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집중, 숨기거나 가리거나..
프랑스 대학 입시 제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시도되고 있다. APB 라는 대학 배정 시스템을 개혁한다는 뉴스가 점점 구체화 되고 있고, 바깔로레아 통과는 대학 입학 보장이라는 대단한 원칙을 다소 깨뜨리려는 시도이다.
프랑스 대학 선발 제도 변화를 소개하는 한국 언론의 기사 선택도 눈에 띌 정도로 늘고 있고, 어느 한 부분을 집중해서 소개하거나 주장하는 칼럼도 쉽게 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을 상대로 하는 관련 기사들과 한국인들에게 소개하는 기사들은 그 맥락에 따라서 어떤 부분을 숨기거나 일부를 가리려는 기사나 칼럼일 수도 있을 것이다.
# 제비뽑기 대신 서류 심사로 선발
현재의 프랑스 대학 입시 제도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바깔로레아 통과자 중에서 인기 학과에 지원자가 넘칠 경우 고등학교 서류, 즉 성적이나 교사의 평가 등등을 토대로 일부 학생에게는 입학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일부는 다른 학교나 학과를 지원하라고 제안할 수도 있을 것이고, 다른 과정을 거쳐서 다시 지원하라는 조치일 수도 있다.
우리네 시각에서 보자면 너무나 당연한 선택, 고교 내신 성적이든 수능 성적이든 우수한 학생을 뽑고 있는 한국의 현재 상황이 프랑스 선발 제도보다 훨씬 앞선, 중고등학교 평준화라는 어정쩡한 제도만 제외한다면 대학 선발권은 헌법적 가치보다도 소중한, 일부 미국인들의 무기 소지권 등등 여러 시스템들이 연상되는 선택인데,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 왜 제비뽑기 ?
추첨제, 혹은 제비뽑기 선발 시스템이라고 소개하기에는 가려진 것들이 너무 많다. 우수한 학생들에게만 국가가 무료로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고 해도 한국에서야 별 탈이 안 생기겠지만 이 나라는 일단 기회는 바깔로레아 통과자 모두에게 주자는 국가적 합의가 가려져 있다. 정권에 따라 합격률이 오르내리긴 하지만 80% 가량 시험에 통과하면, 우리네 얘기로 표현하자면 공부할 생각만 있으면 모두 통과하는 바깔로레아 합격 수준에만 도달하면 그 유명하다는 소르본 대학에도 지원할 수 있고, 사는 동네가 파리라면 타 지역 학생들에 우선권을 가지는 시스템, 한국에서는 지방 출신 차별이라고 공격을 받을 법한 이 시스템은 근본적인 국가적 합의를 전제로 오랜 세월 유지되어 왔다.
프랑스 전체 혹은 일부 연령대의 인구가 급격히 줄어서 대학 1학년 정원에 못 미친다면, 다행스럽게도 학과별 정원에도 못 미치거나 비슷하다면 제비뽑기는 필요 없을 것이다. 탁상공론에서는 이렇게 맞추고 추진할 법한 원칙은 개개인의 선택권 앞에서 숱한 문제점들을 드러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부 학과, 현재 지원자가 많다는 학과들은 넘치는 지원자를 학과 정원에 맞게 뽑을 방법이 없다. 바깔로레아 통과했고, 파리 시내에 거주하는 학생들이 현 APB에서 1지망으로 왕창 선택하면 알파고가 투입되어도 돌을 던지고 말 것이다. 정권이 바뀌고 누군가 교육부 장관이 되면 해결책을 내놓으라는 독촉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닌가?
어쩔 수 없이 당분간 제비뽑기, 혹은 추첨제가 동원되었다. 파리-서울 항공권을 기대하면서 제비뽑기 결과를 기다리는 심정, 비슷한 상황들이 대학 입학 시스템에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항공권 제비뽑기에서 뽑히지 않으면 돈 주고 사서 가면 되는데 대학 입학 시스템에서는 그럴 수 없지 않은가? 어쩔 수 없이 제비뽑기에 의존하면서 일부에서는 성적 순 선발을, 일부에서는 대학과 학과 입학 정원 늘이기, 곧 정부 예산 늘이기를 주장했을 것이고, 이번 정권에서는 성적 순 선발을 시도하겠다고 추진하고 있다. 제비뽑기 시스템마저도 사실은 일부에서만 시행되었다. 의학 계열의 경우 정원보다 10%, 20% 많은 지원자가 몰리면 제비뽑기로 뽑겠다고 공언했다가 비난과 우려 목소리들 때문에 마지막에는 슬그머니 다음 해로 미뤄졌고, 매년 반복되는 연례 행사로 굳어지다시피 했다.
# 보완책에 대한 주목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는 교민들이라면 아이들한테 들어서 대충이라도 알고 있겠지만, 어쩌면 무슨 얘기인지 제대로 이해 못 하고 알아서 하고 있겠지 하면서 무관심한 분들도 있을 것 같다. 어떤 학생들은 행운을 잡아서 원하는 학과에 들어갈 수도 있고, 정말 우수한 학생인데도 원하지 않는 학과에 배정되는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행운에 기대고 기다릴 수 없다는 분들은 예외적인 선발 제도를 갖는 곳, 그랑제꼴 혹은 일부 사립 대학이 대책으로 제시될 것이다.
관련 없는 분들도 상식적인 수준에서 관심을 가질 만 하다고 본다. 교육 제도야 말로 한 나라, 지금 이 순간에 살고 있고, 앞으로도 머무르고 있을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제도이니까 그럴 것이다. 부분적으로 집중해서 소중한 것들을 가린 채 나오는 기사들을 그 가려진 부분까지 이해하는 정도, 과연 프랑스는 어떤 보완책으로 바뀌는 제도의 단점을 보완할 것인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집중과 선택이 과도한 일부 언론
그랑제꼴만 강조하는 일부 언론, 대학 평준화만 강조하는 일부 언론, 한국 언론들 중 일부는 이처럼 집중과 선택이 지나쳐서 전체적인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느낌이다. “佛이 '프랑스식 대학 개혁 제대로 알고 추진하나’라는 제목의 한 언론사 칼럼은 ‘국공립大 통폐합' 모범국?”이라는 말로 그랑제꼴과 일반대학 부실화 등을 주장했다. 부분적으로 보면 다 맞는 얘기 같지만 숨기는 부분, 근본적인 장단점에 대해서는 의도적인 무시로 일관하고 있는 것 같다.
프랑스 유로저널 정종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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