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 Dernier train pour Busan
프랑스 개봉 2016년 8월 17일, 연상호 감독
"희생과 공생의 아름다운 이야기"
영화 '부산행'을 보았다. 기자가 지난 리뷰에서 한국 영화들이 폭력, 좀비 등을 영화의 주요 장치로 사용해 해외의 주목을 받는 것이 우려된다고 했던 것은 "뭣이 중헌지도 모르고"했던 말일지 모르겠다. 부산행은 칸에서 주목받고 2016년 첫 천만영화로 등극했다는 화제성을 떠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너무나 매력적으로 또한 가슴 아프게 말하고 있었다.
석우(공유)는 일에 매달려 사는 펀드매니저다. 그에게는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와 자신의 학예회 한 번 못 오는 바쁜 아빠를 원망하는 어린 딸 수안(김수안)이 있다. 수안의 생일날, 엄마가 보고 싶다는 수안의 바램으로 이들은 엄마가 살고 있는 부산으로 향한다. KTX 열차 안에는 심경이 복잡한 이 부녀와 함께 출산을 앞둔 젊은 부부, 자매 할머니들, 원정경기로 들뜬 고교 야구단, 모든 일에 사사건건 참견하는 중견기업 간부, 무임승차를 한 듯한 노숙자 등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타고 있다. 그런데 이 열차 안에 이상한 사람도 타고 있다. 무슨 말인가를 주문같이 외우며 몸이 비틀리는 한 여성. 그 여성은 곧 끔찍한 모습의 좀비가 되어 한 여성 승무원을 처참히 공격한다. 전국에서 진행되는 폭력 시위라며 좀비들이 군대와 대치하며 사람을 죽이는 모습이 가득한 갑작스런 뉴스로 놀란 승객들 앞에 여성 승무원 또한 좀비가 되어 나타난다. KTX 열차는 좀비들의 무차별적인 살상으로 생지옥으로 변하고 석우와 수안도 다른 생존자들과 함께 숨박히는 추격전을 벌이게 되는데….
영화는 좀비가 '감염'된다고 말하며 몇 분 전의 가족, 친구가 좀비가 되어 다른 누군가를 즉시 처절하게 공격하는 방식으로 순식간에 양산되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영화 속 좀비들은 잔혹함으로 공포를 주기보다는 빠른 공격력과 집단성으로 생존자와 주인공들을 뒤쫓는 모습으로 관객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KTX 열차는 대전에서 운행을 중단하고 승객들은 대전으로 들어가야 한다. 석우는 군 관계자인 지인에게 연락해 대전에 가면 승객들이 격리될 것을 파악하고 자신과 딸의 안전을 별도로 부탁한다. 다른 승객들을 따돌리고 군부대로 향하는 석우에게 수안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야한다고 말하지만 석우는 이를 무시한다. 그러나 이미 군인들마저 좀비가 된 상황. 수안은 상화(마동석)와 성경(정유미) 부부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석우 또한 다른 사람들로 인해 살아남게 된다.
영화 속 캐릭터들은 기자의 향수를 자극했다. 한국에서 국민 귀요미로 불리는 마동석이 연기하는 상화는 어릴 적 동네 문방구 아저씨 같은 모습이다. 건들건들해 보이지만 내가 동네 불량배한테 괴롭힘이라도 당할라치면 "야 이놈아"하며 쫓아내줄 것 같은 듬직한 아저씨. 임신한 새댁 아줌마 선경 또한 생명의 위기 속에서도 어린 수안의 손을 잡고 뛰는 모습이 낯설지가 않다. 생명의 위기까지는 아니었겠지만 내 기억 속 이웃 새댁 아줌마는 우리 집안의 대소사에 함께 해줬을 것이다.
다른 이들의 예상치 않은 도움으로 수안과 함께 위기를 모면한 석우도 이후 변하기 시작한다. 결정적인 위험의 순간에도 그는 상화 부부와 노숙자 등 다른 이들과 함께 뛰고 그들을 살리기 위해 애쓴다. 어쩌면 그것은 그의 마음이 변했다기 보다 명석한 그가 순식간에 늘어나는 좀비 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 감지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통해 그가 인간화되어 가는 모습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사실 기자는 이기적인 석우가 딸 수안이 있는 열차 칸으로 가기 위해 수많은 좀비 떼를 향해 주저함 없이 나서는 중반부의 장면부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자식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것은 우리 한국인의 주요 정서이다. 자식들의 교육, 보다 나은 삶을 위해 개미처럼 일만 하며 자신의 인생을 포기했던 우리 부모 세대와 함께 우리 세대 또한 자식이 어디 아프기라도 하면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며 눈물 짓는다. 그런 희생은 머리로 이해되기 전에 가슴에 먼저 다가온다. 그런데 이런 희생이 내 자식, 내 가족만을 위한 희생일 때 우리는 처절한 좀비 떼의 공격 속에 살아남을 수 없음을 영화는 말하고 있다.
기자의 한 지인은 교육열이 뜨거운 분당에서도 아이들이 우수한 성적과 다양한 활동을 잘해내 주변의 선망을 받고 있다. 그런 지인이 하루는 '다같이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하소연을 하는 것이다. 과열 경쟁으로 학부모가 초등학교 전교 회장, 부회장 선거에 개입하고 과도한 학원비 부담에 고소득자라도 몇 십만 원 더 벌려고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다른 좀비의 공격으로 인간이 살아 있지도, 죽지도 않은 살인귀로 변해가는 모습은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인 듯하다. 치열한 경쟁과 거대 자본이 장악해 가는 현대 사회에서 내 아이만 살리겠다고 해서 내 아이가 잘 살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영화는 프랑스와 영국, 해외 주요언론이 극찬한 매력적인 방식으로 잘 전달하고 있다.
기회가 되면 영화를 꼭 보시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영화가 주는 메시지를 우리가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 고민해 보자고 말하고 싶다.
<사진: 알로씨네>
프랑스 유로저널 석부리 기자 Eurojournal10@eknew.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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