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변야찬 Kaili Blues
비 간 Bi Gan, 프랑스 개봉 2016년 3월 23일
첸 센은 중국 구이저우 성의 카이리시의 작은 병원의 의사다. 갱단에 연루되어 감옥살이를 한 첸은 아내를 잃은 중년으로 도박만 일삼는 동생의 어린 아들 웨이웨이를 돌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웨이웨이는 사라지고 첸은 동생이 아들을 팔아버렸다고 믿는다. 동생을 추궁한 첸은 웨이웨이를 찾아 떠난다. 병원에서 함께 근무하는 노년의 여의사는 여행길의 첸에게 옛 연인에게 그가 준 카세트테잎과 셔츠를 전해 줄 것을 부탁한다. 웨이웨이를 찾아가던 첸은 당마이라는 시골에 들리게 되고 이 곳에서 불가사의한 경험을 하게 된다.
<노변야찬>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된 시간을 경험하는 여행이다. 영화 도입부, 카메라는 밭은 기침소리가 들리는 어두운 공간을 지나 첸에게 약 처방을 하는 노의사에게로 이동한다. 블랙아웃이 되었던 마을에 다시 불이 들어오지만 낡은 병원 내부는 밤이라는 시간과 맞물려 여전히 어두침침하다. 노의사가 건네는 예전엔 괜찮았는데 어떻게 갑자기 기침을 하게 되었냐는 영화의 첫 대사에서부터 과거의 시간을 부려지고 현재로 스며든다. 이에 ‘오직 죽은 자만이 아프지 않는다’라는 첸의 대답에서 이 영화가 ‘시간 ‘이라는 화두를 던진다는 것이 명백해진다. 화려한 미사여구를 동원하지 않은 느린 카메라 움직임과 절제된 대사와 인물 묘사는 영화의 도입부에서부터 빛을 발한다.
조용하고 유려하게 흐르는 듯한 카메라의 움직임은 시간의 흐름에 맡겨져 있다. 지루해 보이는 첸의 일상은 끊임없이 기억을 현재로 불러내고 지금 여기에 서 있지만 공허한 그의 시선은 과거와 미래를 응시하는 듯하다. 첸의 주위를 둘러싼 인물들(조카, 노의사, 동생 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니, 아내...)과의 일상은 현실과 꿈의 경계가 모호한, 중첩된 시간으로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다. 노의사와 첸, 조카라는 인물로 암시되는 세 세대의 선택은 우연은 아닐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가 접목 된 시간성은 영화 곳곳에서 발견된다. 옛 연인을 상기시키는 물건과 사진, 과거에서 자유롭지 못한 첸의 모습, 그리고 벽에 해시계를 그리며 자신의 시간을 만들어가는 웨이웨이의 모습은 의미심장하다. 과거는 지속적이고 노골적으로 현실에 끼어든다.
사라진 조카를 찾고 임종을 맞이하는 노의사의 옛 연인에게 추억의 물건을 전하기 위해 떠나는 현재의 첸은 미래와 과거가 응집된 하나의 고리가 되고 서로 다른 시간의 지층을 교차한다. 여행의 동기는 단순하지만 필연이 되게 만드는 시나리오는 비 간감독의 연출과 더불어 더욱 힘을 받는다.
노의사의 부탁은 첸을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당마이라는 작은 시골로 옮겨놓는다. 당마이에서의 여정은 웨이웨이를 찾아가는 첸이 기차 안에서 꾸는 꿈일 수도 있지만 그 구분이 특별히 중요하지는 않다. <노변야찬>은 부지불식간에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고 있었다. 40여분에 달하는 쁠랑 세캉스(기술적 편집을 배제하고 하나의 쇼트로 촬영하는)로 담아낸 당마이 장면은 시공간을 비껴나간 듯한 주술과도 같은 신비로운 체험을 담당한다. 첸을 따르는 카메라는 순간 순간 그를 떠나 마치 유령처럼 마을을 배회가 돌아오는 또 하나의 인물이기도 하다.
당마이의 쁠랑 세캉스는 우리를 새로운 시공간으로 들어서게 만든다. 한 달음으로 찍은 쁠랑세캉스에 다층의 시간과 공간을 중첩시킨 감독의 연출에 도취된다. 첸이 마주한 이 시공간은 과거와 현재가 겹치고(이 마을 미용사는 첸의 죽은 아내와도 같다는 환상을 불러온다) 다시 현재는 미래를 불러온다(첸의 길잡이를 하는 청년의 이름은 웨이웨이다). 당마이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응축되어 있는 영원한 공간인 듯하다(노의사의 옛 연인은 중국 원주민 중의 하나인 먀오족이다). <노변야찬>이 보여주는 첸의 여정은 과거의 기억이 지금이라는 시간에 잔류하고 미래의 시간은 현재를 거쳐가는 시간의 유기적 연대기다.
개인적으로 영화감독의 첫 작품을 즐긴다. 그 뒤를 잇는 작품들 구석구석 숨어있는 데뷔작의 흔적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들의 첫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참신하고 과감한 시도가 더욱 흥미롭다. 스물 여섯 살의 젊은 비 간감독의 첫 장편영화 <노변야찬>도 이런 영화 중의 하나다.
<사진: 알로씨네>
프랑스 유로저널 전은정 기자 Eurojournal18@eknews.net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