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없는 경제 실현되면 저성장 늪 벗어날 수 있어
금융위기 이후 유례없는 초장기 침체가 지속되고 저성장·저물가·저금리 환경이 고착되어 가는 가운데 ‘현금 없는 경제’가 저성장을 벗어나는 새로운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게다가 ‘현금 없는 경제’가 이루어지면 한국처럼 자영업이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경우 세수를 확보할 수 있고, 지하경제를 차단하며 부정부패를 막을 수도 있다는 긍정적인 분석이 제기된다.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은 ‘현금 없는 경제: 의미와 가능성’ 보고서를 통해 최근 스웨덴, 덴마크 등 핀테크 산업이 앞선 주요 선진국들이 ‘현금 없는 경제’로의 이행을 서두르고 있다고 밝히면서, 현금 거래에 따른 비효율성만 없애도 매년 경제성장률을 1.2% 높이는 효과를 전망했다.
보고서에 의하면, 미국에서 현금 사용으로 인해 정부, 소비자, 기업들이 부담하게 되는 비용만 한 해 2000억달러(2012년 기준), 미국 GDP의 1.2%에 해당한다. 여기에는 ATM 사용료 및 관리비용, 소매점 현금 도난, 현금 운반 및 인출에 소요되는 시간 등이 포함돼 있다. 현금 사용으로 인한 비효율성만 줄여도 매년 경제가 그 만큼 더 성장하는 셈이라고 보고서는 밝혔다.
뿐만 아니라 통화정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현금 없는 경제’로의 이행이 필요하다고 보고서는 강조했다. 저물가가 지속되고 디플레이션 위험이 증가하면 사람들은 소비를 미루고 현금을 집안에 보관하려 한다. 이렇게 되면 돈을 맡기는 사람이 없어 뱅킹시스템 전체가 붕괴될 수 있고 소비는 더욱 줄어 디플레이션이 다시 더 커지는 악순환에 빠져든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은행은 마이너스 명목금리를 일시적으로라도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명목금리가 0 아래로 내려가면 지폐가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현금을 은행 대신 집안금고에 보관할 수 있기 때문에 명목금리를 0 아래로 낮출 수 없다.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양적 완화와 같은 비전통적 통화정책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이유다. 하지만 유럽과 일본 사례에서 보듯 양적 완화의 정책적 효과가 또렷한 것도 아니다.
김성훈 한경연 부연구위원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관련, “현금 없는 사회를 가정할 때, 일본처럼 20년 동안 양적 완화에 매달리는 것보다 1년 동안 마이너스 3~4% 수준의 금리정책을 사용하는 것이 일본 경제에 더 큰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한국도 경제활동인구 감소하기 시작하는 내년부터 디플레이션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다.
김 부연구위원은 “우리도 본격적인 저성장·저물가 시대에 대비해 효과적인 거시경제정책이 작동할 수 있는 현금 없는 사회로 서둘러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화폐가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러우며 핀테크 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잘못된 규제들이 현금 없는 사회로 가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적인 부분은 충분히 뒷받침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은 세계 정보통신기술 발전지수(IDI) 1위 국가다. 한국보다 순위가 낮은 덴마크와 스웨덴이 현금 없는 사회로의 변화를 선도할 수 있게 된 것은, 핀테크 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규제들이 없기 때문이다.
김 부연구위원은 “이제 와서 한국이 저출산·저성장·저물가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렇지만 그 고통을 줄이는 방법은 있어 보인다”고 밝혔다.
한국 유로저널 김태동 기자
eurojournal13@ek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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