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최악의 상황에서 시작된 기민·기사 연합과 사민당의 대연정 협상
7일 기민·기사 연합과 사민당의 대연정 예비협상이 시작했다. 12일까지 진행될 이번 협상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마지막 기회로 평가받는다. 만약 협상이 성사되지 않을 경우 소수 정부를 구성하거나 재선거를 치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도좌파 사민당 역시 그간 모호해진 당 정체성으로 지지자들의 비난을 받으며 협상에 참여하게 돼 최악의 지지율을 맞닥뜨리게 됐다.
우선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민·기사 연합은 지난해 9월 총선에서 1949년 이후 최저 득표율인 32.9%로 승리했다. 전체 709석 중 246석으로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해 자민당 및 녹색당과 이른바 '자메이카 연정' 협상을 벌였으나 끝내 결렬됐다. 메르켈 총리의 지지율은 줄곧 하락했다. 그러다 지난해 12월 29일 '메르켈 총리는 즉각 사임해야 한다'고 답한 비율이 46%나 된다는 여론조사까지 받아들이는 상황에 이르렀다.
메르켈 총리와 기민·기사 연합의 악재는 이뿐만이 아니다. 4일 <디 벨트>와 <아에르데>(ARD)가 여론조사업체 인프라테스트디맙(Infratest Dimap)에 의뢰해 시민 1천 6명에게 설문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67%가 메르켈 총리의 전성기는 끝난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또한, 메르켈 총리의 기민당은 이제 인적 혁신, 즉 후계자를 찾아야 할 때가 됐다고 답한 비율도 약 70%에 달했다. 이는 총선이 끝난 지 3개월이 넘었지만, 아직도 새 정부를 출범시키지 못한 메르켈 총리와 기민·기사 연합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극에 달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대연정 협상에 참여하는 사민당의 상황도 낙관적이지 않다. 총선 후에도 줄곧 기민·기사 연합과의 대연정은 없다고 밝혀온 사민당은 재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여론의 압박에 못 이겨 대연정 협상 테이블로 이끌려 나왔다. 사민당은 수동적인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국민에게 각인시킨 것이다. 또한, 마르틴 슐츠 대표와 지도부는 당 정책을 적극적으로 관철하지 못하면서 대연정에 참여한다고 청년당원 조직 '유소스'(Jusos)와 일반 당원들로부터 비판도 받고 있다. 게다가 7일 대연정 협상 직전에 <빌트 암 존탁>이 보도한 여론조사업체 엠니트(Emnid)의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사민당의 지지율은 20%로 2009년 이후 최저를 기록하기도 했다.
사민당은 대연정 협상에서 난민 문제, 세금, 최저임금 인상, 건강보험 개혁 등 당 정책을 밀어붙여 중도좌파인 당 정체성을 부각해야 한다. 물론 기민·기사 연합이 이를 순순히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인프라테스트디맙의 조사에서 대연정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비율이 52%로 나왔고, 대연정 협상이 결렬되면 재선거를 치러야 한다고 답한 비율이 전월 대비 9% 오른 54%를 기록했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해 11월 말에 재선거를 치를 수도 있다고 승부수를 띄웠지만, 만에 하나 재선거를 치른다고 해도 현재로서 승리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기민·기사 연합은 사민당과의 이번 협상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이러한 입장 때문에 기민·기사 연합과 사민당은 이번 주에 어떻게든 합의를 해내야 한다. 7일 첫 논의가 끝난 후 기민·기사 연합과 사민당은 언론 인터뷰를 하지 않기로 해 협상 마감 시한인 12일에 예비협상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협상의 결과가 긍정적이라 해도 당장 대연정이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사민당은 오는 21일 전당대회를 열어 협상 결과를 발표하고 본협상 개시 찬반투표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찬성으로 통과된 후 본협상이 순조롭게 끝났다고 해도 사민당은 전체 당원들을 대상으로 최종 연정합의문에 대한 찬반투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래서 빨라야 4월 말쯤에나 대연정이 출범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그러나 그것도 최악의 상황을 모면했을 경우다.
사진 출처: Die Welt online
독일 유로저널 김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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