흐른다는 의미이다. 이 시대 우물 안에서 왕 노릇 하는 이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세상은 불안해지기 마련이다. 내가 속한 우물도 중요하지만 우물 밖의 우물을 존중할 수 있는 철학을 가진 자가 미래 사회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지도자의 자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박심원 유로저널칼럼니스트
- seemwon@gmail.com
- 목사, 시인, 수필가
- 예수마을커뮤니티교회 담임 http://jvcc.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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