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심원의 사회칼럼

그 화려했던 조명은 어디로 갔는가?

by eknews posted May 1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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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화려했던 조명은 어디로 갔는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했던가. 아무리 화려한 꽃이라도 열흘을 넘길 수 없으며, 하늘을 나는 새를 떨어뜨린다는 권력이라 할지라도 십 년을 넘길 수 없다는 말은 하늘이 주는 공평한 기회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세상엔 예외라는 것이 있다. 열흘 넘게 자신의 자태를 뽐내는 꽃은 분명 존재한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조국을 다스렸던 권력자 중에 이십년 가까이 권력을 움켜잡았던 권력자는 존재하며, 같은 민족이지만 체제상으로는 다른 나라인 북한은 3대에 걸쳐 세습권력을 유지하기도 한다. 

오래 전에 서울에서 개최된 만여 명이 모이는 대형 집회에서 한 연사에게 축사의 기회가 주어졌다. 많은 연사들이 강단에 오르기 때문에 메인 강사 외에는 3분의 시간이 주어졌다. 외국인으로 우리나라에 복음과 근대화를 이룬 공을 세운 유진별 선교사의 4대 후손인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세브란스병원 소장이자 국제보건의료재단 총재이며 <내 고향은 전라도> <내 영혼은 한국인> 이란 책의 저자인 ‘인요한’(John Linton) 교수의 차례가 주어졌다. 2005년에는 국민훈장목련장 까지 수상한 인물이다. 
외국인지만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한국인 보다 더 한국인다운 교수가 마이크를 잡으며 시작하는 말이 있었다. 권력을 잡으면 오래도록 지속하고 싶은 것처럼, 마이크를 잡으면 오랫동안 말하고 싶다며 3분으로는 부족하니 조금 더 말하겠다며 관중을 활짝 웃게 만들었다. 
한 교수의 축사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유머에 담긴 숨길 수 없는 인간의 속내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권력을 잡은 자는 어떤 방법이든 그 권력을 유지하려는 속성이 있음을 말하려는 것이다. 권력을 맛보지 않았으니 권력이 주는 매력을 알 수 없겠지만, 권력에 맛을 들이게 되면 권력의 크기에 상관없이 블랙홀처럼 그 마성에 빨려 들게 마련인가보다. 
시골 작은 동네에서 완장만 채워져도 그의 걸음걸이와 말투가 달라지는 것으로 보아 알 수 있게 된다. 일제 강점기 시절 동네에서 놀던 하릴없던 젊은이에게 완장을 채워주고 작은 권력의 채찍을 하나 쥐어줬을 뿐인데 일본 사람보다 한국인을 더 괴롭혔던 사람이 바로 권력의 끄나풀들이었다.

권력은 뿌리가 없는 꽃과 같다. 지금 당장은 힘이 있고 화려해 보이지만 시간이 경과 되면서 권력의 꽃은 시들기 때문이다. 권력에 오르는 과정도 힘든 일이요, 꽃을 피워내는 과정 역시 권력을 얻는 과정만큼이나 어려운 법이다. 거친 광야에서 비바람과 맞서 견뎌내야 만이 꽃을 피워낼 수 있다. 꽃을 피워내는 과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동일하게 눈물과 무릎으로 걸어야 했던 가시밭길이기에 가급적이면 피워내 꽃이 하루라도 더 오래도록, 할 수만 있다면 영원히 피워 있기를 갈망하게 되는 것이다. 

권력의 끄나풀을 붙잡기 위해 자기의 숭고한 영혼을 팔았기 때문일까 권력의 힘 앞에서는 도덕적 양심이나 사회적 윤리는 이미 굳어져 버릴 데로 굳어져 화인 받은 양심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한 때 세상을 움켜쥐었던 진시 황제는 자신의 화려한 명예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3천명이나 되는 군사를 풀어 영원히 죽지 않게 하는 불로초를 구하게 한지도 모른다. 

세상엔 영원히 아름다운 자태를 유지하는 꽃도, 힘을 유지할 만한 권력의 제도적 장치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하늘의 법칙이다. 피어나는 안개와 같이 해가 뜨면 사라지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아침에 피어나 점심에 잠간 자태를 뽐내다 저녁이면 다른 꽃에게 자리를 내어 주어야 하는 것이 보편적인 진리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는 것이 생의 법칙이다.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 1809 - 1865)은 권력에 대해 이렇게 피력했다. 

“한 인간의 됨됨이를 정말 시험해 보려거든 그에게 권력을 줘보라.”

