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bert Motherwell – Abstract Expressionism
15 Sep – 26 Nov / Bernard Jacobson Gallery
추상표현주의가 나타난 시기는 전 세계적으로 전쟁과 경제적 위기 등으로 혼란했던 시기였다. 제 1,2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으로 전 세계의 가치관이 뒤바뀌었다.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의 결과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는데, 전쟁의 참혹함에 과학과 이성적 논리에 대한 절대적 믿음은 깨어지고 인간은 그들의 삶이 계획되고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쟁의 후유증은 과학문명과 이성을 중심으로 한 사고에 대한 회의를 가져온 것이다. 이로 인해 사회전반에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보다 우연적이고 본능적이며 자유로운 사고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고 이 현상은 미술계에서도 나타났다.
1920년대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에 유럽에서 일어난 문학 및 시각예술 운동인 다다이즘은 기존의 정형화된 예술의 파괴를 주장했고 다다이즘을 이어 나타난 초현실주의는 이성의 지배를 거부하고 비합리적인 의식 아래의 세계를 표현하고자 했다. 그래서 화면의 구성 또한 비조형적이고 우연적인 자유로운 표현을 중요시했는데 이는 추상표현주의로 연결된다.
[Composition X, 1939]
추상표현주의는 칸딘스키의 표현적 추상에서 유래했지만 1940년대에 <뉴요커>의 기자 로버트 코츠(Robert Coates)가 이 용어를 모티머브랜트 갤러리에서 열린 호프만(Hans Hofmann)의 전시 논평을 쓰면서 사용하였고, 이후 미국의 젊은 작가들, 특히 폴록과 드 쿠닝의 작품에 사용함으로써 일반화되었다. 추상표현주의는 공식화된 명침이지만 제각기 작가마다 기법과 표현의 특징 등 모든 면에서 매우 다양한 회화적 양식들로 구성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의 작품들은 눈에 보이는 형태들을 묘사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추상적이다. 자유롭고 자발적이며 개인의 감정 표현 등을 강조하면서 매우 자유로운 기법과 제작 방법을 사용한다. 그들은 자동기술법(Automatism), 특히 드리핑(dripping)기법 등을 사용하며 정신적 사고의 표출로 승화시켰다. 추상표현주의의 대표적인 작가인 잭슨 폴록과 같이 캔버스에 직접 물감을 뿌리거나 쏟아 부어 얻어진 우연한 기법을 통해 유연하고 역동적인 느낌을 주는 액션페인팅과 평면의 넓은 색 공간으로 나타내는 마크 로드코의 작품들을 통해 추상표현주의의 자유로운 화법을 확인할 수 있다.
[잭슨 폴록의 작품 제작 방식]
추상표현주의는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는데 유럽의 추상표현주의는 '앵포르멜'이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인간성 회복과 표현의 자유로움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시작되었으나, 정형화된 추상에 대한 반발로 일어났으며 단체 행동을 통해 자신들의 이름을 정의하고 구축하였다는 점에서 하나의 그룹으로 묶이기를 거부한 미국 작가들과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로버트 마더웰
[California, 1959, Oil and charcoal on canvas, 177.2 x 227.3 cm]
마더웰은 잭슨 폴록과 더불어 추상표현주의의 대표적인 작가로 꼽힌다. 1915년 미국 태생인 로버트 마더웰은 풍요로운 햇살과 바다, 거대한 자연을 갖춘 캘리포니아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그만의 감성언어를 새기게 되었다. 붉게 노을 진 석양, 에메랄드 빛 바다와 빛나는 모래알, 솜사탕 같은 구름과 화 창한 날씨 등 마더웰의 가슴속에 새겨둔 자연의 기억들은 감성적이고 낭만적이다. 이러한 그 만의 감성적 언어는 초현실주의의 오토마티즘과 추상표현주의를 토대로 화폭에 담아 낼 정신적 기둥이 된 것이다. 마더웰의 주변 환경과 상황은 어려운 형편으로 생계형 작업을 하던 대부분의 작가들과는 달랐다. 유복한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여유로운 생활과 학문적 소양을 쌓을 수 있지만 집안의 반 대로 미술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부친의 뜻대로 스탠포드 대학(Stanford University)에 입학하였지만 1935년 유럽여행이 계기가 되어 하버드 대학(Harvard University)의 'Art & Science' 대학원에 들어가 철학과 미학을 공부하게 된다. 마더웰은 논문으로서 드라크로와(Delacroix)의 일기를 다루며 프랑스에서 회화작업을 하게 됨으로써 미술세계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또한 미술계에 입문할 수 있었던 가장 큰 계기는 1940년 콜롬비아 대학에서 메이어 샤피로(Meyer Schapiro) 교수와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유명한 미술가였던 사피로 교수는 1940년대 프랑스 의 쇠퇴 후 뉴욕에 밀집해 있던 초현실주의 망명자에게 그를 소개했고, 마타, 바 지오토 등과 빈번한 접촉을 통해 초현실주의를 접한 마더웰은 유럽의 모더니즘에 심취하게 되었다.
