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ll Viola – 나의 아버지를
추모하며
St Paul’s Cathedral
고통도, 죽음도, 예술도… 그 어느 것도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다.
[Martyrs (Earth, Air, Fire, Water)]
[세인트 폴 대 성당에 설치된 <Martyrs>]
영국의 Church of England’s Fabric Advisory 운영회가 무려 200만 달러에 달하는 예산을 부담하고 세인트 폴 대성당과의 커미션 작업으로 이루어진
빌 비올라의 신작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작품은 세인트 폴 대성당에
영구적으로 귀속되는 영예를 누린 작품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Martyrs (Earth,
Air, Fire, Water)>라는 제목을 가진 작품의 영상에는 화염에 휩싸인 채 의자에 앉아 꼼짝달싹
할 수 없는 남성, 한 남성이 거꾸로 매달려 세차게 쏟아지는 물을
맞는 남성. 또 거친 모래바람을 힘겹게 온 몸으로 맞는 남성. 교수형과 유사한 방식으로 손과 발이 묶인 채 매달려 있는 여성 등을 볼 수 있다. 천천히 움직이는 사람들의 물결, 화면 속의 슬로우 모션을 통해 그는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타인과 무수히 부딪치며 얻은 상처와 그로 인한 슬픔에 대해 말한다. 과거 만물의 근원이라 여겼던 물·불·흙·바람 4대 원소, 자연의 강력한 힘 앞에서 인간은 무력
하지만 끝내 감내해낸다. 마치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저미듯이
우러나오는 비애를 통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라는 의미를 전달하는 듯 하다. 그것은 어쩌면 죽음 앞에 선 인간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반성과도 같은 것이다. 빌 비올라는 이 작품에 대해 “순교자라는 말의 뿌리는 ‘증인’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다. 오늘날 대중매체 덕분에
우리는 종종 타인의 고통을 보는 증인이 되지만, 정작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 죽음을 무릅쓰고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순교자들을
통해 신념을 위해 고통을 견딜 수 있는 게 인간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결국 고통이 인간을 구원한다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관람객은 이를 통해 고통은 삶에서 반드시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이며, 죽음을 극복하면서 자신의 가치나 신념을 지키는 모습, 인간의 인내력과 희생을 그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비디오아트의 태동기인 1970년대, 미술 대학에서 붓 대신 비디오 카메라를 집어든 빌 비올라는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정신적,
심리적 의식의 흐름을 탐구해왔다. 미술을 공부하면서 더 이상 교회에 가지 않았다는 그는 특정 종교를 믿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한때 일본에 머물며 불교에 심취하기도 했고, 달라이 라마를 만나러 인도를 방문하는 등 실제 삶에서도 존재에 대한 물음을 계속해
왔다. 그리고 이렇게 탄생한 시적인 내러티브의 영상 설치미술 작품들은
물질을 좇느라 내면의 통로를 잃어버린 많은 이들에게 각성과 치유, 정화를 경험하게 하고 있다.
[The Passing,
1980년 작]
[Three Womens,
2008년 작]
빌 비올라는 영상이라는 매체에 죽음이라는 주제를 덧입혀 매우 강력한 숭고를 다루고 있다. 그의 작품은 자신의 경험에 의거하는데 한 해에 어머니의 죽음과 아들의 출생을 동시에
경험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탄생과 죽음의 대비를 작품의 주요 소재로 다루어왔다. 그는 갓 태어난 아들 모습에서 어머니의 죽음을 가장 가깝게 느꼈으며, 이 때 느낀 감정은 자연스럽게 그의 관심에서 비롯된 윤희사상을 통해 작품으로 옮겨졌다.
