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50주년을 맞은 Lisson Gallery(1)
미술계에서 예술가와 갤러리의 관계를 우리에게 비교적 더 친근한 엔터테인먼트산업에 비교해 이야기해보자. 우리나라에는 크게 SM, JYP, YG등의 연예기획사가 있다. 각각의 연예기획사에는 기획사의 성격이나 특징에 부합하는 소속 연예인을 거느리고 있다. 기획사는 해당 연예인들을 기획, 관리하는 일을 하게 된다. 사실 이 작업은 기본적으로 해당 가수 혹은 연기자의 커리어를 총체적으로 서포트하는 것으로서, 유명한 작곡가를 섭외한다든지, 유명한 드라마작가의 작품에 캐스팅될 수 있도록 한다든지, 해외 순회공연, 팬클럽관리, 심지어는 불필요한 스캔들에 휘말리지 않도록 사생활까지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
[개관 당시의 리슨 갤러리, Bell Street, London, Courtesy of Lisson Gallery]
미술계에서 갤러리는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단순히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연예기획사와 마찬가지로 소속 아티스트의 기획사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다. 소속 작가들의 개인전을 열어줄 뿐만 아니라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예술가의 커리어를 서포트하게 된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ć), 아트 앤 랭귀지(Art & Language), 토리 크랙(Tony Cragg), 리처드 롱(Richard Long), 이우환(Lee Ufan), 애니쉬 카푸어(Anish Kapoor), 다니엘 뷔랭(Daniel Buren), 다츠오 미야지마(Tastuo Miyajima)등 20세기에서 개념적인 작업을 해온 작가들 중 가장 중요한 작가들을 대거 소속작가로 함께 일하고 있는 Lisson갤러리. 1967년, 당시 슬레이드 미술대학에 재학 중이었던 22세의 니콜라스 록스데일(Nicholas Logsdail)가 런던 북서부 지역인 리슨 그로브(Lisson Grove)에서 리슨 갤러리를 시작한 이래 갤러리는 반세기 동안 미니멀리즘과 개념주의 작가들의 산실이 되어왔다. 1880년대 중반부터 1999년까지 갤러리의 소속 작가 증 14명이 음악의 그래미상과 같은 터너 프라이즈에 최종 후보로 이름을 올렸고, 그 중 5명이 최종 수상하는 등 리슨 갤러리 소속 작가들의 예술성은 널리 인정받고 있다.
[50년째 같은 자리를 지켜오고 있는 리슨 갤러리, Bell Street, London, 2017. Courtesy of Lisson Gallery]
특히 리슨 갤러리는 타 갤러리와 달리 소속작가와 전시프로그램을 미술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소속작가들이 작품의 성격과 더 적합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예술학적인 조언을 제공하는가 하면, 갤러리에서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될 수 있도록 전세계에서 다양한 형태의 전시기회를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다. 예를 들어 영화 투자와 배급을 책임지는 영화회사와 같이, 리슨 갤러리는 소속작가들을 위해 미술관 등의 기관과 끊임없이 협업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위한 기획전을 만들어내고 있다. 또한 대규모의 공공커미션을 기획하고 지원하는 프로그램 또한 꾸준히 진행해오고 있다. 이는 갤러리의 소속 작가들이 전세계의 문화 기관이나 건축, 혹은 개발자 등과 협업하여 공공장소에서 작품을 일시적으로 전시하거나 영구소장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공공예술의 일부를 커미션으로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리슨은 오랜 기간 축적된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애니쉬 카푸어, 다니엘 뷔랭, 댄 그레이엄, 다츠오 미야지마, 아이 웨이웨이 등 많은 작가들의 대형 설치 또는 조각 작픔을 전세계의 주요 박물관과 여러 건축물, 공원에 이르는 다양한 장소에 선보였다.
[리슨 갤러리의 큐레이토리얼 디렉터, 그레그 힐티, Courtesy of Lisson Gallery]
이와 같은 수준높은 친아티스트 프로그램에는 2008년부터 리슨갤러리에서 큐레이토리얼 디렉터(Curatorial Director) 직을 맡은 그레그 힐티(Greg Hilty)가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렉은 헤이워드 갤러리와 아트 포 런던(Art for Lodon), 영국 문화원 런던 오피스의 수장 역할을 담당하며 상업미술보다는 예술성에 근거한 실험적인 미술들을 주로 다루던 공공기관에서 괄목할 만한 커리어를 인정받아 오던 베테랑 큐레이터이다. 필자가 그레그 힐티를 만나 리슨갤러리와 리슨의 작가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 보았다.
오지혜(이후 오) : 올해로 리슨이 개관한지 50주년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상업갤러리라고 알려져있습니다. 리슨 갤러리의 성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으로 보십니까?
그레그 힐티(이후 힐티) : 정확하게 이야기 하자면 전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컨템포러리갤러리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리슨 갤러리가 개관하던 60년 당시에 19세기 미술, 혹은 그보다 더 이전 미술을 다루던 갤러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 일부가 아직 살아남아 있습니다(그레그는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갤러리들을 묘사하며 종종 survive라는 단어를 썼는데, 이는 미술계의 치열함을 자연스럽게 묘사하고 있다). 리슨 갤러리는 컨템포러리 미술 즉, 60-70년대의 미술이라고 할 수 있는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을 다루면서 50년 전에 시작된 갤러리로 현재까지 컨템포러리 미술을 다루는 갤러리로는 가장 오래 되었습니다.
특히 이 가운데 리슨 갤러리가 솔 르윗, 리처드 롱과 같은 미니멀리스트 작가들의 전시를 통해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이 영국에 자리잡도록 했다는 점과 토리 크렉, 애니쉬 카푸어로 대변할 수 있는 영국 조각의 새로운 세대의 부상에 큰 기여를 했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영국 출신 유명한 영화감독인 Derek Jarman의 전시가 열렸던 1967년 오픈 당시의 리슨 갤러리. 데렉 자만과 친구들의 모습, Courtesy of Lisson Gallery]
오 : 리슨 갤러리의 성공을 소속작가로 꼽으시는 건가요?
힐티 : 그렇습니다. 알려진 바와 같이 니콜라스가 처음 갤러리를 오픈했을 당시, 니콜라스는 예술대학의 학생이었습니다. 그가 갤러리를 시작하려고 마음 먹었던 이유는 바로 친구들과 좋은 예술가의 작품을 제대로 전시해보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아트 딜러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었지요. 그의 관심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시종일관 예술가에게 있어 왔습니다. 예술가의 예술관을 지지하고, 그의 작품을 가장 좋은 방법으로 전시할 방법을 모색하고, 그가 대중에게 더욱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길을 예술가와 함께 모색해왔습니다. 또한 예술가가 더 뛰어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그의 커리어를 서포트해왔습니다. 니콜라스가 리슨갤러리를 통해 보여준 소속 작가들에 대한 진지한 태도는 관람객이나 컬렉터에게 매우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었으며, 예술가가 뛰어난 예술가로 성장해가며 리슨 갤러리도 50주년을 맞이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음주 2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