민주주의에서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권력자가 존재한 후에 국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존재해야 권력이 주어지는 것이다. 
권력을 얻기 위해 국민들의 종으로서 살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권력을 얻고 난 후에는 국민들을 볼모로 자기 배만을 채우는 권력의 실패자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즐비하다. 링컨의 주장처럼 권력이 주어졌을 때 그 권력에 함몰되지 않고 백성들을 위해 주어진 권력을 사용할 수 있다면 그가 진정한 성인일 것이다. 권력의 목적을 이탈하게 되면 그 권력을 가진 자는 세상에서 가장 추한 말로를 맞게 되는 것이 역사가 증언하고 있다. 꽃이 진 자리는 추할지라도 다음 세대를 위한 열매가 맺히게 된다. 그러나 추한 권력의 뒷모습에는 다음세대로부터 돌을 맞아야 하는 심판만이 남아 있는 것이 우리 정치의 현실인 것이 마음 아프다. 

화려했던 조명은 반드시 꺼지도록 되어 있다. 영원히 조명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은 시대를 초월 하여 변치 않는 공평한 법칙이다. 조명 받을 때, 최정상에 섰을 때 권력이 주어지고, 명예가 주어졌을 때는 그곳에 움막을 세우고 영원히 살기를 희망하지만 결코 그럴 수는 없는 법이다. 권력의 정상, 명예의 정상에서 화려하게 피워낸 꽃은 목적이 아니라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며 수단일 뿐이다. 목적지를 향해 가기 위해서는 징검다리가 필요하다. 징검다리가 아무리 화려할 지라도 거기에 머물지 말고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징검다리를 크게 만들고 그곳에 빌딩을 짓고 자기를 위한 성을 쌓아 다른 사람들도 지나갈 수 없는 아성을 만들게 된다. 

영국이 자랑하는 배우 찰리 채플린 (Charles Chaplin, 1889 - 1977)은 배우 이상으로 국민적 영웅이며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전통 영국인답게 단신으로서 그가 무대에 서는 순간 관객은 어둠속에서 그의 몸짓, 손짓, 우스꽝스러운 걸음걸이를 주목하게 된다. 

그의 움직임은 산업혁명의 찌든 공해로 부터 자유를 선물해 준다. 꽃이 진 자리는 추하다. 권력의 앞모습은 찬란할지 모르지만 뒷모습은 꽃이 진자리 보다 더 추한 모습이다. 조명이 있을 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박수갈채를 받게 되지만 그 조명은 언젠가는 빛을 잃게 된다. 조명이 없는 어둠속에서 화려한 박수만을 받았던 사람들은 때때로 길을 잃게 된다. 

런던의 한 골목에서 그렇게 화려한 조명이 빛을 잃은 찰리 채플린의 동상 앞에 내 인생은 멈추어 서야 했다. 
그를 상징하는 지팡이는 누군가에 의해 파괴된 상태다. 

주변은 온통 쓰레기로 넘쳐난다. 화려한 조명도 없을 뿐 아니라, 누구 하나 그의 모습에 박수를 보내지 않으며 흔한 사진 촬영도 하지 않는다. 인생은 화려한 무대에서 평가받는 것이 아니다. 

한 시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정치인들, 국민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던 사람들의 조명은 모두 꺼져버렸다. 누구도 그들의 조명을 기억하지 않는다. 그들은 조명이 꺼진 무대 아래의 삶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양심을 팔고 영혼을 팔게 된다. 조명, 박수갈채, 화려함, 권력, 명예가 삶의 본질이 아님을 깨닫는 것은 권력의 최정상, 화려한 박수갈채를 받았던 사람들에게는 더 힘든 법이다.

내 인생이 받았던 화려했던 조명을 기억하기 보다는 실패했을 때, 그 실패를 통하여 나를 다듬어 가는 뼈아프고 가슴 쓰라린 기억이 오히려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이 될 수 있다. 
잘 나갈 때는 주변의 사람들로 들끓겠지만 추락할 때는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벗이라 하는 사람들조차도 자기 살기 위해 등을 돌리게 되는 것이 인간의 솔직한 모습이다. 그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인간이 가지는 욕망의 현상이며 약점이자 강점일 것이다. 
화려한 조명이 나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조명 없는 어둠이 오히려 나를 지탱해 주고 나를 나답게 만들어 주며, 내 모남을 깎고 다듬어서 더 크고 빛나는 보석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닐까. 
조명이 꺼진 어둠의 골목 한 모퉁이에 외로이 서 있는 찰리 채플린의 동상 앞에서 그가 내게 말을 건넨다. 화려한 조명을 사랑하지 말고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이는 조명이 되라 하는 것 같다.


박심원  유로저널칼럼니스트

- seemwon@gmail.com
- 목사, 시인, 수필가 
예드림커뮤니티교회 공동담임
- 박심원 문학세계 
- 카톡아이디 : seem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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