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지점 조부장의 에피소드 (#1)
제 나이로보아 영국에 있는 대부분 지인들이 나를 부를때 모두들 "조사장님"이라고 칭한다.
그러나, 옛날시절에 같이 지내오던 옛 상관이나 동료 지인들을 오랜만에 만날때 간혹 나를 "조부장’이라고 칭하기도 하는데, 들으면 오히려 기분이 나쁘지않고 나의 젊을때를 회상시켜주는 것 같아 친근한 기분이 든다.우리 사회에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란 말이 있듯이, "한번 부장은 영원한 부장"인 셈이다.
"조부장"이란 호칭을 들을때가 제가 현대중공업사의 런던지점에 발령받고 1990년도 초부터 6년6개월간을 런던지점 주재원으로 활동하고 생활하던 때 이였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조부장"은 바로 본인을 모델로 했으며, 이야기의 내용은 제가 1990년도에 영국 및 유럽에 있는 석유회사들을 상대로 해양플랜트의 수출마켓팅이란 막중한 역할을 맡아 영업일선에서 고생하던 이야기를 담은 에피소드들이다.
저의 실험과 사실을 밑바탕에 깔기는 했지만, 사실은 읽는분의 재미를 위해 자연히 상당부분 꾸민 이야기들이다.
저는 현대중공업사 런던지점에서 영업활동을 하면서, 사실 성공프로젝트 보다 실패프로젝트가 더 많다.
성공 프로젝트보다는 실패프로젝트가 실패의 쓰라림 때문인지 기억도 더 생생하다. 그러나 첫 에피소드 이야기부터, 실패 프로젝트를 쓸수는 없지않는가?
첫번째 이야기로 당시 영국 BP사로부터 수주했던 TPG 500이란 프로젝트를 모델로 삼았으나 글에서 언급한 인물이나 스토리내용은 대부분 픽션임을 다시 한번 알려드린다.
이 에피소드가, 과거 영국에서 주재원생활을 하셨던 분들에게는 추억을 회상시켜주는 계기가 되고, 또 현재 영국이나 유럽에서 사업을 하시거나 주재원생활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과거 선배들이 어떻게 활동하였는지, 해외마켓팅을 하면서 어떤점에서 과거 선배들의 경험을 벤취마크 할것인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제 1장: 입찰정보 얻기까지
이야기는 해머스미쓰에 있는 현도중공업주식회사 런던지점 사무실에서 시작되며, 1990년대 늦겨울 한 2월의 어느 수요일 아침으로 기억된다..
"조부장! 당신은 일하는게 항상 왜 그래요, 그런 대형 프로젝트가 있으면 지점장인 나한테 자세히 보고했어야하는 거 아냐! 당신땜에 아침부터 괜히 본사 김부사장님하고 통화하다가 프로젝트 내용 모른다고 한마디 들었잖아……"
지점장인 김상철상무님이 나를 아침부터 지점장실에 불러놓고 야단치기 시작하는 첫마디이다. 직장생활 20년 눈치밥이면 어느정도 준도사급이다. 야단치는 첫마디로 보아, 이건 소총 총알이 아니라 기관총급이다.
이때는 무조건 업드려서 총알이 위로 지나갈때까지 기다려야한다, 얼핏 조금이라도 이유를 설명하는 등 대들다가는 바로 총알에 맞아 부상이다.
내가 저질른 큰실수이 아닌 이런 경우엔, 대충 한 5분정도 쓴소리 들으면 마무리되는 그런 것이리라.
아니나 달라, 혼자서 한 4~5분 혼자 야단하시더니,
"이제 앞으로 좀 잘 하세요!"하고 말할때 쯤이면 이제 끝이다, 이때는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살며시 들고, 목소리에 힘을 주고 충성하는 자세로, "예 알겠습니다! 앞으로 잘 보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고 방에서 인사를 드리고 나오면 된다.
사실은, 현도중공업이란 회사가 워낙 대형회사라, 사업본부만도 4개나 되며, 지점장은 제일큰 구모인 조선사업본부에서 나오신 분이고, 나는 해양사업본부에서 파견된 사람이다보니, 하는 사업도 조선사업분야와 전혀 달라, 매주 월요일 아침에 하는 지점장 주재 회의에서도 사실 내가 추진하는 프로젝트는 지점장이 별로 관심도 없다.
그러다가, 아마 본사의 높은 분과 업무보고 통화중에, 내가 추진하는 프로젝트에 대해 우리 지점장이 좀 몰라서 쭈물대시다가 좀 터졌나 보다.
회사규모로 쳐도 현도중공업 해양사업부의 인원만해도 5,000명이 넘으므로 다른 단독회사의 규모보다도 훨씬 더 크다. 나는 본사의 해양사업본부의 1인 영업요원으로 나오다보니, 그런점에서는 영업에 관한한 현도중공업 해양사업본부를 맡고있는 1인 소지사장이란 책임감을 갖고 일하는 셈이다.
