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의 국제정세
최근 한국은 사면초가의 국제정세에 빠져 대외적으로 가장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한미동맹 강화의 기조 속에서도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통해 한국에 다양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 중국은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 결정이후 미국과의 기싸움 과정에서 한국에 대한 공세적 외교정책을 펼치고 있는 중이다.
일본은 과거사 이슈를 통해 한국을 압박하며 한일관계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려 하고 있다.
북한은 2016년에만 두 번의 핵실험을 감행했으며, 올해에도 공격적인 대남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튼튼한 한미동맹 하에서 한중관계를 발전시키고 일본과도 과거사 합의를 이루었던 2015년과 비교하면 한반도 주변의 국제정세가 급변하고 있음을 절감할 수 있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너무 낙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주변 정세의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한미동맹과 한중 동반자관계의 조화로운 발전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북한의 핵 및 미사일 도발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대는 분명했지만, 그 이행과정에서 국가 간 이해관계의 차이가 발생하였다. 북한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통한 비핵화를 추진하는 한·미·일의 공조에 중국은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주장하며 대응했다. 북한의 도발에 제재로 맞서야 한다는 뜻은 같았지만, 어느 정도의 제재여야 하느냐는 문제에는 의견이 달랐다.
더구나 북한문제에 대한 대응이 미중관계의 미묘한 부분을 건드리는 순간 갈등은 확대되고 한국의 입지는 좁아져 갔다. 북한의 도발로 시작된 한반도의 긴장은 점점 더 글로벌화되어 갔다.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와 중국의 시진핑 정부가 관여하는 한반도 문제는 한국에게 더욱 커다란 도전을 제기할 것이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본방향
대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일수록 대북정책과 통일정책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책의 원칙이 무엇인지 분명히 제시해야 하며,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계획이 무엇인지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우선 한국은 다른 국가들의 한반도 전략에 대응하는 ‘비핵화 평화통일 프레임’의 기본 방향을 제시해서 국제사회를 설득해야 한다. 북한의 대남 통일전략은 핵전략 및 평화협정 전략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 역시 대북 및 통일전략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이를 상대하는 언어와 접근법으로 대응해야 한다.
단순한 제재-비핵화 프레임을 넘어 비핵화-평화-통일의 연결고리를 통해 북한의 평화협정-군축 프레임이나 중국의 비핵화-평화협정 프레임에 대응해야 할 것이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제재-비핵화 프레임이 큰 문제가 없었지만, 미중간의 이견이 노출되고 북한 관련 상황이 변화하면 불안정해 질 수 밖에 없다.
평화협정을 통해 군축을 요구하는 북한의 프레임이 비현실적이고 비평화적임을 지적하고, 비핵화에 의한 평화를 통일과 연결시킴으로써 보다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둘째, 북한의 국가전략 변화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기이다. 북한과 관련된 모든 문제는 북한 체제의 경직성,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세습체제의 구조적 문제에서 파생되는 것이다. 북핵문제도 핵문제와 군사적인 차원에서만 접근하다 보면 한반도 주변의 국제정세, 남북한 관계, 한국의 국내정치 문제와 복잡하게 얽히게 되어 문제해결이 어려워진다.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단·중기적인 북핵문제 대응전략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북한의 국가전략을 변화시키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국가전략이 변화되지 않는 한 북핵문제는 해결되기 어려우며 북한의 대남전략도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의 국가전략 변화를 외부에서 인위적으로 강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외부적 강제는 단기적으로는 쉬울 것처럼 보이지만, 대내외 반발을 유발하여 실제 현실화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북한 체제 자체의 자연스러운 변화를 유도하는 것은 쉽지 않은 길이고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없지만 장기적으로는 통일한국을 위해 바람직스럽고 효율적인 정책이다.
북한의 내부 변화는 현재 김정은 정권이 내부적으로 가장 우려하고 있는 부분을 활용하여 가능할 수 있다. 이는 현재 북한 내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시장화 및 정보화라고 판단된다. 북한의 시장화와 정보화가 더욱 활성화되도록 하는 정책이 장기적으로는 북한 비핵화와 통일에 더 효율적인 정책이 될 것이다. 이는 또한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얻는 대북 공공외교의 방법이기도 하다.
