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it yourself”
플럭서스2
플럭서스 아트의 가장 독특한 형태로 알려진 것은 이벤트 스코어(event scores)와 플럭서스 박스(Fluxus boxes or Fluxkits)다.
플럭서스 박스는 인쇄된 카드나 게임, 아이디어 등을 모아서 작은 플라스틱 또는 나무상자에 넣어둔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백남준, Zen for Film from Fluxkit, 1965
한편, 헨리 코웰(Henry Cowell)의 음악철학에서 이벤트 스코어의 아이디어가 나오게 된다. 그는 플럭서스 아티스트의 대표적인 인물들, 존 케이지(John Cage)와 딕 히긴스(Dick Higgins)의 스승이었다.
스코어라는 용어는 음악에서 사용되는 악보(score)와 본질적으로는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 음표로 표기한 내용을 가지고서 어느 누구나 이를 재현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악보인데, 이것을 다른 예술에 접목한 것이 이벤트 스코어다.
이벤트 스코어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예술가 중의 한 명이 바로 백남준이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인 그는 이벤트 스코어의 아이디어를 "do it yourself"라고 명명을 하고, 이를 널리 보급한 예술가다.
백남준, N129_listening for music 1, 1963
사실 음악에 있어서 악보를 만들고 이를 이용한 다양한 연주가 이루어진 것은 수백년간 일반화되어 온 일이다. 하지만, 다른 예술분야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시도하여 보급한 것은 플럭서스 예술가들인 백남준과 존 케이지, 딕 히긴스에 의한 것이다.
특히, 존 케이지(John Cage, 1912~1992)는 ‘비구성주의 작곡가’로 불린다. 그는 근대 유럽의 고전음악이 추구하는 음악관을 정면으로 거부했었다.
서양음악사에서의 존 케이지의 가장 큰 업적은 ‘우연성(chance)의 도입’이라 할 수 있다. 사실 클래식 음악 외에도 대부분의 음악은 계획을 가지고 주어진 음악적 재료를 배열하는 구성주의의 산물이다.
치밀한 구조를 지닌 바흐 음악 같이 배열이 촘촘한 음악이든, 좀 더 즉흥적인 재즈 같이 배열이 느슨한 음악이든 구성주의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존 케이지는 이러한 구성주의에서 탈피하고 우연성을 도입했다.
이것은 그의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인 <4분 33초>에서 잘 표현되어 있다. <4분 33초>에서 연주자는 무대에 올라서 4분 33초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다가 다시 무대를 내려온다.
존 케이지는 동시대 화가인 라우센버그의 작품 <백색 페인팅>에서 <4분 33초>의 모티브를 찾았다고 한다. 당시 라우센버그의 <백색 페인팅> 시리즈의 주제는 회화를 지워 없애버리는 것이었다.
라우센버그, 백색 페인팅(White Painting), 1951
존 케이지는 “귀를 기울여라. 그대 주변의 모든 것이 음악이다. 귀 기울이는 자가 곧 작곡가다”라고 말했다. 즉, 작곡가가 조직한 음으로 구성된 작품 대신에 작곡가가 제안한 특정한 시간대에 청중들 자신의 주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소리에 대해 의식하라는 것, 이것이 <4분 33초>을 작곡한 그의 의도였다.
이 작품을 통해 청중들은 자기가 듣고 있는 것에 각자 어떤 의미를 부여한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스스로 작곡가가 된다. 이것은 구성주의적 작품의 개념과 이러한 작품을 작곡하는 작곡가라는 개념을 모두 해체시킨 것이다.
이른바 연주는 아무나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연주의 장소도 어디든 가능해진다. 당시 <4분 33초>는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일종의 해프닝과 같았던 <4분 33초>의 연주는 이후 백남준, 요제프 보이스 등의 플럭서스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1957년 프라이부르그고등음악원에 다니던 백남준은 다름슈타트 국제현대음악 여름특강수업에 참가하면서 존 케이지를 만났다.
