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tout de suite maintenant>
파스칼 보니체 Pascal Bonitzer, 프랑스 개봉 2016년 6월 22일
영화비평가, 이론가이며 시나리오작가, 배우,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지금, 당장>의 감독 파스칼 보니체의 영화세계는 영화실전경력과 아카데믹한 이력이 적당히 버무려져 심각(?)함보다는 조금 더 대중성에 기대있는 듯하다. 프랑스 영화가 즐겨 찾는 소재이기도 한 가족과 그 주의를 둘러싼 관계 속 인물들의 일상적 감정에 발을 디딘 <지금, 당장>은 어렵지 않게 다가온다.
영화는 주인공 노라가 기업 인수, 합병 거래 회사에 입사하면서 시작된다. 냉철하고 야심 찬 노라는 빠르게 상사의 신뢰를 얻지만 어느 날 문득 단순히 자신의 능력만으로 회사에 들어 온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자신을 바라보는 두 상사(바르삭과 프레 보 파레데스)의 미스테리한 표정에는 알 수 없는 비밀이 숨어있는 듯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라는 바르삭과 그의 아내(솔베그), 프레보 파르데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세르즈)는 젊은 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이며 솔베그와 세르즈가 연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편 회사동료 자비에와 노라, 그리고 그녀의 언니 마야의 미묘한 삼각관계도 시작된다.
<지금, 당장>은 비인간적인 금융자본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를 배경으로 노라라는 한 인물을 배치하고 현재와 맞닿을 수 밖에 없는 과거라는 시간을 이끌어내 가장 인간적인 감성(사랑, 질투, 애증...)을 다룬 멜로드라마다.
앞 세대의 한 여인을 둘러싼 세 친구의 관계 속에 그 중 한 명의 딸인 노라라는 인물이 들어가면서 영화의 플롯은 짜임새를 구축해 간다. 영화 도입부 한 상사가 환기시키는 '뱅골고무나무(주위의 식물을 잠식하면서 뿌리를 뻗어나간다)'는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첩 된 이야기의 실마리가 된다. 기업 인수, 합병회사의 생리를 상징하며 지나간 과거가 다시 현재로 상기되는 관계의 얽힘으로 읽을 수 있다.
차가운 분위기의 대형 건물 로비로 들어서는 노라를 부감으로 잡은 카메라는 그녀를 따라 미로 같은 회사내부로 들어간다(미국필름느와르 팬을 자처하는 감독의 기호가 느껴진다). 미스터리 이야기 형식을 닮아있지만 이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한 젊고 아름다운 여인의 성공기나 잔인한 자본의 암투가 아닌 인간의 감정이다. 명망 있는 수학자였지만 지금은 은퇴한 냉소적인 세르즈, 안락과 부를 가졌지만 알코올중독자인 솔베그, 성공가도를 달리는 기업가지만 인간적 따뜻함과는 거리가 먼 바르삭과 프레보 파레데스의 관계는 그들을 잇는 세대라 할 수 있는 젊은 세 인물의 관계의 연장선에 있는 듯하면서도 다르다. 친구였지만 서로에 대한 경멸과 무관심으로 돌아섰던 과거의 관계와 자매와 한 남자가 겪는 관계의 정서는 닮아있지만 진행 방향은 다르다. 보니체의 각본은 미사여구를 털어내고 그들의 복잡해 보이는 감정 관계를 간결하게 풀어낸다. 기라성 같은 감독들과 수많은 시나리오 작업을 해 온 보니체의 장기다.
영화와 회화에 대한 책을 저술하기도 했던 감독은 복잡하지 않은 이야기 구조 속에 함축적 이미지의 힘을 더 믿는 듯 하다. 차갑고 삭막한 절제된 분위기의 현대식 사무실은 냉혹한 대자본의 혈투가 이뤄지는 현장이다. 세련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바르삭과 솔베그의 집은 따뜻함의 흔적은 찾아 볼 수 없다. 이와는 또 다른 한 곳에 서 있는 세르즈의 아파트는 서민의 집이다. 두 딸이 가까이 있지만 그 공간은 무언가 허전하고 썰렁하다. 인물들의 사적이고 내적 심리는 공간과 장소의 존재를 강조를 통해 표현된다.
특히 세르즈와 솔베그의 해후의 장면은 대표적이다. 카메라는 집 문을 들어서는 솔베즈와 맞이 하는 아버지를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다 거실로 들어서는 두 사람을 따라 이동하지만 여전히 거리를 유지한다. 뒤로 보이는 작은 램프가 비추는 비어 있는 공간은 마주하는 두 사람의 거리만큼 어색하고 건조하다. 카메라의 움직임만으로 만들어 낸 화면분할은 장황하지 않으면서 세심하게 인물의 심적 상황을 보여준다. 감독의 절도 있는 연출력을 맛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전형적인 인물들의 성격(냉정하고 이해타산적으로 보이는 대기업 사원 노라와 가수지망생으로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는 언니 마야, 그리고 그 사이를 오가는 자비에)과 조금은 맥없이 해결되는 결말에 아쉬움이 남지만 소소한(?) 인간 감정의 연주 속에 이야기를 끌어가는 시나리오의 힘은 주목할 만하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배우들(람베르 윌슨, 파스칼 그레고리, 쟝 피에르 바크리, 이자벨 위페르)의 연기는 주목할 만하다. 특히 무심한 듯 차가운 듯한 솔베그의 불안과 열정을 여지없이 보여 준 이자벨 위페르의 연기에 다시 한번 감탄한다.
프랑스 유로저널 전은정 기자 Eurojournal18@ek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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