셋째, 한반도 통일을 위해서는 미중관계의 새로운 전개방향을 주시해야 한다. 한반도 문제는 역사적으로 강대국 관계변화에 큰 영향을 받아왔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현재의 북한문제나 한반도 통일 역시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오바마 행정부와는 전혀 다른 동아시아 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미중관계의 향후 전개방향은 한반도 질서 변화에 커다란 변수가 될 수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통해 미국 국내경제 회복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를 중국의 시진핑 정부가 순순히 받아들일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향후 미중간의 갈등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이는 북한문제에 대한 대응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기존의 동중국해, 남중국해 문제에 더해 미중간 무역갈등의 가능성은 한반도 주변 국제정세를 뒤흔들 수 있다. 동아시아에서 미중이 충돌하는 경우와 협력하는 경우, 각각의 상황이 북핵 문제 해결 및 한반도 통일에 어떤 선택지를 줄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국제협력
한반도 통일을 위해 국제협력이 중요하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어떤 국제협력이 필요한지, 국제사회의 협력을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지는 쉽지 않은 질문이다. 우리는 국제사회 모두가 한국주도의 한반도 통일을 지지해 줄 것을 기대하지만,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치는 상황에서 이는 쉽지 않은 작업이다. 다른 국가들도 한반도 통일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느낄 때 통일에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한반도의 현상유지가 자국이 이익에 더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다면 통일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들 국가들이 한반도 통일에 대해 가지는 인식을 변화시키려는 공공외교의 노력이 필요하다. 한반도 통일외교는 그동안 강대국 중심 외교에 초점을 둔 측면이 있었지만, 이들이 한반도에 커다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한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다. 주변국들은 한반도 통일에 원칙적으로는 공감하더라도 구체적인 내용이나 방법에 대해서는 상당한 이견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상대국 정부정책의 기반이 되는 국민들의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으며, 이것이 바로 통일공공외교의 몫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통일외교의 컨텐츠에 공공외교의 방법론을 결합하여 통일공공외교를 구체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공공외교는 상대국 국민들의 공감과 지지를 얻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상대의 관심과 편익을 고려하여 쌍방향의 소통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공공외교는 행위자의 다양화를 의미하므로 정상외교와 다자외교 등 정부간 외교에 더하여 싱크탱크, 미디어, 민간 파트너들이 참여하는 민간외교도 중요하다.
이에 따라 상대국의 의회, 전문가그룹, 언론, NGO 및 일반대중까지 고려하여 각각의 특성에 맞는 메시지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공공외교는 청중특성에 맞는 맞춤형 공공외교 메시지를 전달하여 우리의 정책에 대한 지지를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일공공외교는 통일의 이익이 한반도 뿐만 아니라 동북아 및 글로벌 평화와 발전에 커다란 도움이 된다는 컨텐츠를 만들어 설득하는 것이다. 통일의 이익은 그동안 통일편익론의 관점에서 국내적인 차원에서만 고려되었다. 또한 경제편익론의 관점에 집중하여 통일이익, 통일비용 등 통일의 경제적 편익을 중심으로 많이 논의되어 왔다. 하지만, 통일공공외교는 지역적으로는 동북아와 국제적인 차원을 포괄하고, 어젠다 측면에서도 경제적인 부분뿐 아니라 국제정치적, 전략적인 차원으로 확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반도 통일이 다른 국가에도 이익이 된다는 맞춤형 설득 논리를 개발해야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이는 통일이 경제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상대국의 안보와 지정학적인 전략의 관점에서도 이익이 된다는 논리로 설득하는 것이다.
한반도 통일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통일공공외교의 다양한 컨텐츠 개발을 통한 관심 끌기에 성공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핵심 컨텐츠인 북핵문제, 통일과정, 통일이후 한반도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상대국 국민들의 관심을 고조시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청중별 통일편익 컨텐츠를 개발하여 이익에 기반한 협력자를 확보해야 할 것이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비핵화 및 동맹관리에 관심이 많을 것이고, 중국은 한반도 및 동북아 안정과 경제발전에 초점을 둘 것이다. 일본은 경제회복과 동아시아에서의 지위 확대에, 러시아는 동북아 개발 및 에너지 자원 등을 한반도 통일문제와 연계시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통일이 이들 국가에게 어떤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설명해 줄 수 있을 때 국제사회의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황지환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간단 약력
학력: 서울대 외교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정치학사 및 석사) /
미국 University of Colorado,
Boulder 졸업(정치학 박사)
경력: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부교수 /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정치학과 방문학자 /
통일준비위원회 외교안보분과 전문위원 /
통일부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