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을식의 장편 연재소설

오을식의 장편 연재 소설 (62) - 바람의 기억

by 편집부 posted Apr 2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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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밤의 연가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지?”
“내가 경험자잖아. 이 바닥에서 상식은 개나 줘버려야 해.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사방에 널렸으니까. 하긴 조심한다고 될 일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객실과장 만나서 부러 웃거나 호의적으로 대할 필요가 없다는 거야. 눈에 띄면 장 마담에게 압력을 넣어서 어떻게든 접대를 받으려고 할 거니까.”
“왜 그 사람에게 접대를 해야 해? 통상 접대는 을이 갑에게 하는 거잖아. 호텔의 고정 고객인 우리가 갑이니 오히려 그쪽에서 우리에게 신경을 써야 정상 아닌가?”
영미가 피식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호텔은 우리의 영업장이잖아. 객실이 안정적으로 확보되지 않으면 수익을 낼 수 없는 구조니까 호텔이 갑이고 우리가 을이지. 특히 성수기에는 객실 확보가 정말 어렵거든. 그리고 단속이 떴을 때를 대비해서도 평소에 기름칠을 해두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어.”  
정아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곁에 서서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더벅머리가 몸을 틀어 하품을 했다.     
“어머나, 죄송해라! 저희가 수다를 떠느라 오래 기다리게 했네요.”
영미가 더벅머리의 팔에 매달리며 말했다. 그가 촉촉해진 눈을 끔벅거리며 괜찮다고 대꾸했다.  
“미야모토 상! 내 친구 잘 부탁드려요. 첫날밤이니까 무섭지 않게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아셨죠?”
더벅머리의 얼굴이 붉어졌다. 
영미가 손을 흔들며 골목 안으로 사라졌다. 정아는 더벅머리의 팔을 단단하게 잡고 되도록 마른 길을 골라 천천히 걸었다. 오르막에서 그의 걸음걸이가 심하게 되똑거리자 정아는 부러 걸음을 멈추고 말을 붙였다
“어때요? 신발 정말 잘 골랐죠? 너무 큰 선물을 받아서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가 숨을 고르며 빙그레 웃었다. 
“신발이 임자를 제대로 만난 것 같아 나도 기분이 좋아요.”
프런트에 도착했을 때 진청색 조끼에 리본 타이를 맨 여직원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정아는 장 마담이 지시한대로 더벅머리를 가리키며 ‘1018호 손님’이라고 말했다. 여직원이 몸을 돌려 왼편을 바라보았다. 거기 구석에 앉아있던 청색 수트 차림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여직원 옆으로 걸어왔다. 밀가루를 뒤집어 쓴 것처럼 피부가 하얗고 이목구비가 단정한 사내였다. 정아는 수트의 가슴에 매달린 명찰을 바라보며 이 사내가 바로 문제의 객실과장임을 직감했다. 정아는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가볍게 목례를 했다. 
“환영합니다. 가족처럼 모시겠습니다. 그러잖아도 장 실장님 전화 받았습니다. 대단한 인재라고 칭찬이 자자하시던데, 저도 첫 출발을 축하합니다.” 
반질거리는 인상과 잘 어울리는 매끄러운 어투였다. 여직원이 체크인 서류에 서너 개의 동그라미를 그려 내밀었다. 정아는 서류를 더벅머리 앞으로 밀며 볼펜을 건넸다. 그가 체크인 서류를 작성하는 사이 정아는 부러 고개를 들지 않았다. 수트가 계속해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직원에게 카드키를 받아 승강기로 향할 때까지도 수트의 시선은 정아를 떠나지 않았다.  
승강기의 문이 닫히자 정아는 더벅머리에게 객실이 스위트룸으로 업그레이드된 이유를 설명했다. 그가 머리를 쓸어 넘기며 참 고마운 배려라고 대꾸했다. 덧붙여, 자신이 정아의 첫날밤에 걸맞은 손님이 아니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정아는 그를 가만히 안아주며 당신은 그만한 대접을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위로했다.  
객실로 들어선 그가 안을 둘러보며 탄성을 냈다. 정아도 박수를 쳤다. 일반 객실보다 배는 넓어보였고 소파를 비롯한 집기도 훌륭했다. 무엇보다 사방으로 트인 전망이 마음에 들었다. 남쪽 창으로는 눈 덮인 한라산이 들어왔고 북쪽 창으로는 도시의 풍경과 망망한 바다가 한눈에 보였다. 