[Lyric Suite, 1965, Ink on rice paper, 27.9 x 22.9 cm]
마더웰은 초현실주의의 오토마티즘과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미국으로 이주해온 작가들의 유럽적 감성에 큰 관심을 두었다. 이를 토대로 미국적 정서가 결합되어 탄생한 마더웰의 작품관은 추상표현주의의 첫 발판에 자리하게 되었다. 추상표현 주의는 1945년부터 1950년대를 아울러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파생 된 미술경향이 다. 당시 사람들은 2차 세계대전의 폐허 속에서 인간의 차갑고 잔혹한 이성적, 과 학적 물질로부터 회의를 느끼며 인간 내면의 본능과 정신에 관심을 기울이고자 했다. 이는 곧 미술사의 흐름에도 깊이 관여하게 되어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라는 본능적 감성의 예술을 탄생시켰다. 뉴욕 중심으로 발생됨에 따 라 유럽 미술과 달리, 경험과 전통적 기반을 두지 못하였다. 미국의 젊은 화가들 은 새로운 언어로 새로운 미술의 형태를 다시 구축해야 한다는 절박한 필요성 속 에서 추상표현주의를 탄생시켰다. 그 결과 미국 미술은 오늘날 현대미술의 발상지로서 미술세계의 큰 발판을 마련하였으며 마더웰의 작품 형성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27세라는 젊은 나이에 화단에 섰고, 1943년 페기 구겐하임의 협조로 금세 기 화랑에서의 전시와 그 다음해에 29세의 나이로 첫 개인 전을 열게 되었다. 그의 작품은 작가 내면의 본능적인 감성으로부터 분출해 내는 신체의 폭발적 행 위의 표현, 작가와 관람객 모두에게 예기치 않은 우연성과 자유로움 그리고 격렬 함을 선사한 추상표현주의를 기반으로 한다. 이에 다양한 작품의 특징적 표현을 통해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였다.
[Torino, 1975-76, Acrylic and pasted papers on canvas mounted on Masonite, 121.9 x 91.4 cm]
[The Studio, 1987, Acrylic and charcoal on canvas, 152.4 x 182.9 cm]
버나드 제이콥스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거대 회고전은 50년대부터 80년대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을 망라하여 소개하고 있다. 버나드 제이콥스는 전세계적으로 마더웰의 중요한 작품들을 다수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마더웰의 대표적인 딜러로 꼽히는 갤러리이다. 이번 전시 또한 제이콥스의 마더웰의 대한 열정으로 꾸며져 있어 미술관 퀄리티 전시를 만들어냈다.
오지혜 유로저널칼럼니스트
- 이화여대 미술학부 졸업
- 이화여대대학원 조형예술학 전공
- 큐레이터, 아트 컨설턴트, 미술기자, 칼럼리스트로 활동 중
- 이메일 iamjeehy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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