이후, 1959년 뒤셀도르프의 갤러리22에서 두 대의 피아노와 테이프 레코더, 계란, 장난감 등을 동원한 백남준은 '존 케이지에게 바치는 경의'로 이름 붙인 자신의 최초의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케이지를 상징하는 피아노를 부수는 행위에 이어, 불과 1년 뒤에는 케이지에게 돌발적인 행동을 감행했다. 백남준은 사실 존케이지의 열렬한 신봉자였다. 그런데 그는 존 케이지의 와이셔츠를 찢고 가위로 그의 넥타이를 잘랐다.
백남준, 피아노포르테를 위한 연습곡(Performance of Etude for Piano),1960
심지어 존 케이지의 머리에 샴푸를 쏟아 붓고, 백남준은 재빨리 스튜디오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전화벨이 울렸다. 그것은 백남준의 퍼포먼스가 끝났다는 신호였다. 이런 그의 돌발적인 퍼포먼스는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백남준이 존 케이지의 머리에 샴푸를 붓는 퍼포먼스
아시아에서 온 20대 후반의 백남준이 자신이 존경해 마지않았던 존 케이지에게 바친 이 돌발적 퍼포먼스는 정신분석학적 해석이 필요하다. 넥타이는 남성 즉, 아버지의 상징이다. 따라서 케이지의 넥타이를 가위로 자르는 행위는 아버지 우라노스를 거세시킨 크로노스의 행위를 연상시킨다. 그것은 곧 법이자 권위의 상징인 아버지로부터의 독립을 상징하는 것이다.
아울러 샴푸는 자신으로 인해 흘린 피의 정화(淨化)를 상징한다. 그래서 백남준은 이 퍼포먼스를 통해 자신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존 케이지로부터 벗어나, 성인식을 마치고 소년이 마침내 성인이 되듯이 알을 깨고 나온 것이다.
이 퍼포먼스 후 1961년, 백남준은 다다정신을 계승하여 삶과 예술 통합을 지향했던 플럭서스(Fluxus)란 전위예술단체에 들어갔다. 그해 10월 그는 독일의 전위음악가 칼하인츠 스톡하우젠이 쾰른의 시어터 암 돔에서 개최한 '오리지날레' 음악 연극 페스티발에 참가해, 토마토즙을 잔뜩 담아놓은 큰 그릇에 머리를 푹 적셔 붉은 액체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로 바닥에 깔아놓은 종이 위에 긴 선을 그었다.
백남준, '머리를 위한 선(Zen for Head)', 1962
백남준은 머리로 굵고 긴 선을 그은 이 작품에 '머리를 위한 선(禪)'이라 이름 붙였다. 1962년 비스바덴에서는 토마토즙 대신 먹물에 머리를 적셔 선을 그었다. 얼핏 보기에 선승이 수행의 한 방편으로 그어놓은 선처럼 보이지만 이 퍼포먼스를 선적(禪的) 행동으로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실제로 그가 존경하던 존 케이지는 당시 자신에게 현대음악을 배우러온 지타 사라브하이란 인도 여성으로부터 인도 전통음악과 사상을 배웠으며, 미국에서 일본 선불교를 강의하던 스즈키 다이세츠에게 영향을 받아 선사상에 바탕을 둔 새로운 작품활동을 시작했었다.
그런데 이런 그의 옷을 찢고 넥타이를 자른 백남준이 이번엔 직접적으로 선을 내세운 퍼포먼스를 선보인 것이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고, 일본에서 미학과 미술사를 배웠다. 그런 그가 선에 대해 모를 리가 없다. 훗날 그가 발표한 'TV부처' 를 보면, 그가 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짐작할 수가 있다.
백남준, TV 부처, 1974 (2002)
서양 현대음악을 배우기 위해 독일로 갔던 백남준은 반대로 동양 선사상에 심취해 있던 존 케이지를 생각하면서, 머리에 먹을 잔뜩 묻혀 바닥에 깔아놓은 종이 위에 선을 그음으로써, 물리적 오브제로서의 작품을 만든 것이 아니다.
그의 퍼포먼스는 그의 악보와 그것의 실연이다.
(다음에 계속…)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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