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저널 팩트 체크: '프랑스 대선과 한국 언론'
프랑스 대통령 선거 후벼 보기
프랑스의 2017년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서 엠마뉘엘 마크롱과 마린 르 뻰이 1, 2위 지지율을 얻어 결선 투표에 진출했다. 2주 후인 5월 7일에 결선 투표가 실시될 예정이고, 마크롱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 결선투표 : 극단주의 후보 당선을 막는 안전장치
한국 언론들이 프랑스 선거 뉴스에서 가급적 피하는 단어가 결선투표제일 것이다. 거의 모든 선거에서 대부분의 정당들은 독자 후보를 내고 1차 투표를 치른 후 그 득표 순서에 따라 결선투표제를 통해 최종 당선자를 정하는 제도다. 이런 식의 결선 투표제는 우선 극단주의 정치 세력을 걸러내는 장치로 효과적이고, 모든 정파는 최대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며, 비슷한 성향의 정파는 자연스럽게 공격보다는 지속적인 협력을 염두에 두게 마련이다.
1987년 체제가 결선투표제를 획득했다면 우리 한국 정치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우리 모두 나름대로의 상상력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럴까? 프랑스 선거 뉴스에 가급적이면 결선투표제를 줄이고 싶어하는 한국 수구 언론들의 애써는 모습도 별로 낯설지 않을 것이다.
# 2017년의 선택
이번 대선 1차 투표 결과는 극좌파 19,62% + 4,73%, 좌파 6,35%, 중도파 23,86%, 우파 19,94%, 극우파 21,43%로 요약된다.
전통적으로 프랑스에서는 사회당보다 왼쪽의 극좌, 사회당, 중도파, 우파, 그리고 극우라는 5 개의 정파로 분류한다. 이전 대선까지는 공산당이나 반자본주의 성향의 극좌파는 결선 투표에 올라가기보다는 자기 정파의 목소리를 내는 데 의미를 두었고, 중도파는 2차 투표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목표로 삼았다. 극우파 또한 비주류 정파였지만 2002년 결선투표에 올라가면서 주류 정파로 급부상했다.
우파의 프랑수와 피용 후보가 개인적 비리 혐의로 1,2위권에서 벗어난 것이 특징적이다. 또한 전통적으로 좌파의 주류였던 사회당은 6% 정도의 득표로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이번 대선에서의 가장 큰 특징은 사회당의 몰락이다. 사회당 지지자의 상당수가 극좌로 옮겨 가고, 일부는 사회당 합류를 거부한 마크롱의 중도파로 이동함으로써 기존 사회당이 몰락하고 새로운 좌파가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선거 후 곧 치러지는 의원 선거에서부터 그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 오른쪽으로 이동 :
이번 선거의 결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프랑스인들의 선택이 조금씩 오른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여전히 좌파의 가치를 지키고 싶어하는 좌파 지지자들은 사회당 내에서 왼쪽에 위치한 후보 아몽을 후보로 지지했고, 더 왼쪽 지지자들은 멜랑숑으로 바꿨지만 다수의 좌파 지지자들이 사회당이라는 전통적인 울타리보다는 마크롱이라는 후보를 선택함으로써 조금씩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극좌파를 지지하는 흐름이 지속될 것인가? 리오넬 죠스팽과 프랑수와 올랑드에게 좌파의 가치를 버렸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극좌 세력은 사회당의 몰락과 함께 세력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마크롱은 어떻게 주류 무대로 진출했을까? 그도 다른 정치 지도자들처럼 엘리트 코스를 밟았고, 사회당 출신 대통령인 프랑수와 올랑드가 경제부 장관으로 기용하면서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전통적인 사회당 지지자들이 마크롱을 대선 후보로 뽑을 가능성이 적으니 독자 후보로 나서서 지지 세력을 규합하여 좌파 지형을 흔들었다.
사회당 주류 장관들과의 의견 충돌과 프랑스 국민들의 성향 변화는 오히려 올랑드 대통령의 인기를 떨어뜨리면서 동시에 마크롱의 개인적 지지도를 높여 주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선의 승자는 프랑수와 올랑드 대통령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이미 리오넬 죠스팽 총리도 좀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정책을 펴다가 결선 투표에 올라가지도 못하는 낭패를 당한 바 있지만, 그러한 변화의 물결은 프랑수와 올랑드에 이어 마크롱으로 이어진다는 게 제법 타당성 있어 보인다.
