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아리우스 Aquarius
클레베르 멘도사 필로 Kleber Mendonça Filho
브라질 해변도시 헤시피, 음악 평론가인 60대의 클라라는 안락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남편은 이미 떠나 보냈지만 장성한 세 명의 자식이 있고 친구 같은 또래의 가사 도우미도 그녀와 함께 한다. 그녀의 아파트는 레코드 음반과 가족들의 추억이 묻어 있는 물건들과 사진들로 채워져 있다. 해변가를 산책하거나 운동을 나가고 간간히 언론 인터뷰도 하며 일상을 보내던 클라라 앞에 어느 날 부동산 개발업자가 나타난다. 그는 클라라의 집을 좋은 가격에 매입할 것을 원한다. 이미 이웃들은 집을 팔고 떠난 상태다. 하지만 가족과 자신의 기억을 간직한 집을 떠날 수 없는 클라라는 그의 제안을 완강히 거부하고 아파트를 둘러싼 이들의 대립이 시작된다.
'아쿠아리우스'는 헤시피 바닷가를 바라보고 있는 아담한 이 층 건물의 다세대 주택 이름이다. 브라질의 아름다운 해변 도시의 하나로 꼽히는 헤시피는 고급 고층건물이 들어선 전형적인 현대휴양도시다. 그 사이 오롯이 서 있는 아쿠아리우스는 향수를 불러일으키지만 위태로워 보인다. 노년의 일상을 여유롭게 보내고 있는 중산층 여인 클라라의 일상에 냉혹한 자본이 헤집고 들어와 삶을 위협한다. 하지만 <아쿠아리우스>는 그 어떠한 정치적 주장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부동산 사업자와의 법적 공방이나 물리적 폭력은 없다. 반면 클라라의 일상의 리듬을 깨는 일상적인 소소한 일들이 이어진다. 평온하던 카메라가 불쑥불쑥, 갑자기 멀어지거나 알 수 없는 시선으로 인물들에게 다가갈 때 보이지 않는, 외부에서 엄습하는 불안한 기운이 드러난다. 클라라의 거실에서 내려다 보이는 해변가는 평화롭지만 밖으로 나온 카메라가 비추는 아쿠아리우스는 그 앞을 지나가는 여러 겹의 전선에 걸려 포위되어 있다.
개발과 성장 앞에 사라져가는 시간의 기억을 담고 있는 아쿠아리우스라는 공간을 지키려는 클라라의 행보는 살아남기 위한, 존재하기 위한 저항의 몸짓이 된다. 젊은 날 암으로 한 쪽 가슴을 잃었지만 힘겨운 투병생활을 이겨낸 클라라의 모습과 아쿠리우스가 겹친다. 클라라는 노년에 접어들었지만 그 아름다움은 빛이 바라지 않았고 긴 검은 머리와 강인한 표정은 브라질 여성의 도상이라 부를 만하다. 암묵적 사회의식은 클라라의 내면의 감성을 깨우는 장치로 외연화된다. 부드러운 미소 뒤에 숨겨진 부동산업자의 계략(?)은 클라라의 일상을 일그러뜨리지만 그녀의 저항은 멈출 수 없다. 고통스러웠던 암 투병을 지나 온 한 여성(유방암이라는 설정은 그래서 더욱 상징적이다)의 자신의 몸과의 투쟁은 분신과도 같은 아쿠라리우스를 지키는 또 하나의 싸움으로 이어진다. 젊은 날의 열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기억과 현재의 자신을 지키려는 클라라의 모습은 존재의 아름다움을 재현한다.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다는 그녀의 외침이 들린다. 자신을 억압하지 않고 표출되는 그녀의 원초적 욕구는 너무도 인간적이다. 지골로와 밤을 보내는 클라라의 모습이 순간은 관능적이지만 카메라는 혼자 남은 그녀를 지나치지 않는다. 부서지기 쉬운 연약한 존재의 순간이라는 시간과 마주한다.
너무나 일상적인 클라라의 삶에 맞춰진 이 영화는 사회 고발적 주제, 자본에 쓸려가는 브라질의 현재에 대한 작위적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 기저에 깔려 있는 감독의 의도는 아주 노골적이다. 대를 이은 부동산 사업으로 부를 축적해가는 친절하고 상냥한 젊은 프로모터의 얼굴은 기이하기까지 하다. 70세 생일을 맞은 친척의 생일잔치에서 시작하는 영화는 클라라의 대를 이은 가족 모습을 세심히 보여준 것에 반해 부동산 업자의 집안은 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할아버지와 미국 비지니스 학교 졸업을 자랑하는 손자는 하늘 위로 치솟는 고층건물의 모형들에 둘러싸여 있을 뿐이다. 기억과 역사의 간극이 암시된다.
두 시간 반의 영화시간 동안 우리는 곳곳에 스며 있는 위협받는 삶의 시간을 견디고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 속에 동화되어간다. '아쿠아리우스'는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뛰어넘어 과거의 시간과 여전히 역동적인 클라라의 현재 시간을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생명체가 된다. 저기에 있던 아쿠아리우스가 바로 옆으로 다가선다. 부엌 뒤쪽에 자리한 뒷마당을 내려다 보는 클라라의 시선을 카메라는 훌쩍 넘어서지 않는다. 어렵게 아래를 내려다 보는 그 시선을 카메라도 힘겹게 따라간다. 카메라는 끊임없이 공간과 동화 된 클라라의 몸을 잡고 멈추지 않고 움직인다. 유기체적인 우리네 삶을 표현하기 위한 선택일 것이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감성을 건드리는 연출은 끊임없이 순환하는 카메라 이동과 조화를 이룬다. 인식하진 못하지만 순간 순간의 흐르는 시간 속에 살고 있는 삶의 물질성을 재현한다.
<사진: 알로씨네>
프랑스 유로저널 전은정 기자 Eurojournal18@ek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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