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닥치고 작업만 할 거예요”
작가 양혜규(1971-)가 ‘Artreview’의 <2017년 Power 100>에서 85위를 기록하며 최초로 세계의 가장 영향력있는 예술인에 포함되었다. 그는 그동안 말뫼, 브레멘, 본, 홍콩 등 다양한 도시에서 그룹전을 가졌고, 멕시코시티와 베를린, 그라츠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양혜규
올해 독일의 슈테델슐레 교수에 임명되었고, 내년에는 쾰른 루트비히 미술관 개인전, 리버풀 비엔날레, 시드니 비엔날레 참여 등 활발한 활동을 앞두고 있다.
개념 설치 미술가인 그는 블라인드로 알려져 있는 예술가다. 처음에는 기능적 용도로 벽이 싫어 전시장에서 벽 대신 블라인드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블라인드라는 소재의 잠재력을 봤고, 그 다음부터는 주재료로 쓰게 됐다.
2012년 독일의 현대미술 전시장인 뮌헨의 하우스 데어 쿤스트가 거대한 중앙 홀을 특별한 단독 작품 하나를 1년씩 전시하는 새 공간으로 개조했을 당시, 첫 작가로 양혜규를 골랐었다. 이 때 양혜규는 블라인드 작품인 ‘서사적 분산을 수용하며’를 선보였다.
이것은 그동안 보여준 블라인드 작업의 새로운 변화이자 높이 9m에 이르는 거대 작품이라 눈길을 끌었다. 당시 독일의 대표적 미술 공간이 야심차게 새 전시 공간을 출범하면서 첫 번째 작가로 그를 고른 점은 화제가 되었다.
양혜규, 서사적 분산을 수용하며, 2012
하우스 데어 쿤스트는 히틀러 시절 나치 미술을 선전·전시하던 곳이다. 그는 어떤 역사를 대표하는 공간이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독일 사람도 아니고 그 시기를 겪은 세대도 아니지만 그가 그 공간에 다른 문맥을 부여하는 것이 얼마나 가능한 지를 실험해 보았다.
그가 요즘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개념은 ‘디아스포라’다. 디아스포라는 원래 다른 나라에서 살면서 일하기 위한 유대인들의 이동을 의미한다. 지금은 넓게 고국을 떠나는 사람이나 집단의 이동을 지칭하는 단어로, 그의 작품 제목에 들어간 ‘분산’과 ‘산재’란 단어들이 ‘디아스포라’를 상징한다.
너무나 명백한 서사가 있는 곳에서 다른 부수적인 서사를 심기를 원했던 그에게, 반쯤은 열리고 반쯤은 닫히는 ‘디아스포라’의 성격을 지닌 블라인드는 안성맞춤의 소재였다. 그는 블라인드라는 조형물은 공간을 그리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구획을 지을 수 있기에, 명백한 서사를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공간 전체를 아우르면서 자신과 같은 외국인 소수자들의 서사를 새로이 생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1994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미술학교 진학을 시작으로 해외에 계속 살고 있다. 하지만, 레지던시(residency) 프로그램으로 생계를 겨우 유지하면서 영국·일본·프랑스·네덜란드·미국, 그리고 독일의 여러 도시에서 짧게는 몇 주, 길게는 1년씩 살았었다. 덕분에 ‘노마드(유목민) 작가’라는 별명도 얻었다.
사실 그가 세계적으로 자신을 이름을 알린 것은 2009년 53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대표작가로 단독 참가한 이후부터다.
당시 중앙 설치작 ‘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목소리와 바람’은 색색깔의 블라인드와 선풍기, 냄새를 복합적으로 조합한 공감각적 작품이었다.
양혜규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중앙 설치작 ‘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목소리와 바람’
천장에 매달린 여러 개의 블라인드로 이뤄진 설치물은 통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을 통과시키고, 또 주변에 설치된 6개의 선풍기는 시간차를 두고 작동하면서 블라인드를 흔들리게 하기도 하고 관람객의 머리카락을 흩날리게도 했다.
그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기보다는 공간의 관계성에 주목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기존 한국관을 자신에게 맞게 뜯어고치기보다는 자신에게는 새로운 조건인 사방 통유리에 적응하는 편을 선택했다. 그리고 기존 외부 조명 대신 자연광을 쓰면서, 또 ‘목소리는 목청이 없고 바람은 팔이 없다’는 자신의 비디오 내레이션처럼 만질 수 없고 형언할 수 없는 색감과 구조를 만들어 냈다.