그가 창밖 풍경에 빠져있는 사이 정아는 욕실로 들어가 욕조에 더운 물을 받기 시작했다. 아까 일행들과 헤어질 때 터틀넥이 했던 부탁이 생각났던 것이다. 터틀넥이 그랬다. 동생은 요즘도 없어진 다리가 있는 것처럼 시려서 고통스러워한다고. 그러니 욕조에 더운 물을 받아 마사지부터 해달라고. 
“자, 이제 우리 좀 씻자고요. 무거운 다리도 벗어버리고요.”
정아의 요구에 그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머뭇거렸다. 그가 주저하자 정아는 여봐란 듯이 먼저 옷을 벗기 시작했다. 속옷이 남았을 때 잠시 주춤거렸지만 그마저도 남기지 않았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정아는 이상하게도 자신의 그런 태도가 전혀 부끄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자, 보세요, 시원해 보이지요? 이젠 당신 차례에요.”
그가 정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가 손을 뻗자 정아는 한걸음 앞으로 다가갔다. 너무 아름다워서 눈이 멀 것 같아! 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정아의 가슴을 만졌다. 정아는 그를 소파에 앉힌 다음 옷을 하나씩 벗기기 시작했다. 의족은 그가 스스로 제거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정아는 드러난 그의 하체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의족이 제거된 허벅지는 절단면이 마치 소시지처럼 뭉툭하게 묶여있었는데, 그래서인지 금방이라도 힘을 주면 뼈와 살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사타구니에서는 팽팽하게 커진 물건이 정아를 노려보며 까딱거렸다. 그것은 정아가 지금까지 본 (몇 안 되지만) 것 중 제일 크고 튼실했다. 
“자, 이제 함께 욕실로 가요.”
정아는 그를 부축해 일으켜 세운 다음 등을 내주었다. 정아의 목을 팔로 감싼 그가 정말 업을 수 있겠느냐고 다짐을 받듯 물었다. 정아는 문제없다고 대답했다. 업고 일어서보니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무게로 느껴졌다. 하지만 장담과는 달리 정아는 몇 걸음 못가서 주저앉았다. 무게 때문이 아니었다. 단단해진 그의 물건이 자꾸만 정아의 엉덩이 사이를 파고든 탓이었다. 
욕조에 라벤더 향을 뿌린 다음, 정아는 정성을 다해서 그를 씻겼다. 그는 감격한 듯 냉장고에서 꺼내온 양주를 거푸 마셔댔다. 
그를 침대에 눕히고 정아도 곁에 누웠다. 몸을 틀어 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정아가 그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매만지며 말했다. 
“당신은 세인트 버나드를 닮은 것 같아요. 듬직한 체구에다 약간 쳐진 눈, 후덕하게 퍼진 하관하며....” 
“근사한 이름인데? 서양 배우인가?” 그가 관심을 보였다. 
“그러니까 그게... ”
정아가 기어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는 멍멍하고 개 짖는 흉내를 냈다. 멍해 있던 그가 별안간 정아의 엉덩이를 찰싹 소리가 나게 갈기고는 거칠게 끌어안았다.
“그래 맞아, 나 개야. 그러니 오늘 멍멍이한테 실컷 한 번 물려봐.” 
그가 정아의 한 쪽 유두를 덥석 입에 물고 흔들었다.  
“싫어, 싫어. 개처럼 굴면 싫어.” 
정아가 몸을 흔들며 앙살을 피웠다. 그렇게 애무가 시작되었다. 가슴에서 시작된 애무는 하체로 내려가 발끝까지 이어졌다가 다시 위로 올라왔다. 정아는 눈을 감았다. 시야에 드넓은 갯벌이 보였다. 
외할머니의 집은 바닷가였다. 썰물이면 넓은 갯벌이 눈앞에 끝없이 펼쳐졌다. 물이 빠진 갯벌에서는 주로 참게와 짱둥어가 나타나 부지런히 먹이를 찾고는 했는데, 그중에서도 짱둥어의 식사법은 매우 특이했다. 가슴지느러미를 이용해서 갯벌을 미끄러지며 게걸스럽게 펄을 핥아대는 짱뚱어. 정아는 그걸 볼 때마다 그게 짱둥어의 일상적인 식사법이 아니라 마치 갯벌과 사랑에 빠져 애무하는 것처럼 느껴져 괜히 얼굴이 뜨거워지고는 했던 것이다.   
더벅머리의 애무는 짱둥어의 그것과 닮아있었다. 정아의 몸이 개펄이라면 그는 허기진 짱둥어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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