어쨋든 난 아침부터 쓴소리 듣다보니 좀 맥이 빠진 자세로 제자리도 돌아와, 노트를 책상에 덮썩 놓고 앉는다.
내 앞에 앉은 미세즈킴이 한마디, " 조부장님, 오늘 오랫만에 엄청 깨졌죠? 내가 커피한잔 타 드리께요" 이 여직원의 눈치밥도 보통 아니다.
내가 영국의 대형 Oil Major인 BT석유회사에서 대형 프로젝트가 있다는 정보를 들은 것은 약 1개월전이다.
해양사업이란,
세계에서 생산되는 석유의 60~70%는 바다해저의 광구에서 생산되는데, 바다에서 석유가 부장되어있을만한 곳에 구멍을 뚫고 확인해보는 것을 시추라고하고 이일을 하는 설비가 시추선이다. 그런데, 시추란 그야말로 실제로 지하해저에 실제 구멍(유정)을 뚫어서 테스트를 하는 것이고, 만약 석유가 부존된것이 확인되면 오히려 구멍을 막고 다음단계로 넘기게된다. 다음단계는 시추단계에서 조사된 자료를 근거로 그 유정지역 근처에 생산된 원유를 퍼올리고 퍼올린 석유를 1차 가공하는 생산공장을 바다위에 세워야하는 데, 이러한 바다위에 세워진 생산공장을 플랫폼(Platform)이라 한다. 이런 해양에서의 석유나 가스생산에 제반되는 시추선이나 생산설비인 플랫폼 등을 제작하여 공급하는 사업을 해양사업이라하며, 국내 대형 조선사들이 세계에서 소요되는 해양설비제품의 상당부분을 세계 유수의 석유회사에 공급함으로써 국내 조선산업과 더불어 우리나라 경제의 큰 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BT석유회사와는 약 2년전에 북해바다 유전개발에 필요한 쟈켓(Jacket)제작 공사를 내가 런던지점으로 파견되기전 본사 영업부 차장으로 있을때 부터 참여했던 전력이 있어 런던지점 파견이후 실적보유 고객으로써 항상 기회를 기다려오던 Buyer인 셈이다.
인사차 BT사 프로젝트 사무실에 근무하는 엔지니어이며 나하고는 특히 잘 통하는 Joe에게 문안전화를 하였더니 사무실 아가씨가 딴 사무실로 옮겼다는 이야기를 하길래, 나의 영업감각으로 무슨 낌새가 잇는듯하여 조심스럽게 마음을 준비를 하고 새로 이전된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서로 몇마디 인사를 나눈 후,
" 헤이 죠, 사무실을 옮긴것 보니, 새로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것 맞지? 뭐야, 이야기 좀 해 주시게나."
" 헤이 미스터 조, 눈치하나 빠르네, 아직 딴데는 이야기하지 말고 알아둬. 새로 우리팀이 결정되서 Something Big을 계획중이야. 그 정도만 알아 둬"
" 오케이 알았어, 그래도 새로 사무실도 옮겻다니, 인사라도 내가 한번 가야지. 언제쯤이 좋아…다음주??"안 된다는 Joe를 5분간만 잠깐 만나자고 살살 꼬와서 1주일후에 방문하여 프로젝트에 대한 충분한 이야기를 들었다.
즉, BT석유회사가가 영국 스코틀랜드지역의 유전이 있는데, 이미 시추가 끝나고 생산준비가 완료된 유정이고, 현재 기본설계가 거의 완료된 상태라서 약 1~2개월후에 입찰서가 나올것 이라한다.
이번에 투입될 생산설비는 상부구조물 (즉, 톱사이드라고 하는데 생산공장을 육상에서 만들어 5~6개로 쪼개어서 운반하고 해상 유정에 세워진 하부구조물 위에 얹혀놓는 것임)은 통상적인 구조물이나, 하부구조물은 초대형 콘크리트 구조물을 하단부에 만들어서 세운다는 독특한 방식이라 한다.
전체 중량은 25,000 톤 정도이고 원유생산가공생산규모는 1일생산량 6만5천바렐이라 정도라고 하니 단위 플랫폼공사 로는 꽤 큰 규모이다. 프로젝트 정보는 일단 충분히 입수했으니, 이제 어느 회사가 입찰초청이 될것이냐라는 정보가 중요하다.
이런 경쟁 정보는 Joe한테도 직설적으로 물어보면 절대 알으켜주지 않는다. 항상 우회적으로 질문해야 Yes, No 대답을 들으며 실마리가 풀린다.
" 헤이 죠, 입찰초청 회사가 한 서너개 되겠네?"
" 글쎄, 그 정도 될거야."
" 스코틀랜드 M사하고, 뉴캐슬의 R사가 되겠네 뭐?"
" 맞어, 그리고 유럽 회사가 있을 것도 같애 (내 혼자 머리로, 화란의 H사 이겠구나)"
이제 중요한 것은 일본 회사가 끼어있는지 문제가 핵심이다.
" 아시아에는 우리말고 또 있겠구먼?"
" 아냐, 아시아에는 하나 인것 같애"
이 정도면, 경쟁사 정보는 완벽하다.