또한 그는 베를린에 있는 자신의 집 부엌을 재현한 설치작품 ‘살림’도 선보였다. 이 작품은 전시 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1억5천에 소장됐다. 백남준과 정연두에 이어 한국 작가로는 세 번째로 작품이 소장된 것이다.
양혜규, 살림, 2009
2012년에는 작가 백남준이래로 20년 여만에 13회 카셀 도큐멘타에도 초청되어 ‘진입 – 탈-과거시제의 공학적 안무’라는 작품을 카셀 중앙역 구 역사에 설치를 하게 되었다.
양혜규 2012년 카셀도큐멘타 설치 작품
그는 미국 아스펜, 영국 브리스톨에서 각각 개인전과 2인전을 열었고, 일본 도쿄, 프랑스 툴루즈, 스웨덴 스톡홀름, 독일 베를린 등에서 단체전에도 참가했다. 그리고 현재도 지속적으로 세계 각지에서 그룹전과 개인전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는데도 그는 자신의 작업을 한국에서 제대로 소개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아쉬워했었다. 한국에 머물 때도 작업에 집중하면서 가족도 잘 안 만났다는 그는 2013년까지는 “정말 닥치고 작업만 할 거예요. 잡히는 대로 좍좍, 잔머리 안 굴리고”라고 말했다.
이런 그가 드디어 한국에서 2006년, 2010년, 2015년 개인전을 가졌다. 양혜규의 2015년 국내 세번째 개인전은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렸다. “한편으로 자신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떨린다”고 말하면서 조각, 설치, 영상, 콜라주 등 구작과 신작 35점을 미술관 2개 층 공간에 마치 세계지도처럼 펼쳐 보였다.
“강하면서도 연약한 존재가 코끼리 아니냐”라고 하며, 전시 타이틀을 ‘코끼리를 쏘다 象 코끼리를 생각하다’라고 붙였다. 물론 전시장에 진짜 코끼리는 없었다. 전시를 구상하면서 'G. 오웰'의 수필 <코끼리를 쏘다>와 코끼리를 소재로 한 '로맹 가리'의 소설 <하늘의 뿌리>에 감명을 받아 전시명에 코끼리를 넣었다고 한다.
전자는 식민 지배가 한 나라의 자연과 인간을 얼마나 무차별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지를 말하고 있고, 후자는 강제수용소에 끌려간 주인공 '모렐'이 그 악몽의 시간을 코끼리를 상상하는 힘으로만 이겨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코끼리가 어디에 있다는거야?” 이 질문에 작가는 자신의 의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자신의 전시에는 우선 ‘자연’이 없다고 말했다. 짚풀을 엮어 만든 ‘중간 유형(2015)’은 러시아의 이슬람 사원 ‘라라툴판(라라튤립)’을 모티브로 만든 구조물 3점과 인체를 연상시키는 조각 6점으로 구성됐다.
양혜규, 중간 유형, 2015
철골 구조에 지푸라기를 얹었다. 이것은 진짜 지푸라기가 아니다. 천연 짚 대신 굴비 엮을 때 쓰는 비닐 재질의 인조 짚을 썼다. 인공의 재료로 자연을 모방한 것이다.
지푸라기 작업은 그가 일본 북부 가나자와의 공원에서 겨울철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서 나무를 짚풀로 감싼 것을 보고 시각적 아름다움을 느낀데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산업이 고도로 발달한 사회에서도 농경시대의 상징인 지푸라기라는 원시적 재료가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가 말하는 자신의 작업의 두번째 의미는 ‘원본’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자연에 대한 모방과도 통한다. ‘외발 사자춤’이라는 부제가 붙은 구조물이 이러한 주제 의식을 담고 있다.
양혜규, 외발 사자춤, 2015
그는 사자가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사자춤이라는 민속이 동북아에 널리 퍼져 있고, 한국에서는 삼국시대에 서역으로부터 들어와 한국의 전통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고 말했다.
전통, 원본이 무엇인가? 왜 그것을 지켜야 하는가? 작가는 과연 원본이라는 것이 있긴 한건가? 라는 의문을 던진다.
(다음에 계속…)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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