그는 실제로 어머니와 아들의 영상을 직접적으로 사용한 작품 <The
Passing> <하늘과 땅>등을 제작하며 자신이 경험하고 느낀 죽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관람객이 죽음에 직면하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것을 이해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는 비디오라는 매체의 특성인 시간성
또한 ‘죽음’이라는 매커니즘 속에서 작동하도록 했다. 그는 비디오
속에서 지속되는 시간의 흐름을 인간 삶의 흐름과 연결하여 생각했다. 즉 비디오의 꺼짐과 켜짐은 인간의 탄생과 죽음이며, 비디오의 반복적인 재생구조로 작품 속의 인물은 계속 부활하고 죽음을 맞게 된다. 매체의 시간을 통해 ‘죽음’이 삶의 한 부분이자 새 생명을 얻기 위해 정화되는 순간이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로써 빌 비올라가 나타내고자 했던 순환성 즉 ‘윤회’의 개념이 또렷이 드러나는 것이다. 또한 빌 비올라는
그의 작품을 비교적 닫힌 공간을 최대한 어둡게 만든 후 그와 대비되는 선명한 영상을 보여주는데, 이는 그 공간 속의 관람객을 죽음이라는 주제 속으로 몰입하게 한다. 이 공간 속에서 관람객은 작품의 일부가 되어 그가 보여주는 죽음을 통한 감정들에 압도되고 자신의 기억과 경험을 환기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빌 비올라의 <순교자>작품 앞에선 필자 또한 나의 아버지의 죽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에게는 너무나 각별했던, 나의 아버지가 불의의 사고로 한 순간에 가족을 떠난 것은 불과 6개월 전의 일이다. 그 날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와 막내딸이 10개월 만에 아버지를 만나러 한국을 방문한지
불과 4일이 지난 날이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어버이날을 맞아 그의 어머니를 찾아 뵙기로 한 바로 전날이었다. 이처럼 아버지의 죽음은 그 어떤 부분도 결코 아름답거나 숭고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부분은 잔인하기 그지 없었다. 그것은 빌 비올라의 작품과는 닮은 곳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처참한 사건일 뿐이었다. 연락을 받고 급하게 달려간 응급실에서 필자는 머릿속에서 지울래야 지울 수 없는 장면을
마주해야만 했다. 평생 아픈 모습조차 가족들에게 보인 적이 없으셨던
나의 아버지는 응급처치를 위해 이리저리 찢겨진 옷가지들 사이로 알몸을 드러내신 채 흘러내린 피로 흥건한 침상에 누워계셨다. 당시 그 피는 마치 예수님이 나병환자를 씻겼던 나사렛 강물이라고 믿고 싶을 만큼 흘러
넘치고 있었다. 의식불명인 아버지와 그런 아빠에게 매달린 우리
가족들은 꼬박 3박 4일을 함께 죽음의 문턱에서 절규했다.
빌 비올라의 작품을 통해 다시 확인한 고통으로 범벅이 된 인간의 삶과 죽음은 참으로 잔인했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기에 비현실적이기만 했던 나의 아버지 죽음은 아이러니하게도
빌 비올라의 영상을 통해 현실로 다가왔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
제대로 슬픔을 표현 할 수도, 위로 받을 수도 없었던 지난 6개월의 시간이 그대로 내 앞에 쏟아져 내렸다. 나는 그 작품을 통해 앞으로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충분한 위로의 증거를 발견했다. 물론 나의 아버지는 떠났고, 우리는 남았다. 그러나 나의 아버지 육신의 일부는
또 누군가의 삶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것이 그가 삶의 마지막에
겪어야 했던 고통이 정화되는 장치이며, 새로운 탄생으로 이어졌으리라
믿으며 나의 아버지에 대한 추모와 함께 이 글을 마친다.
회를 거듭할수록 오지혜의 런던 아트 나우에 보내주신 많은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내년에 새로운 기획으로 독자분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 잠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내년부터는 런던의 미술관, 박물관, 상업갤러리의 디렉터들과 예술가들을 직접 만나 더욱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Meet
the Art People in London”으로 다시 만나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지혜 유로저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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