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 Sully>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 프랑스 개봉 2016년 11월 30일
2009년 1월 15일, 승객과 승무원 155명을 태우고 뉴욕 라구아디아 공항을 출발한 US에어웨이스 1549편은 이륙 직후 새떼와의 충돌로 두 엔진이 멈추게 된다. 설리기장은 공항으로 회항 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허드슨강에 비행기를 착수시킨다. 구조작업은 신속하게 진행되고 모든 사람은 무사하다. 하지만 회사의 관리감독측은 공항으로 비행기를 돌렸어도 되는 상황에서 위험한 선택을 했을 수도 있다는 의혹을 재기한다.
<설리>는 참사로 이어질 수 있었던 비행기사고에서 전원 무사구출 된 ‘허드슨강의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실제 사건을 다룬 영화다. 이미 과정과 결론을 알고 있는 이야기를 영화로 옮긴다는 것은 어쩌면 감독에게는 하나의 모험일 수도 있다. ‘사고’를 다루는 대부분의 서사들은 결말을 알 수 없는 반전과 함께 인물들의 갈등구조가 긴장감을 유발하며 진행된다. 하지만 우리는 이 불시착한 비행기사고에서 단 한 명의 인명피해도 없었고 설리기장은 당국의 의혹을 풀고 시대의 영웅으로 남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기서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설리기장이라는 인물을 통해 기억과 사실의 점진적 전개라는 방법을 택한다. 재난영화의 특기인 이미지의 현란함과 아슬아슬한 갈등 충돌의 연속보다는 설리라는 개인의 심리상태와 기억의 조각을 확장해 간다. 실화를 재현하기보다는 이 후 설리의 판단에 대한 진상조사 시간 속에서 일련의 경위를 조금씩 증명해 나간다.
<설리>는 지난한 상황설명 없이 시작과 함께 즉시 위험의 현장으로 들어간다. 비행기의 굉음이 울리고 뉴욕의 마천루 속으로 들어오는 비행기는 고층빌딩과 충돌하고 폭파한다.
설리의 꿈이다. 악몽에서 깬 설리는 어수선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조깅에 나선다. 횡단보도에서 급하게 지나가던 택시와 부딪힐 뻔 한다. 영화 도입부부터 위험의 순간들이 설리를 위협하고 경직된 그의 표정이 위태롭다. 참사를 막기위한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믿지만 인간이 가진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이 설리의 반복되는 악몽과 환각에서 읽힌다. 과도한 설명은 배제하고 사태의 흐름과 함께 빠르고 간결하게 진행된다.
설리의 악몽, 미디어 보도 그리고 기억의 조각들이 혼재하는 초반부를 지나면 영화는 플래시 백을 통해 전형적인 제 3자의 입장에서의 사고 당시 현장을 재현한다. 그리고 마지막 조사단 청문회에서 블랙박스를 통해 조각들이 완성체를 이룬다. 이미 결론이 난 ‘사고’ 상황에 대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다각도의 이미지를 제시하는 영민한 편집의 효과는 단순할 수 있는 이야기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영화는 시스템과 메뉴얼을 강조하는 조사단과 기계적 가설의 허점을 찌른 설리의 갈등에 특별한 극적 장치를 부여한진 않는다. 이 보다는 상황과 이에 대한 설리의 기억을 해체하고 재조합 하는 과정 속에서 한 개인의 도덕적 갈등과 혼란스러움이 부각된다. 소신 강한 경륜의 비행사가 일생일대의 사고를 겪으면서 느끼는 실존의 흔들림을 극복하는 과정이라 볼 수도 있다. 간결한 미장센과 사고의 순간보다는 그 이후 설리가 겪은 충격과 사고관리자들과의 깔끔한(!) 공방 속에서도 긴장감과 속도를 놓지 않는 감독의 연출력은 흥미롭다. 새로운 형태의 재난영화다.
하지만 여기서 눈길이 가는 부분이 있다. 영화는 언뜻 보아 평범한 미국의 중산층(퇴직이 가까이 있으며 경제적 곤란함에 처해 있는 그의 상황을 잠시 언급하기도 한다) 가장인 설리라는 인물을 상정하고 있지만 그는 우연한 위기에 부딪힌 일상의 범인이 아니다. 그의 개인적 과거로 돌아가는 두 번의 회상장면은 그가 얼마나 비행에 특출한 재능을 지녔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조사청문회에서도 언급되는 ‘설리’라는 상수가 피해를 막은 유일한 이유다. 그 동안 이스트우드감독이 견지해온 미국이 그리는 이상적 ‘영웅’의 또 다른 모습이다. 어느 영웅에게나 고난은 닥친다. 설리도 다르지 않다. 영화 초반, 사고의 충격에 벗어나지 못한 설리는 뿌연 연기가 찬 욕실에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로우앵글쇼트(카메라가 피사체보다 낮은 상태)로 잡은 설리의 모습은, 더군다나 상반신을 드러내고 앉아 있는 그는 영락없는 신화 속에 그려지는 고뇌하는 영웅 형상이다. <설리>를 함축한 장면이다.
헐리우드 재난영화의 스펙타클(수 많은 죽음과 부서져 나가는 건물들은 눈요기로 전락했다)을 벗어난 형태를 취하고는 있지만 끊임없이 영웅을 만들어내는 이스트우드의 미국 신화시리즈는 계속된다. 사고 후 혼란스러운 와중에서도 설리가 입은 기장 유니폼과 이를 환기시키는 상황들에서 이스트우드의, 비록 전면이 서 있지는 않지만, 이념이 드러난다.
미국을 대표하는 배우 중 하나인 톰 행크스를 주인공으로 선택한 이스트드감독의 꾀가 노골적이다. 이스트우드감독의 영화미학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그의 진화하는 미국 보수주의의 영웅들이 불편한 지점이다.
물론, 베테랑 기장이 위험에 대처하는 지혜로운 순간 판단과 사고 수습행위는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강물에 잠기고 있는 비행기 안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모두 탈출했는지를 살피는 그를 영웅이라 부르는 것을 그 누구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사진 알로씨네
프랑스 유로저널 전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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