# '오른쪽'만 강조하는 한국 언론
한국 언론이 전하는 프랑스 뉴스들에서 또하나의 눈에 띄는 특징은 '오른쪽'이다. 사르꼬지 대통령 시절부터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기사는 수없이 나왔지만 그 오른쪽이 한국의 정치 지형 상 어디쯤인지, 다시 말해 구체적인 정책을 소개하는 데에는 소극적이다. 그 오른쪽이라는 게 한국 사회에서 보면 상당히 왼쪽이라는 걸 설명하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마크롱이 주장하는 노동 정책을 한국의 노동 현실로 옮겨 놓으면 어떻게 될까?
# 엄청난 테러인 듯 부풀려지는 사건들
1차 투표 며칠 전에 벌어진 샹젤리제 거리에서의 경찰 공격 사건은 한국 언론의 엄청난 환영(?)을 받았다. 뉴스 뜨는 것 보면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 같다. 자세히 보면 프랑스 공권력을 공격하여 처벌 받은 적이 있는 한 전과자가 경찰에 총격을 가해서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다쳤으며, 지나가던 한 독일인도 다쳤다고 한다. 이 사건이 프랑스 대선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관심을 갖는다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북역에서도 작은 사건이 하나 터졌는데 엄청난 사건으로 한국 언론의 주요 뉴스로 떠올랐다. 한 행인이 칼을 들고 있는 범인을 보고 순찰을 돌던 경찰에 알려서 즉시 제압 당한 사건인데, 당시 한 30분 정도 그 주변을 지나던 행인들도 패닉 상태였다고 한다. 하지만 한 행인이 찍은 비디오에는 태연히 지나가는 행인들도 많이 보였다. 반 이민자 정서에 엄청난 충격을 던져서 극우파가 득세할 가능성에 방점에 찍힌 기사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미풍 축에도 못 들었다.
# 탈락자들의 지지 선언
오래 전 노무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많이 당선되었으면 좋겠다는 말 때문에 탄핵 위기에 몰렸던 바 있다. 선출된 공직자들도 선거에서 기계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요상한 법 때문이다. 그걸 당연한 것으로 본다면 프랑스에서는 무법천지가 아닐까? 총리는 선거 결과를 발표하면서 극우파를 저지해야 한다고 공식 주장하고, 대통령은 극단 세력의 집권을 막아야 한다면서 극우와 극좌 모두에 대해 강도 높게 비난한 바 있다. 멜랑숑 후보는 2차 투표 지지 선언을 유보 내지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대부분의 탈락자와 정치가들은 공공연하게 극우 세력을 경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극우와 극좌가 결선 투표에 올라가는 상황이 아니라면 극우나 극좌가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아는지 모르는지, 한국 언론 일부는 연일 극우의 당선 가능성을 띄우고 있다. 그래야 뉴스 소비가 될 테니까... 하필이면 한국 일부 언론이 교묘하게 밀고 있는 후보도 양다리 걸치는 작전으로 인기가 치솟았다가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 가고 있다. 사르꼬지 대통령 후보 시절에도 프랑스의 고질병 좌파 정책 운운하면서 많이 봐왔던 풍경이다.
# 2원집정부제
이미 프랑스 언론은 마크롱 대통령 당선 시 동거정부의 혼란스러움이 재현 될 가능상에 주목해 왔다. 물론 대선 후 몇 주 동안 의원 선거 운동에서 '전진파'가 하원의 다수당이 될 가능성도 있지만 그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 또한 좌파와 우파와의 제휴를 통해 무난히 내각을 구성할 가능성도 있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의 정파가 독자적 혹은 연합하여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하면 부분 실업자로 불리던 자끄 쉬락처럼 한가한 처지에 놓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동거정부에서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개헌으로 대통령과 의원들의 임기를 맞추었는데, 15년 후에 그 모습을 다시 볼 가능성도 있다.
프랑스 유로저널 정종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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