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총장, 내우외환에 회의감과 실망감 확산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차기 대선 완주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지만, ‘신드롬’의 견인차였던 지지율이 오히려 하락하고 있는 데다가 대내외적으로 연일 악재가 터지면서 정치권에선 결국 중도하차할 것이란 전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반 전 총장은 귀국 첫날 공항철도 승차권을 뽑기 위해 만 원권 두 장을 한꺼번에 무인 발매기에 넣는 모습부터 시작되어 다음날 국립현충원을 참배하는 과정에선 미리 준비한 쪽지를 참고해 방명록을 쓰는 모습, 그리고 충북 음성 꽃동네를 방문해 누워있는 노인에게 죽을 먹이는 모습 등등으로 매일 구설수에 올랐다.
반 전 총장 친동생인 반기상 씨는 아들인 반주현 씨와 함께 1월 10일 미국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에 뇌물 공여 혐의로 기소되면서 미국 검찰이 한국 정부에 체포요청을 한 상태이며, 조카 반 씨는 장기간 병역기피자로 지명수배가 돼 있는 상태라는 사실도 드러나는 등 내우외환으로 하루도 잠잠할 날이 없다.
또한,반 전 총장의 정치 내공 부족으로 컨벤션효과는커녕 지지도가 더 하락한 데다 외교관 그룹(김숙·오준 전 유엔 대사) 내 불화설과 친이(친이명박계)계 그룹과의 갈등설이 끊이지 않자, ‘반기문 중도 포기설’이 확산됐다. 이는 ‘문재인 vs 안철수’ 양자구도 만들기를 위한 국민의당의 ‘전술적 지지대’지만, 반 전 총장의 잇따른 자책골로 ‘대망론’에 경고등이 켜진 것만은 분명했다. 친이계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선거도 잘 모르는 이들이 앉아서 일을 망친다”고 비판할 정도다.
이런 가운데 공직선거법 제16조(피선거권)에의해 반 전 총장의 대통령 선거 출마 자격, 즉 대통령 피선거권 문제가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공직선거법 제16조는 “선거일 현재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40세 이상의 국민은 대통령 피선거권이 있다. 이 경우 공무로 외국에 파견된 기간과 국내에 주소를 두고 일정기간 외국에 체류한 기간은 국내 거주기간으로 본다”고 돼 있다.
이에따라 반 전 총장이 2006년 12월부터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근무해 약 10년간 한국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규정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사무총장직의 경우 선출직 및 상근직이라는 점에서 ‘공무로 외국에 파견된 기간과 국내에 주소를 두고 일정기간 외국에 체류한 기간은 국내 거주기간으로 본다’는 단서 조항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뒤를 잇는다.
하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중앙선관위)는 지난 1월 13일 “반 전 총장이 과거 5년 이상 거주한 사실이 있고 거주 요건을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뒤의 조항은 더 살펴 볼 필요도 없이 피선거권이 있다”고 유권해석을 내렸다.
하지만 김대년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은 1월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통령 피선거권과 관련한 유권해석은 중앙선관위원 전체회의를 열지 않고 실무자 선에서 결정해 총장 전결로 처리했다”고 밝혀 이 유권해석이 전체 회의가 아닌 개별 실무자 선에서 작성된 것임을 인정해 논란이 일고 있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중앙선관위가 신기한 해석을 하고 있다. 선관위는 그 조항에 ‘계속하여’가 없다는 이유로 그런 해석을 내놓았는데, ‘거주하고 있는’은 당연히 ‘현재진행형’을 뜻하는 것이어서 ‘계속하여’가 생략됐다고 봐야 한다. 적어도 선거 5년 전부터는 국내에 거주해서 이곳 사정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타당하다”고 했다.
‘역사바로세우기시민네트워크’ 등 일부 시민단체는 1월 2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반 전 총장의 제19대 대통령선거 피선거권 부존재 확인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올해 1월 12일까지 최근 10년 동안 국내에 전혀 거주하지 않았던 반 전 총장에게 2017년 대통령 선거 피선거권이 존재하지 않음을 소송을 통해 확인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유엔 총회가 결의한 ‘유엔 사무총장 지명에 관한 약정서’도 반 전 총장의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약정서에 따르면 “ 유엔사무총장은 다수 정부의 신뢰자 역할을 하기 때문에 퇴임 직후 그가 보유한 비밀정보가 다른 회원국에 불쾌함의 원인이 될 수 있으므로 어떠한 정부 직위도 제안해서는 안되며 퇴임 후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연일 악재가 터져 나오자 정치권은 물론이고 반 전 총장 측근들조차도 반 전 총장이 과연 대권 레이스를 완주할 수 있을 지 회의적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연일 터져나오는 악재와 이에 대한 검증에 반 전 총장이 대처하는 태도를 보면서 결국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감과 실망감이 확산되면서, 대선 캠프에 합류하기로 했다가 번복한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정책은 자신 있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내놓은 것이 전혀 없는 데다가 정치에 미숙한 모습을 너무 많이 보여주고 있어 실망감만 증대시키는 등, 지금 상황으로선 대선 준비가 안 돼 있어 경선 통과도 힘들 것 같다는 평가이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1월 23일 기자간담회에서 “(반 전 총장의) 불출마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면서 “귀국 이후 국가 위기를 극복할 성찰과 대안 없이 이미지 행보로 많은 국민을 의아하게 했는데 무슨 정치를 하겠다는 건지 알 길이 없다. 미국 발 친인척 비리도 쉽게 넘어갈 문제가 아닌 만큼 이제는 반반보다 명확해졌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반 전 총장은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 손학규 전고문,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정의화 전 국회의장,박지원 국민의당 대표 등을 비롯한 국내 유력 인사들을 방문해 정치 세력 연대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뚜렷한 진척이 없어 모든 대권 행보가 답보상태에 놓여 있어 속 마음이 타들어가는 심정이다.
한때 반 전 총장에게 러브콜을 했던 박 대표도 반 전 총장을 향해 “반기문의 빅텐트는 빅텐트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1월 21일 회동한 김종인 민주당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도 “정치는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며 선을 그었다.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은 31일 반 전 총장이 제안한 '개헌추진협의체'와 관련해 "동의할 수 없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손 의장은 "반 전 총장의 '대선 전 개헌이 필요하다'는 문제인식에는 일정부분 공감하지만, '개헌추진협의체'를 제안하면서 국정농단 세력인 새누리당을 제외하지 않는 것과 국민 기본권 확대와 합의제 민주주의 실현을 포함한 넓은 개헌이 아닌 권력구조만 바꾸자는 좁은 개헌에 머물고 있다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손 의장은 또 "제안 발표과정에서 '광장의 민심이 초기 순수한 측면보다 변질된 측면도 있다'고 한 발언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개헌은 촛불민심을 반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원칙이 돼야 한다는 점에서 볼 때, 그동안 보여준 모호한 정체성 만큼이나 개헌에 대한 진정성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은 '경제는 진보이고 안보는 보수'라는 논리로 보수와 진보 세력을 모두 두리뭉실하게 아우를 생각이지만 양 진영으로 부터 '무색무취'라는 시쿵둥한 평가마저 이어져, 제3지대 깃발을 꼽고 합리적인 보수와 진보를 끌어들이는 노선으로 갈 수밖에 없는 진퇴양난에 빠져 들어 향후 반 전 총장의 대선 완주를 향한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유로저널 김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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