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매를 털어 금은보화가 나오는 줄 알지만 오산이에요
그가 던지는 세번째 화두는 공동체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채’ 작업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성채’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선보여 호평을 받았던 블라인드 작품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양혜규, 성채, 2011
빛과 향이 블라인드 안과 밖을 관통한다. 블라인드 안에는 비엔날레 당시의 영상과 아현동 재건축 현장의 영상을 담은 스크린이 있다. 블라인드 밖에서는 무빙라이트가 비춰지고, 센서가 달린 향 분사기는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향을 뿜는다. 관람객들은 빛과 냄새와 함께 성채라고 믿고 있는, 폐쇄적으로 구획된 공동체라는 이름의 허약한 장벽을 넘나들게 된다.
양혜규는 개인의 경험과 기억, 역사적 사건들 안에서 보여지는 개체와 공동체의 관계의 서사적 내용을 다양한 매체와 추상적 형식을 통해 보여준다. 그는 주체와 타자 사이의 소통방식과 해석의 차이를 보여주는 작품들을 통해 타자성과 친밀함을 특유의 추상적 언어로 구현한다.
기성제품인 블라인드를 이용하여 벽과는 다른 임의적인 공간을 보여줌으로써 완전하지 않은 추상적 공간을 표현하기도 하고, 또한 에어컨이나 가습기 등을 설치하여 다양한 감각과 생각, 감정들을 일깨운다.
양혜규, 진입, 탈-과거시제의 공학적 안무전동, 2012
이러한 공감각적 설치작업들을 통해서 그는 작품을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감각을 최대한 동원하게 하여 감각과 감성을 확장시킨다. 자외선 히터를 통해 열을 발생시키는가 하면, 함께 설치된 선풍기가 향 분사기에서 나온 냄새를 싣고 잔잔한 바람을 일으키기도 한다.
습기, 냄새, 바람, 빛, 온도 등의 추상적인 요소들뿐만 아니라, 열, 바람, 냄새, 음성 등이 공존하는 공간 경험을 통해 사회 안에서 존재하고 있는 각각의 개인의 경험을 자극한다. 이렇게 그의 작품들은 자신만의 독자적인 형식 미학으로 공간을 점유하며 상상력과 연상 작용을 자극하는 공감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최대 관심사인 ‘디아스포라’를 담고, 나와 너를 구분하며,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공동체, 혹은 연대라는 개념에 반항한다. 즉, 그는 소속 안에서 공통점을 나누고 규범을 따라야 하는 구속력을 가진 사회적 경계에 강하게 이의를 제기한다.
그는 한 집단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형성하는 공동체를 꿈꾼다. 자신을 포함해서 소속이 파악되지 않은 사람들이 공동체를 직접 형성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기에 자신은 소속감을 내세우지 않는다.
‘성채’ 안에 삽입된 영상은 공동체에 대한 주제를 잘 표현하고 있다. 만날 수 없는 이웃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성채를 비추는 조명과 여기에 반사되는 빛이 스크린에 중첩되면서 그 어울림과 어긋남이 맞물린다.
그러면서 인공 모조품은 천박하다고 생각하면서, 원본과 전통에 대한 충성을 요구를 하는 사회풍조를 그는 ‘함정’이라고 명명했다. 그런 함정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서 그는 늘 노력하고 있다.
다양한 문화, 보편적인 것, 여기 그리고 지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그는 현재 세계 무대에서 종횡무진하고 있다. 특히 세계 유수의 미술관들로부터 잇달아 러브콜을 받고 있는 중이다.
그의 2009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선보인 작품 3점을 각각 미국 카네기미술관, 구겐하임미술관,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소장한 이래로, 그는 2016 아트바젤 언리미티드 전에 ‘솔르윗 뒤집기’를 출품한 적이 있다.
양혜규, Series of Vulnerable Arrangements–Shadowless Voice over Three, 2009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 아르세날레에 전시된 작품)
솔르윗은1928년 코네티컷에서 태어난 20세기 미국의 예술에 큰 영향을 끼친 작가 중 한 명이다. 미니멀리즘과 개념주의 미술 형성에 선구적 역할을 하였으며 현대미술에 있어서 개념과 실천의 관계에 대해 혁신적 접근을 시도해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솔르윗, Structure with Three Towers,1986
솔르윗은 작가란 개념의 생산자이며 실제의 작품제작은 그 개념의 확인과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개념을 작업의 우위에 두었다. 즉, 미술에서 개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에게 개념이란 것은 깊고 심오한, 어려운 어떤 주제가 아니라 제작의 실행과정을 가능케 하는 기초적 언어, 규칙, 논리 그 자체였다.
이러한 솔르윗의 작품 세계에서 무한한 해방감을 느낀 양혜규는 땅에 있는 그의 작품을 공중에 매달아서 그를 조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에게 존경심을 표현했다.
양혜규, 솔르윗 뒤집기, 2016
이후 굶주린 사자처럼 왔다 갔다 하며 한국 리움 미술관, 중국 베이징 울렌스 현대미술관(UCCA)을 종횡무진 하더니, 6개월 동안 포르투갈 포르투 세할베스(Serralves) 현대미술관 야외 공간에서 설치 작품을, 또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개인전을 열면서, 매일 냄비 두껑을 열었다 닫았다하고 있다.
그러나 2019년을 기점으로 한 템포를 낮출 예정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도약을 위해서 말이다. “2019년3월 미국 LA 현대미술관(MOCA) 전시를 기점으로 클로징해야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큰 포켓들이 필요한 시기인데, 1~2년 준비로는 안 되니까요.”
LA 에서 예정된 전시는 한 작가를 집중 소개하는 서베이 쇼(Survey show) 성격의 전시다. 한마디로 그는 작가로서 최고의 전성기이자, 가장 중요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양혜규는 늘 작품이 준비돼 있는 작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는 잘 나가는 작가라는 수식어와 함께 다른 작가들의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독일에 ‘소매를 털면 나온다’는 말이 있어요. 뭔가를 쉽게 한다는 뜻인데, 쉽게 하는 게 좋은 건 아니에요. ‘말하는 미술’이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거기서도 보면 젊은 작가들보다 연륜이 있는 작가들이 늘 준비도 철저히 하고 오시더라고요. 준비된 작가들이죠. 소매를 털어 금은보화가 나오는 줄 알지만 오산이에요”라고 대꾸한다.
그렇다. 양혜규는 알고 있다. 비워야 새로운 걸 찾을 여지가 생긴다는 것을. 그래서 작품 뿐만 아니라, 보여주고 싶은 것, 하고 싶은 말을 적절히 비우고 채우고를 반복하면서 늘 준비하고 있는 스스로 준비된 작가가 되고 있다.
작가 양혜규
하나의 명쾌한 맥락으로 읽혀지지도 않고, 때로는 극도로 모던하고 미니멀한 작업을, 때로는 원시적이고 목가적인 작업을 하면서, 한 작업에 많은 함정을 파고, 자연과 인공을 뒤섞으며, 모호한데 명확한 의미를 만들어낸다.
'상자에 가둔 발레' 앞에 선 양혜규 작가
스스로를 감정기복이 심한 성격이라고 표현했지만, 그의 작업과 언어는 이렇게 깊이있고 철학적이고 이성적이다. 심지어 베일 것만 같은 칼날의 날카로움마저 지니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그가 어떻게 자신을 제련하고 다듬어 나갈지 사뭇 촉을 세우고 흥미롭게 지켜보게 된다.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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