막강한 영국업체들 둘에다가, 기술능력과 가격경쟁력도 좋다고 유럽에서 알아주는 화란 H사까지 끼워있다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재 잘뿌리기로 유명한 일본업체가 빠진것은 그런대로 희소식이다. 다음에는, 이번 공사를 책임지고 수행하는 팀이 BT사의 프로젝트 사무실 본부내에서 누구누구가 프로젝트요원으로 차출되었으며, 그 팀의 팀장 (Project Manager)이 누구라는 것을 알아두는 것이, 앞으로 영업에서 절대필요한 핵심 정보중 하나이다.
" 헤이 죠, Project Manager는 맥그리거씨가 맞지?"(내가 먼저 짐작한 사람을 언급해야 다음말에서 이야기가 나온다.)
" 맞어, 며칠후에 여기 사무실로 새로 Project Manager로 부임해 올거야."
Good News이다. 바로 맥그리거씨가 2년전 BT사로부터 수주했던 쟈켓공사에서 우리 현도중공업사를 믿어줬고, 우리 공장을 자주 방문하고해서 한국을 잘 알고,지한파이며 우리 회사를 믿고 좋아하는 인사이다.
나는, 이 정도 정보를 얻고, 스케취 도면 몇장을 얻고서는 흥분된 마음을 누르고 미팅을 마치고 Joe와 다음에 또보자는 인사를 하고 나왔다.
Joe의 작별시 인사말은 항상, 연락할때 까지 기다려라도 하지만 내 마음은 벌써 급해지기 시작한다.
입찰이 1~2달후이라고, 나도 모르게 입술이 말라진다. 중량이 25,000톤이라.. 엄청난 규모이다.
자, 이제부터는 영업이 전투 Mode이다!
BT사 사무실을 나와서는 일단 근처 커피집부터 찾았다. 커피집에서 우선 오늘 미팅하며 들은 이야기를 까먹기전에 요점요점 메모를 하였다. 그리곤, 커피를 마시며서 머리를 가다듬고 또 하나의 남은 큰 숙제 - 본사와 지점장에게 보고할 내용을 머리속에 그리기 시작한다.
사실, 지점영업요원이 하는 일이 대외적 Buyer하고의 영업력 못지않게, 본사와의 업무 조정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눈치코치 다 보면서, 본사측에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이고, 앞으로 프로젝트가 쏟아져 나올것 같은 기대감도 적당히 주고. 이분 저분 상관들 동료들 모두 기분 다 맞춰줘야한다.
만약 한사람이라도 악연이 생기면 지점생활이 괴로워진다. 또한 현지에 있는 지점장인 김상철 상무에게도 이해할수 있게끔 보고하는 것도 까먹으면 안된다.
나는, 오늘 들은 정보를 대충 List를 한후, 오늘 보고할 내용만 추려본다.지점에서의 영업할때의 요령중 하나는, 이런 중요한 프로젝트의 정보를 바다 건너있는 본사에 한꺼번에 다 알려주기보다는 기간을 두고 몇개로 나누어서 보고하는 것이 좋을듯 하다.
앞으로 입찰일이 몇개월 남아있는데, 당분간 결국 오늘 입수한 정보들을 요령껏 추려서 덧살도 덧 붙이면서 계속 관심을 끌고 나가도록 해야한다.
지점 영업요원으로써는, 이런 영업정보가 하나의 큰 재산인 셈이다.
벌써 늦겨울 2월의 짧은 해가 지기 시작하는 때에, 나는 해머스미쓰 사무실에 도착했다. 다행히 미세스킴은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잇으나, 다른 직원들은 이미 퇴근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다.
지점장 방의 불은 꺼져있는 것을 보고는 지점장에게는 내일 아침에 구두로 보고하기로 마음먹고, 나는 우선 본국에 있는 본사에 오늘 저녁이라도 FAX로 보고하게 되면 한국시간으로 다음날 아침에 보게될 것이다.
나는 책상에 앉아 본사 보고서 용지를 꺼낸후 여지없이 갈겨쓰기 시작할 때, 앞에 앉은 미세스킴이 묻는다.
" 조부장님, 본사 보고서 타이핑 하실거예요?"
눈치빠른 미세스킴이 오늘 내가 기분Up된것을 알고 서비스 해주겠다는 거다.
" 아냐, 이번 보고서는 Hand-writing해서 보낼거야, 그래도 내가 바로 써서 줄테니까 퇴근하지말고 Fax나 좀 보내줘요."
" 네, 기다릴께요.."
<제2장. 입찰과정 이야기는 다음 호에 계속 됩니다.>
조동식 칼럼리스트
현대중공업 본사 14년, 런던지점 6년 근무
영국 Ferranti 공항시스템사 5년 근무
SITA항공Solution사 한국지사장 4년 근무
한국 플랜트기술자문OPT Ltd. 부사장 근무
대전 KAIST대학 항만프로젝트 책임연구원 2년 근무
최근 삼강 M&T 사 런던지사 지사장 5년 근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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