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자체를 예술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이 가장 만족스럽다
다다이즘5
Richard Boix, Da Da, 1921(뉴욕 다다 그룹)
뉴욕에서는 카바레 대신 사진예찬론자 스티글리츠의 조그마한 사진가게가 그 역할을 대신하였다. 스티글리츠는 인간의 감성과 표현이 사진판과 인화지를 통해서는 획득될 수 없을까를 늘 고민했었다. 그는 사진이 실제 세계의 복제품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 창조에 기여할 수 있는 하나의 예술작품이라고 주장했다.
Alfred Stieglitz, The Steerage, 1907
그래서 그는 순수예술로서의 사진을 개척한 선구자가 되어, 뉴욕 5번가 291번지에 ‘사진 분리파의 작은 화랑’(후에 291이라고 개칭됨)을 세우고 ‘카메라 워크’라는 잡지를 발간했다.
그리고 1915년에 스티글리츠는 뒤샹과 피카비아의 도움을 받아 이 작가들의 반 예술사상을 발표하는 정기 간행물 ‘291’도 창간했다. 이것으로 취리히 다다만큼이나 응집력 있는 그룹이 뉴욕에도 생기게 되었다.
이 중에서도 뉴욕다다를 일으켰던 가장 탁월하고 영향력 있는 예술가로 프란시스 피카비아, 만 레이와 모턴 샴버그 등과 함께 마르셀 뒤샹이 있다.
“그림을 그린 것, 삶을 이해하는 요인으로 삶의 방식(modus vivendi)을 창조하기 위해 예술을 한 것, 살아 있는 동안 그림이나 조각 형태의 예술작품들을 창조하는 데 시간은 보내기보다는 차라리 내 인생 자체를 예술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이 가장 만족스럽다”고 말한 마르셀 뒤샹(1887~1968)은 1902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1904년부터 1910년까지는 인상파, 후기인상파 등의 영향을 받으면서 작품을 제작하였다.
이후, 입체주의 그룹에 참여하여 차츰 큐비즘을 배우게 되나 연속사진에 자극을 받아 본질적으로는 정적인 큐비즘의 표현과는 다른 움직임과 운동 과정에 관심을 돌리며, 1912년 스스로 고안한 기계적 회화로 전향했다.
그의 작품 ‘날랜 누드가 가로질러간 왕과 왕비’(1912) 에서는 인물들이 기계화되어 있다. 사실 이것은 작동중인 기계였다.
마르셀 뒤샹, The King and Queen Surrounded by Swift Nudes, 1912
다시 1913년부터는 그리는 행위를 포기하고, 20세기 조각의 주요혁신인 물리적으로 운동하는 조각과 평범한 사물을 제시하거나 그런 것을 포함하는 오브제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전람회에 출품된 그의 ‘계단을 내려가는 나체(裸體)’는 사진가 스티글리츠뿐만 아니라 브르통의 극찬을 받으면서 미국 전람회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마르셀 뒤샹,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2번 (Nude Descending a Staircase, No.2), 1937
이 작품은 마치 고속사진의 한 장면과 같이 역동적이며, 미래파 작품에 호응하여 사진과 예술의 새로운 결합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 후 뒤샹은 기성품(旣成品)을 곁들인 레디 메이드(ready made) 작품을 발표했다. 다다이즘이라고 하면 M.레이의 ‘선물’(1921)이나, 뒤샹의 ‘샘[泉]’(1917)을 떠올릴 정도로 그의 레디 메이드 작품은 다다이즘의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만 레이, 선물, 1921
마르셀 뒤샹, 샘, 1917
이것은 후에 키네틱 조각, 폐품조각, 그리고 팝아트의 발판이 되었다.
1915년 뉴욕에서 마르셀 뒤샹과 함께 미국판 다다이즘을 일으킨 프란시스 피카비아는 파리에서 태어나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그는 1908년에서 1911년 사이에 인상주의에서 큐비즘으로 전향했으며, 미래주의를 시도하기도 했다.
Francis Picabia, Paysage à Cassis (Landscape at Cassis), 1911–12
이후 그는 뒤샹의 정신을 뒤어 기계 이미지를 상징적 방식으로 표현해내는 양식을 고안해, 동료들의 기계 초상화라고 할 수 있는 작품들도 제작하였다. 1916년 유럽으로 돌아온 피카비아는 바르셀로나에서 391을 간행하고, 1918년 파리다다 그룹에서도 활동했다.
Francis Picabia, Réveil Matin (Alarm Clock), Dada 4-5, Number 5, 1919
만 레이 (1890~1977)는 다다오브제를 고안하는 능력에서 어떤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타고난 환상주의자였던 그는 스티글리츠와 사귀면서 사진을 제작했으며, 자신이 <레이오 그래프>라 칭한 사진 영상을 발명했다.
Man_Ray,Untitled (Rayograph),1922
이것은 카메라 없이 영상을 만들어 내는 방법으로, 물건들을 감광지 위에 가까이에 놓고 직접 광선에 노출시켜 만드는 것이다. 이 기법은 다다이즘이 추구하는 바처럼, 순전히 우연히 발견됐다. 이것을 통해서 작가는 노출을 조절하고 대상을 움직이거나 제거함으로서 기묘하게 추상적이거나 상징적인 성격을 갖는 이미지를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다음에 계속…)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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