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아방가르드의 선구자, 옥토버 갤러리(October Gallery)
영국의 최대 비즈니스 인덱스 업체인 프리 인덱스(Free Index)에 의하면 영국에만 상업갤러리가 750여개가 존재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여기에 신생갤러리나 대안공간, 혹은 작가들에 의해 운영되는 스튜디오까지 더한다면 그 숫자는 훨씬 올라갈 것이다. 영국에만 750개가 넘는 갤러리가 존재한다면 전세계의 상업갤러리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이렇게나 많은 갤러리들 중에서 소위 ‘좋은’ 갤러리는 어떻게 결정될까? 그것은 어쩌면 그 갤러리가 가진 독보적인 위치(포지셔닝)에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지난 주에 만나보았던 리슨 갤러리의 경우, 리슨이 전속작가로 보유하고 있는 작가들은 세계적인 수준의 작가들이다. 특히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의 거장으로 꼽을 수 있는 대부분의 작가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작가들의 작품 가치는 말 그대로 천문학적이다. 사치갤러리의 경우, 사치는 영국의 현대미술 yBa의 후원자로 그는 젊고 유망한 작가들의 작품을 공격적으로 컬렉팅하고 도발적인 전시를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가고시안 갤러리(Gagosian Gallery)는 작품 판매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렇듯, 갤러리가 가지는 그 만의 ‘강점’이 바로 그 갤러리를 좋은 갤러리로 성장할 수 있게 하는 토대가 되는 것이다.
[옥토버 갤러리 입구, Courtesy of October Gallery]
1979년, 영국에서 칠리 호스(Chili Hawes)에 의해 설립된 옥토버 갤러리(October Gallery)는 트랜스아방가르드(Transavantgarde) 미술의 대표주자 갤러리이다. 트랜스아방가르드는 초월을 의미하는 접두사 trans와 avant-garde가 결합된 용어로 ‘아방가르드를 넘어서’라는 말이 설명하듯,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기존 예술을 비판하며 혁신적이고 혁명적인 새로운 형태의 예술운동이었던 아방가르드에서 다시 구상회화로의 복귀를 추구하는 예술운동이다. 옥토버 갤러리는 설립부터 꾸준히 트랜스아방가르드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그들을 서포트하면서 전세계에서 트랜스아방가르드 미술의 독보적인 위치에 이르렀다. 브리티쉬 뮤지엄,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퐁피두센터 등 굵직한 미술관들은 트랜스아방가르드 미술의 작품들을 옥토버 갤러리를 통해 소장하며 갤러리의 대표적인 클라이언트 리스트에 올랐다.
설립 40주년을 목전에 두고 있는 옥토버 갤러리는 상업갤러리를 넘어 자선 신탁의 형태로 발전하여 런던의 문화허브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다. 옥토러 갤러리는 특히 작가 지원 프로그램과 다양한 세미나를 비록한 교육 프로그램을 폭넓게 운영하며 예술 저변 확대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본 인터뷰에는 설립자인 칠리 호스와 디렉터 엘리자베스 라오스첵과 함께 했다.
[옥토버 갤러리 설립자 Chili Hawes, Courtesy of October Gallery]
[옥토버 갤러리의 아트 디렉터 Elisabeth Laloucheck, Courtesy of October Gallery]
오지혜(이후 오) : 처음 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과 어떻게 미술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칠리 호스(이후 호스) : 콜로라도 출신인 저는 어려서부터 록키 산맥의 드라마틱한 아름다움에 둘러싸여서 자랐습니다. 이후 대학에서 언어학과 철학, 동물학을 전공했는데 이후 프랑스 로스본 대학에서 프랑스문학을 접하며 예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지요. 1963년, 주 드 폼(Jeu de Paume, 파리의 유명 갤러리)에서 모네와 반 고흐, 고갱을 만났던 것이 첫 번째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후 매주 미술관과 박물관을 찾아 미술을 감상하고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엘리자베스 라오스첵(이후 라루스첵) : 저는 이탈리아 비엔나 출신이고 RCA(로얄 컬리지 오브 아트)에서 미술을 전공했습니다. 1978년 칠리 호스가 RCA의 졸업전시를 관람하러 왔다가 저에게 전시를 제안하면서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1983년 옥토버 갤러리에서 전시를 성공적으로 마친 이후, 갤러리 운영에 참여하게 되었고, 예술가가 되는 대신 예술디렉터가 되었지요.
오 : 그렇다면 어떻게, 어떤 이유로 갤러리를 설립하게 되었나요?
호스 : 70년대 초반, 저는 에코테크닉이라는 기관을 설립했었습니다. 그 기관은 지구의 다양한 생명체의 연구를 바탕으로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뉴멕시코, 오스트레일리아, 푸에르토리코 등지의 연구소를 중심으로 세계해양과 우림에 대해 연구했지요. 이후 1979년, 우리는 이와 같은 철학을 바탕으로 런던에 옥토버 갤러리를 설립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오 : 설립 당시의 목표는 무엇이었으며, 그것은 설립 38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변화했습니까?
호스 : 우리의 최초의 설립 목적은 ‘바라봄’이라는 감각에 대한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소개하는 트랜스아방가르드는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라는 점에서 옥토버 갤러리에게 큰 의미를 가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옥토버 갤러리에서 열린 엘 아나추이의 개인전, 2015, Courtesy of October Gallery]
라루스첵 : 옥토버 갤러리의 발단이기도 한 트랜스아방가르드는 새로운 형태의 예술운동에 저항한 또다른 형태의 예술장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트랜스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 만들어내는 혁신적이고도 그 자체로도 항상 변화하는 작품들을 더욱 적절히 소개하기 위해 우리는 더욱 글로벌하고 세계적인 수준의 플랫폼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 전세계의 다양한 기관과 더불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옥토버 갤러리와 90년대 초부터 함께 일해와 전속 작가 아프리카 출신의 엘 아나추이(El Anatsui)의 전시가 서울에 있는 바라캇 갤러리에서 열릴 예정이다. 바라캇 갤러리는 150년 전통의 고대 그리스와 로마, 이집트, 이슬람 등 전세계에서 수집한 4만 여점의 컬렉션으로 얼마 전 서울에 전시공간을 마련했다. 옥토버 갤러리와의 인연으로 성사된 전시를 통해 한국의 관람객들이 처음으로 엘 아나추의 작품을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