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긴 마라톤, 메도크 마라톤’
세상에서 가장 긴 마라톤이 무엇일까? 100km를 달리는 울트라 마라톤? 아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매년 9월 프랑스 보르도의 메도크 마을에서 열리는 '메도크 마라톤(Marathon du Médoc)'이다. 거리는 일반 마라톤과 똑같은 42.195km이지만 와인을 마시며 달린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간판에 세상에서 가장 긴 마라톤이라고 쓰여있다. 술이 알딸딸(?)하게 올라서 지그재그(Zigzag)로 뛰다 보면…… 세상에서 가장 '길어질 수도 있는' 마라톤이다.
올해로 32회째를 맞은 이 마라톤은 샤토 라피트 로췰드나 샤토 라투르 등 보르도 최고 명성의 샤토와 잘 익은 포도가 탐스럽게 열린 포도밭을 지나는 코스로 되어있다. 수확을 앞둔 포도밭 사이를 달리는 기분은 이루 설명하기 어렵다. 우리에게는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에서 주인공 '시즈쿠'가 참가 신청도 하지 않고 갑자기 달리는 것으로 소개되어 유명하다. 하지만 신청하고 '입금' 확인되지 않은 사람은 레이스에 참가할 수 없다. 와인은 당연히 못 마신다.
출발 총성과 함께 와인을 마시러 돌진하는 참가자들.
이 마라톤에 대해 이야기하면 반응은 두 가지다. '우와! 진짜 재미있겠다'와 '와인을 마시며 마라톤을? 말도 안 돼!'라는 반응이다. 하지만 사실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비롯한 대부분의 참가자는 와인을 마시며 풀코스를 완주한다. 비록 6시간 동안 걸어서 올지라도. 주최측에서는 참가 신청 시 마라톤에 참가해도 문제가 없다는 의사의 소견서를 반드시 첨부하도록 한다. 유럽에서는 주치의 제도가 있어서 주치의에게 소견서를 받으면 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가는 병원에다가 소견서를 달라고 하면 대부분 거절한다. 평소에 건강검진 받는 '단골 병원'이 있어야 한다.
물론 반드시 완주할 필요는 없다. 단지 축제에 참여하는 것 만으로도 흥겨우니까. 그리고 마라톤 축제답게 매년 주제가 주어지면 참가자들은 그 주제에 맞는 코스프레를 준비한다. 물론 의무는 아니지만 축제를 더 재미있게 즐기는 방법인 것은 확실하다. 이번 32회의 주제는 '설화와 전설'이다. 올해는 어떤 복장이 나타날지 궁금하다.
그냥 달리기만 하면 무슨 재민교?
참가자들은 힘차게 달리다가 20여 곳의 샤토에서 와인으로 에너지를 충전한다. 보르도 최고급 와인을 2km마다 한 번씩 맛볼 수 있으니 와인 애호가에게 이보다 매력적인 대회가 또 있을까? 하지만 다음 와인을 맛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계속 뛰거나 걷는 것이다. 차나 자전거를 타는 것은 금지다. 아! 세상에 쉬운 게 없다. 평소에 몸 관리를 꾸준히 해야만 이 축제와 와인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평소에 운동을 해야 한다. 더 맛있는 와인이 코앞인데 쥐가….
선두 그룹은 올림픽 시합처럼 아주 진지하다. 복장도 그냥 운동복에, 와인도 안 마시고 계속 달리기만 한다. 재미없다. 반면 중간 그룹부터는 축제다. 특히 출발 2시간 정도 지나 반환점인 20km 지점이 되면 훨씬 재미있어진다. 슬슬 다리에 힘이 풀리고, 술기운도 올라오는 모습이 역력하다. 하지만 계속 먹고 마시고, 친구들과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사진도 찍으며 축제를 즐긴다. 혼자 참여하지 말고 여럿이서 함께 하길 강력히 권한다.
보르도에서 옥토버 페스트를 즐기는 자부심 강한 독일인.
마라톤은 아침 9시 반에 출발해서 대략 오후 2~3시에 결승점에 도착한다. 그럼 점심은 어떻게 하나? 걱정하지 마라. 메도크 마라톤에 참가하면 프랑스 남서부 지방 특산 요리를 정통 코스로 맛볼 수 있다. 프랑스, 그것도 풍성한 식탁으로 유명한 보르도에서 축제에 참가한 사람을 굶길 수는 없지 않나?
마라톤 코스의 중간을 지나면 유럽 최대 굴 산지인 아르카숑산 굴이 화이트 와인과 함께 놓인 스탠드가 나타난다. 전식으로 굴을 먹고 조금 더 뛰어가서 본식을 먹자. 프랑스에서 소고기로 가장 유명한 지역 중 하나인 바자(Bazas)산 소고기 등심구이를 준비해 놨다. 물론 배부르게 먹을 양은 아니지만, 보르도의 레드 와인과 찰떡궁합이다. 40km 구간에 이르러 치즈도 한 조각 먹자. 그리고 더운 날씨에 안성맞춤인 아이스크림 디저트로 마무리 한다. 마라톤을 해도 전식, 본식, 치즈, 후식 그리고 와인은 기본이다. 각종 비스킷과 과일은 지천으로 깔렸다. 이곳은 미식의 도시 프랑스 보르도다.
마라톤이라기보다는 6시간짜리 프랑스 코스 요리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배고플 틈이 없다.
매년 약 5만 명의 참가 신청자 중 1만 명만 참가할 수 있었다. 필자는 보르도에 거주하던2014년에 신청을 했다가 참가 못 한 4만여 명 중 한 명이었는데, 올해에는 다행이 신청할 수 있었다. 85유로라는 적지 않은 참가비와 프랑스 전역, 유럽, 심지어 아시아에서 와야 하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경쟁률이 치열하다. 어떤 이는 '무슨 돈을 10만 원 넘게 주고 힘들게 고생하려 하나? 그 돈으로 와인을 사 마시겠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장을 본 사람이라면 와인을 좋아하지 않아도, 달리기를 싫어해도 한 번 같이 달려보고 싶을 것이다. 필자가 올해 많은 노력 끝에 참가하게 된 것도 취재를 위해 프레스로 참가했었을 때 당장이라도 카메라와 수첩을 집어 던지고 그들과 함께 달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었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더 많은 한국인이 이 축제에 참여하길 기대해 본다.
* 본 칼럼은 2014년 9월 매일경제프리미엄에 기고했던 칼럼을 수정해서 재기고함을 밝힙니다.
프랑스 유로저널 박우리나라 기자 eurojournal29@ek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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